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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달호 씬, 언제 이리로 들어오셨소?
권소운은 딴에는 조심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흔히 일컫는, 어쩌다 인생 막장이라는 탄광촌에서 살게 됐냐고, 에멜무지로 궁금증을 풀어놓을 수는 없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진 젊어서 험하게 사셨나 봅니다. 상해 사건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버님이야 철없던 시절 사고 친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추성영이 말했다. 자세한 내막은 저도 모릅니다만, 사소한 시비 끝에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힌 모양입니다. 그 일로 교도소를 갔다 왔고, 듣기엔 출소하자마자 북면으로 들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정착하실 무렵만 해도 여기 북면 탄광이 잘 돌아갔으니까요.
교도소? 가만가만 지금 교도소라고 했소? 화들짝 놀란 권소운은 급하게 물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추달호가 규율부장을 칼로 찌른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됐는지는 까맣게 몰랐다. 하긴, 넝마주이 왕초와 똘마니들이 가만있을 턱이 없지 않나. 그러니까 추달호 씨가 상해 사건인가 뭔가로 감옥살이했다는 거요?
제가 아는 한 그렇습니다. 아, 권 선생님은 모르셨나 보군요. 다 까마득한 옛날 일인데요, 뭐. 심드렁하니 대꾸한 추성영이 몸을 일으켰다. 이쯤에서 슬슬 제 아버님을 뵈러 일어서실까요?
어떻게 그 생각을 못했을까? 수습기자일망정 명색이 유명 일간지 기자 생활을 했으면서 말이다. 짧지만 사회부 선배를 따라 경찰서 출입도 했었다. 굳이 기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추달호의 후속 인생을 더듬어봤더라면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추달호가 자신을 위해 규율부장을 칼로 찌른 사실만 머릿속에 담아두었지, 그 사건으로 그가 어떤 대가를 치렀을지를 권소운은 헤아려보지 못했다. 하찮은 가족사진 한 장 때문에 추달호 인생만 망가지지 않았나. 시국 사건으로 쫓기는 처지여서 경황이 없었다고 얼버무리기엔 사건의 여파가 너무 막심하지 않나.
추달호의 칼부림 사건 당사자 중 한 명인 자신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규율부장을 탓하더라도, 추달호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원인을 제공한 건 엄연히 햇병아리 기자 권소운이었다. 추달호를 무슨 낯으로 보나? 권소운은, 추달호의 상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를 추성영에게 캐묻지 않을 수 없었다. 흉기가 어쩌고 어물거리던 추성영이, 넝마주이 시절 칼로 누군가를 찌르고 도망쳤다가 경찰에 체포됐노라고, 아버지 추달호의 과거 행적을 나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아뿔싸! 권소운은 탄식했다. 재판받고 교도소에서 고생했을 추달호를 떠올리자 도저히 그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불현듯 면회하러 올 사람도 없었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가 겪었을 외로움이 아프게 파고들었다.
용서를 빌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발길을 돌리자니 지난 세월이 목덜미를 움켜쥐고, 내처 걷자니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그 와중에도 추성영은, 아버지의 칼부림과 권 선생님의 가족사진이 얽히고설켰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짐작이지만 아버님께서 권 선생님의 가족사진을 그토록 애지중지한 것도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권소운은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을 뻔했다. 죄짓고 재판정으로 향하는 심정이 이럴까. 십 년 이십 년 감옥생활은 물론 심지어 모진 고문 끝에 감옥에서 죽어간 동지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볼 면목이 없어 숨죽이며 살아온 인생이 아니던가.
추달호에게 뭐라 변명하나? 시국 사건 동지들에겐 속죄하는 심정을 잃지 않았으면서 넝마주이 추달호는 허술히 대한 죗값을 무슨 수로 치르나? 나 때문에 아버지가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다고 아들인 추성영에게 고백해야 하나? 부채감에 떠밀려 나섰던 북면행임을 인정하더라도 권소운은 자신이 모르던 또 다른 빚이 불거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발길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꼼짝없이 추달호를 마주할 수밖에.
추달호가 살아냈을 날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넝마주이도 모자라 전과자로, 결국 광부로…. 거지나 진배없이 손가락질받던 넝마주이 굴레를 한 치도 벗지 못한 신산한 삶이 아닌가. 추달호 인생이 폐광촌에 이른 덴 햇병아리 기자 권소운이 일조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점을 곱씹을수록 권소운은 자책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늦었지만 추달호에게 용서를 빌리라 마음먹은 권소운을 추성영이 데려간 곳은 집이 아닌, 정식 개관을 앞둔 탄광 생활사박물관이었다. 추달호를 보러 곧장 가지 않고 왜 박물관에 왔을까 했지만, 그럴만한 사연이 있으리라 여기고 권소운은 묵묵히 추성영의 뒤를 따랐다.
