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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May 04. 2024

 4월 27일과 28일에 있었던 일

쉰다섯 번째. 경산 상대 온천 

행복하고도 속상하고 짜증 났다.


 한 번이라도 만나서 얼굴을 튼 사람들을 길 위에서 재회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들은 무채색의 무리에서 튀어나와 채색 인간으로 내게 다가온다. 한 번만 만나도 그런 일이 가능해지는데, 여러 차례 만났던 사람들은 얼마나 큰 인연인가. 그럼 가족은? 본가에 가서 부모님을 봐야겠다. 고 흘러간 의식의 흐름대로 기차표를 예매했다. 부모님 나이 일흔넷, 일흔 하나.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


 이런 결정을 내린지 얼마 안 되어 동생이 가족 톡방에 인스타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경산상대온천에서 목욕하고 같은 건물의 브런치카페를 가는 게 효도 코스라며. 흔한 인스타 바이럴이겠지만 동생은 가정의 달이고 어버이주간 겸해서 가고 싶어 했다. 간 김에 여기를 가도 좋겠다. 동생도 같이 가겠다 한다. 오빠 몇 시 차냐고. 기차표가 05시 27분 편 밖에 없어서 그걸로 예매했다. 동생도 첫 차로 따라 예매했다.


 금요일 저녁에 비스코티를 굽고, 방으로 돌아와 채비를 해놓고 알람을 03시 50분에 맞추고 11시 반쯤 잤다. 알람 울리기 10분 전쯤에 눈이 떠졌다. 목표 시간 언저리에 저절로 일어나지는 몸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고 또 한 번 느끼면서 스트레칭을 간단히 하고 핸드폰을 봤다. 동생이 전날 12시 쯤 보낸 카톡이 있었다. 시간을 미루면 안되겠냐고. 자고 있어서 답장을 못 했더니 자는 거 같으니 그냥 첫 차로 갈게 라고하는 카톡도 와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살짝 짜증이 났다. 


기차, 특히 KTX는 잘 안 타고 웬만하면 고속버스를 타는데 부모님과 만나는 얼마안되는 주말 시간을 이동에 쓰는 게 더 아깝고, 기차표도 그때 거 밖에 없었고. 


아니, 기차표도 그때 거 밖에 없으니까 귀찮게 표 구하기 싫어서 아마 이유를 붙인 거겠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거에 대해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타입도 아니고 나는. 주말에 8시에 집 도착하면 하루를 온전히 집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슨 숙박플랫폼이든 여행플랫폼이든 지들이 포지셔닝을 어디로 가져가는지는 내 상관이 아니고 기차표가 그런 플랫폼들에 상당 부분 묶여있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그냥 매번 기차표가 없는게 짜증이 났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같이 안 가도 되는 건데 내가 가려는 시간에 굳이 지가 같이 가자고 붙어 놓고 직전에 되서 바꾸자니 마니 내 결정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이 불편했다. 동생은 아빠가 차 태우러 두 번 나올까봐 그랬다는데 건 내 알빠도 아니고. 차야 집에 내가 도착하면 내가 태우러 나오지 아빠가 나올 일도 없다. 그리고 난 네이버 지도에 찍은 경로상에 아침에 아파트까지 가는 버스도 봐놨다. 


하여간 뭘 결정을 같이 할 거면 생각을 공유하든 의도를 공유하든 해야될 건데 그런 것도 없이 직전에 저러니까 나로선 짜증이 날 수 밖에.    


뭐 그래서 답장 안하고 침대에서 나와 세수를 했다. 마침 룸메는 외박이라 맘 편하게 준비했다. 


골목이 왜 이렇게 밝은가 했더니 광원이 하나 있었다. 4시인데 왜일까.

4시 22분 127번 버스를 타고(맞나?) 서울역 근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해서 '혹시 놓치나?' 하고 고 뛰었다. 이 계단, 저 계단에 노숙자가 각 한 명씩. 


