학교 중앙도서관 국가근로장학생들은 주로 아침 9시에 팀플이 생기곤 한다. 오후에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금요일을 뺀 매일 9시에 출근하는 내가 아침 9시 15분에 시작하는 배가(책장에 책 꽂기) 업무 독박을 쓰는 일도 한번 있었다. 학생들이 요령이 생긴 건지, 서로서로 도덕적 해이 때문에 안 좋은 문화가 생긴 건지, 아니면 근로자가 많다 보니 책임감을 덜 느끼게 되는 건지, 요즘 이런저런 일로 아침에 결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담당자분께서도 그에 맞춰 요즘엔 아침 배가 시간을 10시로 미루고 있다. 인원수에 따라 정리가 끝나는 시간에 굉장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너무 반가운 일이다.
원형 도서관 나가는 길
2. 남들도 나와 같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
학교 시험공부를 하다 보면 간혹 희열을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주로 이런저런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이 훨씬 많다. '이걸 뭐에 써먹지', '이 정도 공부 가지곤 역량이 생기진 않을 텐데', '대학교 안 다녀도 할 수 있는 공부잖아' 등등. 요즘 읽고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잠깐 등장했다. 대학에서 책으로 배우는 거보다 직접 한번 해보는 게 훨씬 도움 된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특히 요즘 나처럼 [마케팅조사론] 강의에서 SPSS를 책으로 "이걸 누르고 그다음은 이걸 누르고" 하는 캡쳐를 보며 배우고 있는 사람은 그런 현실에 대해서 더 절감할 수 있다. 도대체 이걸 왜 컴퓨터 있는 강의실에서 안 하고 이렇게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으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렇게 대학 공부나 전공 공부에 대한 소위 '현타'를 많이 느끼고 있을 때쯤 친구가 학교에 놀러 왔었다. 기숙사 편의점과 카페를 잇는 갈색 복도에서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모든 전공이 그래." 하고 어르듯이, 먼저 인생의 절차를 밟고 지나 본 자 특유의 무게가 실린 음성으로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다 그런 거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얄팍한 안도감을 느꼈다. 다 같이 만족스러운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이 이득인 게 분명한데도 다 같이 불만족스러운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안도를 느꼈다.
3. 브런치 글 삭제에 대해
브런치 글을 저장해야 하는데 실수로 발행을 해버린 일이 있었다. 발행취소를 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삭제부터 했다. 그러다 보니 저장글에도 남지 않고 발행글에도 남지 않으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됐다. 허망했다. 고객센터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복구는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다시 써보았다. 다시 쓰니 오히려 더 좋은 부분이 있기도 해서 신기했다. 저장하기와 발행하기를 헷갈리는 치명적인 실수는 다신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번엔 아주 운 좋게 넘어갔으니 감사해야겠다.
아침에 해가 늦게 뜨기 시작한 이후로 출근할 때 도서관 건물에 빛이 내려오지 않고 있다. 습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꺾여서 짧아진 액자 속 나무는 뒤에 서있는 큰 나무가 절묘하게 겹쳐 짧아진 길이를 메꿔주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