추성영이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하는 전시물들을 그는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생필품 배급소 사무실, 녹슨 담배 간판과 동전 투입구 공중전화기가 출입문을 장식한 북면 상회, 양조장, 이발사가 남자 머리를 깎는 이발관, 무쇠 난로에 차곡차곡 얹은 양은 도시락을 둘러싼 아이들이 장난치는 교실을 지나 양은 주전자가 줄줄이 내걸린 선술집에 다다르도록, 권소운은 한 가지 물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무엇이 추달호를 움직이게 했을까. 제 한 목숨 건사하기에 급급한 넝마주이가 감히 합숙소 규율부장을 칼로 찌른다? 상식선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육십 년대식 고물 버스 실물을 들여놓은 버스 정류장과 싸전, 공중변소도 좋지만 권소운은 박물관 말고 추달호가 사는 진짜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추달호에게 직접 물어야 했다. 무엇이 넝마주이 추달호를 물불 안 가리고 규율부장을 칼로 찌르게 했는지를 말이다.
저기, 저분이 제 아버님입니다.
광업소 사무실을 돌아간 추성영이 광부 사택을 재현한 전시 공간 앞에서 문득, 멈추었다. 아버님이라니? 권소운은 추성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추성영의 손이 머문 자리엔 작업복 차림 광부 인형이 작업화를 벗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문지방에 걸터앉은 광부는 방금 퇴근한 듯했고, 머릿수건을 한 여자는 저녁상이라도 차리는지, 부엌 바닥을 차지한 밥상에 손을 뻗고 있었다. 연탄 찍개와 연탄 아궁이를 눈으로 훑던 권소운이 광부 인형을 보며 말했다.
저 인형이 아버님이라니, 그럼 추달호 씨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권소운은 휘청했다. 세상을 떠나다니…그래선 안 되지… 한평생을 흘려버리고 이제 찾아왔는데. 얼이 빠진 그는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허망하게 사람을 맞이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당신한테 사죄하려고 삼십여 년 만에 달려왔는데…. 광부 인형 얼굴을 짯짯이 뜯어봐도 추달호를 닮지 않았다. 아니, 어설픈 플라스틱 인형에게선 규율부장을 칼로 찌른 넝마주이 추달호의 서슬 푸른 기개가 안 느껴졌다.
권소운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가 생활사박물관 건립에 강한 집착을 보였고, 실제로 전시물을 모으려고 사방팔방 안 돌아다닌 데가 없었다며 추성영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손수 유품 정리를 하셨지요. 생활사박물관 전시물도 하나하나 수집한 아버님이셨으니 권 선생님 가족사진도 챙겨두셨던 모양이고요. 권 선생님께 꼭 전해주라고 신신당부하셨지요. 선생님께 보낸 편지도 아버님이 직접 쓰셨고요…어렸을 적부터 별나게 가족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습니다.
없는 살림에도 아버지는 고물 카메라를 샀고, 식구들 사진 찍느라 필름 값도 적잖이 들었을 거구요. 광부들 사이에서도 별종 취급받았으니 말 다 했지요. 그 때문에 어머니하고도 심심찮게 다투셨지요. 그 바람에 우리 형제들은 사진 하나는 남부럽지 않게 많았어요…아버진, 한풀이하듯 사진을 찍어댔으니까요…권 선생님이 가족사진을 몹시 찾으실 거라고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 자기 집 방과 부엌을 고스란히 되살린 거라고, 광부 사택 전시관을 설명한 추성영이 사전에 준비한 듯, 추달호 인형에게 다가가 익숙하게 작업복 주머니에서 꺼낸 엽서 봉투를 내밀었다.
권 선생님, 사진입니다.
권소운은 기꺼이 받았다. 추성영이 광부 인형을 산 사람 대하듯 해서 그런지 몰라도, 추달호에게서 직접 전해 받는 듯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고맙소, 추 형. 세월이 많이 걸렸소이다. 권소운은 죽은 추달호에게 고한 뒤, 엽서 봉투에서 누런 얼룩이 파먹은 가족사진을 집어냈다. 딸애를 안은 아내 어깨에 손을 얹은 젊은 권소운이 웃고 있었다.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추달호와 무관히 보낸 세월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가 살았으면, 술이라도 한잔 걸치며 넝마주이를 화제로 숱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터였다. 아내와 딸애는 안중에도 없었다. 손과 눈으로 사진을 만지고 보았을 추달호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만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깟 흑백 사진 한 장이 뭐라고 평생 간직하셨소? 난, 당신한테 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 뭔 배짱으로 규율부장을 칼로 찌른 거요? 험한 꼴을 당하리라는 거 뻔히 알면서 말이오. 가족사진을 보며 추달호를 생각하는 권소운에게 추성영이 궁금한 게 하나 있다고 쾌활하게 말했다.
권 선생님은 기자셨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넝마주이 아버지와 어울리셨는지요?
나? 나도 사고 쳤지. 사진 봉투를 외투 주머니에 넣으며 권소운은 스스럼없이 대꾸했다. 아버님처럼 용감무쌍했던 건 아니고 쥐꼬리만 한 사고치고 넝마주이 합숙소로 숨어들었던 거요.
후련했다. 오랜 세월 몸과 마음을 옥죄었던 사건을 뱉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햇병아리 기자 권소운이 넝마주이로 변신한 건 ‘XX민족해방전선’사건이 터지고 나서였다. 하부 조직원이었던 그는 선배 기자의 도움으로 넝마주이 합숙소로 피신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경찰과 중앙정보부 쪽에 손을 써서 구속을 면하게 해준 이는 신문사 사주였다. 곧이어 추방이라는 형식을 밟아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추달호가 규율부장을 찌르고 도망친 날, 우연히 선배 기자가 사건이 잘 마무리됐음을 알려주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