뛰고 있는데 동생한테 어딘지 묻는 카톡이 왔다. 늦을까봐 일단 카톡을 씹고 마저 뛰어서 길을 찾아갔다. 역에 도착하니 출발 7분 정도 전이었나, 5분 전이었나? 그때 쯤 동생한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다. 도착했는지, 몇호차인지.


동생은 내가 어젯밤부터 답장을 안해서 그런지, 어제 일을 하고 집에와서 잠을 4시간 밖에 못 자고 나와서 그런지, 5시 27분 차 타기가 싫었는데 나 때문에 그렇게 해야돼서 그랬는지.


아빠가 역 앞으로 태우러 왔다. 동생은 아빠한테 "세수도 못하고", "4시간 밖에 못 자고", "오빠가 무리를 같다." 자기가 힘든 걸 내 탓을 했다. 


아무 말 안하고 그냥 듣고 있었지만 "오빠가 무리를 한 거 같다." 가 가장 깊숙히 들어온 거 같다. 내 무리를 왜 지가 판단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무 문제없던 내 선택을 누군가 틀린 선택처럼 몰아가는 것도 싫었다. '그냥 각자 알아서 따로 왔으면 아무 문제없었잖아.' 뭐 그랬다. 이 때 차 안에서도 내 마음이.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밥을 차려준다길래 같이 준비해서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국이 확실히 직접 육수를 내서 하니까 남다르긴 했다. 매일 급식먹거나 밖에서 사먹다가 집밥 먹으니까 달랐다. 어디 괜찮은 한식집에나 가야 먹을 상태 좋은 반찬도 많고.


그리고 식탁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이 다른 가족들보다 그래도 내가 집에 오래 있는 바람에 '엄마한테 보조 맞춰서 이런 일도 잘 할 수 있게 됐구나.'  청년이음센터가서 전 부치고 할 때도 선생님이 나더러 많이 해봤나 보다 했었지. 사소한 효능감, 작은 성취감.


그러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내가 쩝쩝거렸다. 쩝쩝거리지 않고 먹는데에도 에너지가 드는 걸 느꼈다. 나도 최근 시험과 일, 운동, 공부 등 꽤나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 작은 에너지가 크게 느껴졌나보다. 집에와서 긴장도 풀리고. 내 잘못이다. 그랬더니 옆에서 동생이 짜증을 냈다. 


문화나 당연함에 대한 책을 읽었다보니 어느 나라에서는 쩝쩝거리는 게 매너인데 그냥 지 마음이 불편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새벽에 온 동생 카톡으로부터 무의식 중에 쌓여있던 짜증때문에 생각한대로 그만 말해버렸다. 그냥 미안하다 그러고 안 쩝쩝거리고 먹었으면 되는 건데, 당연한 거에 당연하게 맞춰주는 게 예의라는 것인데, 동생이 짜증내면서 얘기하니까 나도 말이 곱게 안 나갔다. "집에서 좀 편하게 먹자. 니 마음이 불편한거지 이 행위 자체에 불편할 건 없는데."


그리고 동생이 밖에서도 그럴까봐 말해주니 걱정하니 어쩌니 하며 말했다. 저번에 산도토리 임자탕 먹으러 갔을 때 미리 들어가서 예약 안 걸어놨다고 뭐라 하던 셋째누나가 했던 말처럼. 내가 음식점에 더 늦게 도착한 평행 우주에선 그게 무슨 문제일까.

그냥 솔직하게 불편하다고, 거슬린다고, 손해본 거 같아서, 말하면 안되나? 걱정해서 그런다 하지말고.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나도 그러기 싫어서 그런다고. 다시 생각하면 이기적이다.


나도 확실히 사회성이 떨어진다. 이런 걸 보면. 그냥 해도 되는 건데. 가족들도 밖에서보다 편하니까 서로 막하고 특히 다섯 째 놈은 집에서 10년이나 그 지랄하고 살았으니 측은한 마음도 있고, 동시에 병신 폐급새끼같다고 생각하는 충동도 있겠지. 뉘 집 자식들인데. 그리고 동생은 실제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던 적도 있고. 강산이 변할 시간동안의 내 한심한 짓거리에 쌓였던 짜증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이해한다. 이해 못하면 어쩔건데 이제부터라도 잘하는 수밖에 없지 내 손에 든 선택권은.


