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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베 Aug 24. 2024

감옥의 안과 밖

공원묘지에서

약속 장소인 사거리 공중전화 부스에 서 있는 나를 낚아채듯 차에 태운 고상필이 다다른 곳은 공원묘지였다. 묘역이 눈에 익었다. 분신한 지회장이 누워있는 C 시 외곽에 자리한 솔밭 공원묘지. 보슬비가 내렸고, 물안개가 산등성이를 타고 흘렀다. 나는 이곳을 찾은 까닭을 고상필에게 묻지 않았다. 그는 앞장서서 지회장 무덤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느릿느릿 뒤를 따랐다. 중앙계단 중간쯤에서 좌측 묘역으로 꺾어 들자, 지회장 무덤이 이내 나타났다. 묘비번호 379. 추모제를 열흘 앞두었음에도 흉상 기단석은 보이지 않았다. 고상필은 비석을 마주하고 머리를 숙였다. 무덤 왼쪽, 유리 상자에 담긴 ⌜불꽃 영혼⌟ 표지가 누렜다. 누가, 언제 넣어둔 걸까. 새 책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고개를 든 고상필이 말했다. 

“지회장님도 저 물안개를 보고 있겠죠.”


그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감상이 물씬한 말투였다. 언젠가 사회과학 이론서만 파고드는 그에게 농담처럼 말했었다. 소설을 읽으라고. 그리고 말랑말랑한 인문서도 손에서 놓지 말라고. 마르크스가 아내인 예니에게 쓴 연애편지를 보았냐고. 그 독일인 사내가 편지 끄트머리에 언제나 천만번의 입맞춤을 그대에게! 라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호소했음을, 나는 슬쩍 내비치곤 했다. 


그가 노동자들 학습모임 초기에는 소설을 다룬다기에, 나는 적극적으로 그에 맞는 작품들을 추천했다. 초원아파트 책꽂이에 꽂힌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트로츠키가 쓴 ‘러시아 혁명사’, 레닌 저작집, 혁명가 ‘빅토르 세쥬르’ 평전보다도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조지오웰의 ‘웨건 부두로 가는 길’과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였다. 고상필이 활동 중인 노동자 해방 연대는 ‘혁명적 사회주의운동, 이른바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합법단체였다. 고상필 말로는, 그 노선을 정립하기까지 동료들과 칠, 팔 년을 이론 작업을 했노라고. 고상필이 직업혁명가임을 인정하더라도, 아니 그랬기에 나는 그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더욱 섬세한 관심을 가지기를 바랐다. 혁명가도 인간탐색에 나선 탐험자와 동의어라는, 나의 취중 한담에 그가 동의했는지는 모르겠다.


명성기업 사태를 화재로 삼던 고상필이 가끔 혼자 여기에 온다고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보슬비 탓만은 아니었다. 왠지 침울한 그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지 싶었다. 갑자기 보자고 한 거며, 밑도 끝도 없이 차에 태워 도착한 지회장 무덤이며, 침묵이 더는 그에게 도움이 안 되리라 여겼다. 


“권 형사 있잖아, 거, 황당한 친구더라구.” 나는 짐짓 목청을 높였다. “글쎄, 나더러 ⌜불꽃 영혼⌟ 같은 책을 뭐 하러 쓰냐고, 딱딱거리잖아. 그런 골치 아픈 거 쓰면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돈도 안 될 거 같다, 누가 사보기나 하냐고, 사람 속을 긁어대는 거야.”

“그래요?” 고상필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 그래서 내가 그랬지, 권 형사, 당신은 왜 경찰에 투신하셨냐고? 언젠가 테레비에서 보니까, 119도 그렇고 경찰도 3D업종 못지않게 힘들다던데. 그러니까 뭐랬는 줄 알아?”

“뭐랬어요? 그 작자가?”

“보시다시피 힘들죠. 초원아파트 같은 쫴만 한 아파트도 수색하고 직업혁명가도 붙잡아야 하니까. 그러면서 이 친구가 실실 웃는 거야.”

“웃어요?”

“응, 웃더라고. 그래 열이 확 받기에 왜 경찰에 투신했냐고 따졌지. 작가야 원래 돈벌이가 안 된다 치자, 경찰은 낫냐고 막 쏘아댔지. 그랬다가 나만 바보 됐잖아.”

“선배님이 바보가 되다니요?”


