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변기 커버

by 온호

연말에 상주에 있는 자전거 박물관에 갔었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아주 어릴 때 탔던 자전거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어제도 탔던 것 같이 느껴질 정도의 친숙함을 느꼈다.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라든지도 얼핏 느꼈으나 이런 게 있었다는 걸 완전히 까먹은 생활을 수십 년이나 했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이 자전거를 떠올려 본 적도, 그럴 계기도 없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훨씬 더 큰 충격을 줬다.

집 옥상에서 분명 저 자전거를 타고 종회무진 했던 적도 있는 것 같고 동네 골목길에서도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런 기억들이 아침에 잠에서 깨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불현듯 꿨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는 꿈속의 일마냥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필시 나만큼이나 비슷한 충격을 받을 동년배들이 있을 것 같아 신이 나서 옆에서 한 번, 앞에서 한 번, 이름도 모르는 조그만 자전거의 모습을 찍었었다.

이제 막 기억을 가지기 시작한 새하얀 꼬마의 어린 시절은 꿈처럼 아득하지만 새카만 아저씨가 된 지금도 자전거 타기를 즐거워하는 걸 보면 꿈과 달리 그것들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 다행이다.



2주 전쯤 원룸 자취방의 변기 커버를 교체했다. 뚜껑과 U자 부분에 지워지지 않는 까만 얼룩이 있었기 때문이다. 10개월 가까이 살면서 쭉 보기에 거슬렸고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교체하는 일에 대한 무지와 귀찮음으로 방치했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자러 오셨던 날 변기 커버 상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자 새 걸로 바꿔야겠다는 분명한 뜻이 생겼다.

나 혼자 살면서 조금 거슬리는 것이야 나 혼자 넘기면 될 문제지만 누군가 올 때마다 변기 커버에 대해 신경이 쓰이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침 2025년의 마지막 날에 자조모임 청년분들이 몇 분 와서 내 방에서 함께 자기로 했기 때문에 손님맞이 단장하는 셈 치고 변기 커버를 샀다.

그 과정에서 U자형 D자형이라든지, 중형 대형 특대형이라든지, 도기에 체결하는 형태라든지 하는 변기 커버의 세계를 처음 알게 됐다. '그동안 어떻게 이다지도 생활력 없는 삶을 살아온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배송받은 새 변기 커버를 포장에서 꺼내고 헌 변기 커버를 떼어내는 작업을 했다. 처음이지만 그래서 어렵게 느껴질 뿐이지 작업 자체는 절대로 어려운 일일 리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했다. 하지만 약간의 멍청함을 역시나 힘으로 해결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고서는 소소한 무능감도 느꼈다.

변기 커버를 바꾸고 나니 전체적인 변기의 인상이 아주 밝아져서 흡족했다. 사소한 일이지만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기 커버를 바꾼 이후로 도기에도 더러움이 잘 생기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싶어 제미나이에 물어보니 더 빨리 변기 커버를 교체하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내 몸뚱아리가 움직이는 반경의 많은 일들을 내가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그렇게 되기를 바라왔고 기술교육원에 다님으로써 어느 정도 도움을 얻은 것 같다. 도움은 실력의 문제에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에서 받은 것이 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욕구가 있는 것에 비해 지금까지 노력을 기울였던 적은 없는데,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는 고통을 참으며 등원을 한다는 점에서 제법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