뭐 그렇게 일단 식탁에서 동생이랑 시비 한 숟가락 했는데. 경산 출발할 시간 돼서 경산 갈 거라고 오는 차 안에서 아빠한테 다 얘기했는데도 아빠는 나가는 시간 다 돼서 밥 먹으러 어디 딴 데 가는 줄 알고 있지를 않나, 어디 교회에서 축도를 해야할 일정이 있다고 양복을 입고 경산도 같이 안 간다 그러질 않나. 왜 미리 말을 안 해주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아빠는 나이도 많고 원래도 불가해한 분이니 뭐 그러려니 했다.  

결국 점심은 가까운 곳에 가서 먹었다. 아빠는 카레밥. 괜찮게 드셨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날씨도 엄청 좋았다. 아빠는 약속 장소로 가고 엄마, 동생, 나 이렇게 경산으로 갔다. 아빠가 작은 차 타고 따로 가고 큰 차는 내가 몰고.


 한시간 좀 넘게 운전해서 도착했다. 나올 때쯤에 한번 네비 지도랑 실제 지형이 헷갈려서 길을 잘못 선택했다. 6분정도 늘었다. 처음에는 이럴 때 스트레스 받았는데 내 인생도 그렇고, 잠깐 돌아가도 어차피 본류로 합류할 수 있는 걸 알고, 괜히 '아! 길 틀리면 안되는데.' 하는 게 더 위험하다는 걸 아니까(인생도) 요즘은 아무렇지도 않다.   


도착해서 나올 시간을 정하고 목욕을 했다. 엄마는 아빠랑 30년인가 40년 전 쯤에 왔던 곳이라고 했다. 그 땐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다나. '모든 세상이 어떤 시대에든 다 그렇죠.' 하는 생각은 속으로만 하면서 가만히 들었다. 엄마가 나는 볼 수 없는 엄마만의 무언가를 돌아보고 계시는 것 같으니.  


물도 좋았다. 온천물이라 다르긴 한가보다. 문제는 언젠가부터 따뜻한 물에 있다보면 손, 다리에 쥐가 나서 예전같이 있을 수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적당히 하고 미리 나와서 혈액순환에 도움될만 한 것들을 하면서 쉬었다.


여자팀이 나오자마자 나는 가창실기 회의를 비대면으로 해야했다. 회의때문에 가족 시간에 집중이 안되는 것이 불편했다. 가족 시간에 따로 빠져서 그렇게 해야되는 것도 짜증나기도 하고. 동생은 그 와중에 음료 먹자고 정해놓고 권유해서 또 약간 불안했다. 정해놓고 권유하면 그건 명령아닌가? 어쨌든 그래서 동생 말 따라서 커피시키러 들어갔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집중이 안되고 신경이 딴 데로 가서 지금 못 먹겠다 얘기하고 나왔다. 


조원 한 명이 a.i로 대본을 받아온 거 같았다. 회의도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다들 하기 싫었던 눈치. 이 때부터 마음이 갑자기 편해졌다. 전날부터 주말 일정 중에 회의가 있다는 점 때문에 계속 눌려있었던 모양이다. 압축돼있던 속이 확 풀리면서 가벼워졌다.       

핸드폰으로 비대면 팀플 중인 내 모습을 동생이 찍어줬다.

 그리고 갑자기 아빠가 나타났다. 다른 목사님이 근처에 사셔서 차를 얻어타고 오셨다고 한다. 아빠가 빠진 거도 그랬는데 아빠까지 나타나니까 모든 게 더 좋아졌다. 