“아, 그 친구가 나를 가지고 놀자고 작정했나 봐. 글만 써서 그러시나, 작가님이 뭘 모르시네 그러더니, 뭐랬는 줄 알아? 생계가 보장되지 않습니까! 딱 그러는 거야. 퇴직하면 연금도 나오고, 그러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 내 기를 팍 죽인 그 친구가 아예 대놓고 자랑질이야. 노량진 학원가에 가봤으면 그런 소리 안 할 거라나. 경찰직에 목매다는 수험생들이 바글바글한다고. 요즘은 경찰공무원 합격하면 대학에서도 플래카드 달아준다나. 공무원이 대세인 줄 모르면서 글 쓴다고 하지도 말라잖아.”

“권 형사라고 했나요. 만나보고 싶네요.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잖아요.”

“상필아, 그 친구 칭찬할 때가 아니다. 나만 당한 게 아니다. 너도 걸고 넘어갔어.”

“저를요?

“그래. 살아있는 고상필에게 죄책감을 팍팍 심어주지 않냐, 고상필 행동을 영원히 기록하는데 고상필이 반대하지 않았느냐, ⌜불꽃 영혼⌟을 들추면서 공격하는데 어찌나 열이 받던지! 기껏 한다는 소리가 범법자를 걱정하는 형사는 보다보다 처음이라고, 신부나 스님으로 나서지 왜 경찰이 됐냐고 퍼부어줬지.”


“권 형사라고 했나요? 날 체포하겠다는 형사가 내 걱정을 다 하고, 고맙네요.” 고상필이 물안개를 눈으로 좇으며 중얼거렸다. “여기 오면 이상하게 맘이 편해져요. 지회장님하고 얘기하는 것도 좋고요. 처음 공장에 들어갔을 때도 생각나고요. 엄청나게 충격받았죠. 입사원서 내고 보건소에서 피 빼고 검진받고 오니까, 바로 일을 시키더라구요. 현장에 딱 들어갔는데 사람 정신을 쏙 빼놓더라구요, 기계들이. 용접 소리가 피융피융 나고, 용접불꽃이 사방에서 팍팍 튀고, 로봇이 휘디딕 팔을 휘둘러대고 프레스는 쿵쾅대지, 전쟁터가 따로 없더라구요. 그렇게 시작한 공장 생활인데 결과가 참 보잘것없네요. 여러 공장을 돌았는데 말이에요. 노조도 못 만들고 현장을 옮기고, 중간에 쫓겨나고, 성진테크에서는 지회장님 잃고. 노동부 타격 투쟁으로 감옥 살고 나왔을 때 선배들이 뭐랬는 줄 아세요?”


나는 침묵했다. 취재할 때 고상필에게서 들었던 터였다. 그는 어쩌자고 오래전 일을 끄집어내는 걸까. 보슬비 내리는 무덤가에서. 내 입으로 답해서는 안 되었다. 그 일에 관한 한 언제나 고상필은 자기 입으로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말해야 했다. 

“다들 그랬어요, 정신 차리라고.” 고상필이 걸으며 말했다. “석방환영회에서 그러더군요. 사회주의 폭삭 망했다, 노동운동엔 희망이 안 보인다, 눈알이 휘도록 급변하는 현실에 눈떠라! 그 선배들은 현장에서 철수한 뒤였지요. 솔직히 감옥 안에 있을 때 밖에서 들리는 소식이라곤 하나같이 암담했지요. 누구누구 할 거 없이 다 떨어져 나갔다는 얘기만 들었으니까요. 석방환영회에서 날 말리는 선배들에게 그랬지요. 난 노동 운동할 거다, 당신들이 깃발 내린 데서부터 시작할 거다. 빵에서 알았던 사람들 출소하면 그들과 다시 시작할 거라고, 결심을 밝혔지요. 지금 조직 대표도 거기서 만났고요. 내가 이래저래 몸담았던 조직들은 몇 년을 못 버티고 다 흐지부지됐어요. 길게 내다보자. 현장에서 선진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 노동자해방연대는, 남한 노동해방운동이 무너진 그 지점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회의하면서 다시 시작한 조직이죠. 지금 보면 그때 결정을 잘했다, 생각해요.”