      

 차타고 점심먹으러 갈 때 얘기했었지만 팔자 좋다. 날 좋은 오후에 가족끼리 외식도 하러 가고, 애프터눈티도 그렇고, 단란한 가정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닌가. 투정을 좀 부리자면 목사집 자식들은 주말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토요일은 설교준비, 일요일은 예배. 가족의 단란한 시간이라는 건 없는 편인 직업이다.(잘은 모르고, 모든 목사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앞부분 평생은 그렇게 살았지만 그래도 지금에서라도 이런 시간을 부모님과 가족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다가 동생이 새벽부터 불편했던 얘기를 꺼내서 그 주제로 동생이랑 대화를 했다. 내가 운전 중이니까 집에 가서 하면 안되겠냐고 아빠는 뒷좌석에서 걱정을 하셨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아빠가 남매가 감정을 풀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또 눌러서 집어넣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특히 엄마가 평생을 자식들 감정을 그렇게 눌러서 숨기게 만드니까 자식들이 병이 나는 거라는 원망이 올라와서 순식간에 내 앞으로 쌩 지나갔다. 종교인의 자녀들에게서 지나친 죄책감이나 완벽주의같은 심리적인 문제가 자주 나타난다라는 것은 이제는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봐서 지겨운 말이 됐다.


 나는 내가 무엇이 불편했는지, 너의 어떤 말이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는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동생은 지 말로는 생리라서 그랬다니 미안하다 했다. 진짜 지가 잘못했다고 느끼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동생도 아빠가 고생할까 하는 마음에 한번에 같이 가려고 하다 그랬다고 이때 얘기했다. 대화가 끝나고 다시 생각해봐도 내 잘못은 아닌 거 같다. 공격도 내가 먼저 당했고 나는 동생의 무언가에 먼저 개입하지도 않았다. 쩝쩝거려놓고 말 싸가지 없이 한 것만 내 잘못이다. 고칠 건 고치고. 나도 가족이라고 편하게 하지는 말자. 더 예의를 지키는 게 좋겠다.


 일요일에 동생은 오전에 먼저 올라갔다. 내가 태워다주고 와서 나는 쉬다가 오후에 동생이 예매해 기차타고 올라갔다. 엄마가 간식용 떡을 챙겨줬는데 냉장고에 넣어놓고 하나씩 잘 먹고 있다.    


 동생이 돈이랑 애플워치를 놓고 가서 내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만나서 돌려줬다. 이 때도 자기가 돈을 ATM에 넣어줄테니까 뭐 어쩌고 했는데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까 또 뭔가 탐탁찮다는 듯이 굵은 목소리로 왜! 하고 따지듯이 묻는데 어이가 없어서. 아니 괜찮으니까 괜찮고 그게 니 호의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아무 의미도 효용도 없고 귀찮다고, 난 빨리 기숙사 들어가서 쉬고 싶고. 지갑에 현금 50만원 정도 넘게 들고 다닌 것도 반 년이 넘었는데. 전해줄 물건 전해줬으니까 가려는데 왜 자꾸 니 하고 싶은대로 이미 결정해놓고 거기에 싫다는 나를 끌어들이려는 거야. 


 전부 다 가슴에만 남은 말들이고 실제로는 그냥 동태눈까리한 채로 "괜찮아." 만 반복하면서 딴 곳을 봤다. 불편해하는 내 기색을 살피면서 못마땅해하는 동생에게 조심해서 가라고 말하며 어깨를 살짝 안아주며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오빠다운 행동이었다.




 싸이코패스 팀장 때문에 직장에서 힘든 것도 알고, 호르몬의 영향도, 남자친구와의 문제로 머리가 복잡한 것도, 챙겨줘야 할 부족한 오빠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근데 속상하다.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리고 나도 이제 남들에게 안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주고 싶은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다는대로 할 수 있는 쪽으로 해야 된다. 어제도 깔개를 안 털고 줘도 된다는 사람한테 털고 줬다. ㅋㅋ 좀 큰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하니까 그 때서야 그 말이 들어왔다. 그 전까진 지나가는 사운드이기만 했지, 말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동생과의 일을 통해서 "뭐 그래라 야."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한 거 같다는 걸 느꼈다. 실제로 할 수 있게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그리고 저번 글에서 왜 자꾸 뭔가 남한테서 나에 대해 듣고 싶은지 스스로 궁금해했었는데 이번 주 <불교와 정신분석학> 강의에서 답을 하나 찾은 것 같다. 이것도 우연히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내용이 찾아왔다. 나르시시즘에 관한 내용이었다. 