무엇이 고상필을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했을까? 이따금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의문이다. 남들은 다 떠난 현장에, 뒤늦게 깃발을 들고 달려가는 그 무모함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하기 좋은 말로 인간애가 넘쳐서? 부당한 현실을 못 참는 성격이라서? 그가 스스로 밝힌 대로 어릴 때부터 반골 기질이 있어서? 논 서너 마지기밖에 없는 아버지가 평생 가난에 찌들어 살리라던 어릴 적 생각을 끊어내지 못해? 그 암담함에 한이 맺혀서? 초등생 시절, 기와 얹은 윗집은 어째서 부자고 우리는 가난할까? 라는 의문을 품었던 그였다. 성장통처럼 한 번쯤 던지기 마련인 그런 물음에 휩싸였다고 해서 누구나 직업혁명가가 되는 건 아니다. 


중학생 때 사회부라는 동아리에 가입했으니 고상필이 어려서 빈부격차에 날카롭게 반응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고교 시절 시사 토론 동아리에서 활동한 것만 봐도 그가 일찌감치 세상의 부조리함에 눈을 떴음을 알만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그 나이에 ‘창작과 비평’과 ‘노동해방문학’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했다니 평범한 고교생은 아니었달까. 교원노조 결성 문제로 탄압받는 교사들을 고상필이 지지한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선발 고사를 치르고 입학한, 오로지 명문대 합격자 배출에만 목매단 고등학교는 학생을 공부 기계로 만들었다. 고상필은 고교 시절을 생각하면 교사들이 휘두른 폭력에 넌덜머리가 난다나. 


시험성적이 나쁘면 몽둥이질로 다스리는 학교 환경을 못 견딘 친구 하나는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고상필은 우열반 편성을 강행하는 학교에 혼자 저항했고, 엉덩이가 피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성장 과정을 되짚어본다고 해서 그가 직업혁명가 기질을 타고났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을 터.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영혼을 살뜰히 뒤진다 해도 알아낼 길이 없음을 나는 안다. 고상필 인생을 낱낱이 해부할 수도 없지만 설사 그게 가능하더라도 한 인간이 노동운동가로 존재 이전한 까닭을 파헤치기란 얼마나 부질없는지!

“선배님.” 고상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시답잖은 의문에 붙들린 내 속내를 알아챈 듯 그가 말했다. “여기까진 이리저리 헤매며 용케 왔네요. 이 길에 들어선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비틀거리면서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지만…”


나는 고상필이 분신한 지회장에게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슬비가 가늘어졌다. 산등성이는 물안개로 뿌옜다. 흐슬부슬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물안개가 빚어낸 풍경이 몽환적이라고 느끼던 나를 일깨우며 고상필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J가 이혼하자는 군요.”

“이혼?”

“네, 이 생활을 접겠다네요. 나와 헤어지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내가 아는 J는 고상필의 둘도 없는 동지였다. 직업혁명가의 길을 함께 가기로 한 부부이자 인생 동지.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함께 해온 두 사람이었다. J는 지금도 어느 노동 운동단체에서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노동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결혼하고서도 아이를 낳지 않았다. 그들이 결혼한 건 고상필이 H 모비스라는 자동차부품 제조공장에 다닐 무렵이었다. 


입사 초기에다, 현장 학습 팀을 꾸리느라 일부러 현장 노동자들에겐 결혼식을 알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400여 명이 축하객으로 참석했다. 그러니까 J는 고달픈 노동운동가의 삶을 마무리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겠노라고,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해가며 살겠노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하필 이럴 때…속으로 읊조리다 괜한 심통이 솟았다. 도대체 평범하게 산다는 게 뭔가? 다들 평범하게 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던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성진테크 투쟁 때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여서 조합원들을 먹였던 J였다. 고상필이 무척 외롭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에이, 날도 궂은데, 괜히 구질구질한 얘기 꺼냈네요”. 고상필이 젖은 머리를 털어내며 과장되게 발을 굴렀다. “이런 날은 삼겹살이 최곤데. 지회장님하고 조합원들하고 삼겹살 지겹게 먹었거든요. 투쟁할 때 공장 마당에서, 교육한다고 수련회 가서, 계곡에서, 강변에서, 만났다 하면 고기 꿔 먹는 게 일이었어요. 오늘 같은 날은 지회장님하고 삼겹살 꿔 먹어야 하는데.” 

그쯤에서 고상필이 무덤 쪽으로 돌아서며 외쳤다. “지회장님, 고기 꿔 먹으러 갑시다! 얼른 나오세요, 그만 누워있고 벌떡 일어나 얼른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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