관찰 망상현실의 자아를 스스로 계속 관찰하여 이상에 맞추고자 애쓰는 특수한 심리적 상태 


그래서 그런 거였나.


 

저번에 목차만 훑어봤던 학습법 특강 <완벽주의 극복하기> 한 시간 짜리 강의도 이번에 봤다. 


완벽주의 극복하는 7가지 실천

1. 흑백논리 사고방식 벗어나기

2. 실수의 중요성 과대평가하지 않기

3.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기

4.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 세우기

5. 미진한 것을 미진한 채로 그냥 놔두기

6. 신속하게 결정하고 발 빠르게 행동하기

7. 과정지향적 태도 기르기


결국 역시 책이나 센터 상담이나 마음과 관련된 콘텐츠에서 배웠던 것들과 일맥상통한다.

내가 생각보다 옮겨가기 위해 적절한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3번 항목에서 동갑청년이 했던 말과 강사가 비슷한 말을 한 것이 인상 깊었다. 


"자기가 잘하고 있는 거를 축소시키고 

남들이 잘한 거는 확대시키고. 인지오류란 말이야."


"객관적인 게 아니라 굉장히 주관적인 거."


"작은 성취 무시하지 않기."


낙관하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인 것일 수도 있다고 한 말 그대로였다. 


내 작은 성취들을 열거해봐야겠다. 그리고 별로 작지도 않다. 자랑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잘한 걸 똑바로 이야기 못하지도 말자.


식물을 안 죽이고 잘 키우고 있다. 특히 요즘 쉐프렐라 홍콩은 많이 커서 그런지 물도 더 많이 먹는 것 같다. 처음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았던 뿌리도 어느새 밖으로 많이 드러나 보이고 있다. 원래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하고 꽃말은 '함께하는 사랑' 


물 먹는 심지도 있어서 언제 물 주면 될지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어떻게 이걸 못 키울 수 있는지 생각할 게 아니라 내가 물을 꼬박꼬박 부지런하게 잘 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겠다.  

작년 9월부터 하루 30분~1시간 영어 말하기 연습도 하고 있다. 최근 몇 달은 매일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


골격근량은 심할 때는 33~35kg 으로 편차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33kg 후반대가 나오는 걸로 봐서 이 쯤이 맞는 것 같다. 운동도 산책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일주일에 15~17시간 일도 하고 있고. 선생님들한테 도움이 못 되는 거 같아서 쪼그라들 때도 있고, 부모님보다 나이 많을 때도 있어서 쪼그라들 때도 있는데 버티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유치원에서 살아남고 있다. 시험기간에 하루 안 갔더니 애들이 왜 어제 안 왔냐고 하길래 깜짝 놀랐다. 너무 감동이었다. 


이번에 시험도 확인된 게 94점, 96점이니까 시험도 충분히 잘 봤다. 6점, 4점에 눈을 돌리는 순간 불행해진다고. 그냥 흘려보내고. 한 달에 두 권은 책도 읽고. 


또 욕심내다가 무리해서 탈 날까봐 이번에는 "신체가 하는 말만 들어줘도 병이 안 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불덮고 낮잠자야 한다." 하는 말을 명심해서 어제 두번에 나눠서 10시간을 잤다. 푹 쉬었다. 오늘도 글을 쓰면서 놀고 있지.


 일어나서 이불 정리하고, 나갔다 오면 신발 정리, 가방 정리부터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먼저 하고. 좋은 습관도 많이 가지고 있다.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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