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 실전노트
1. 정가를 가지고 있는 물건은 영업의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최근까지 난 핸드폰을 하이마트에서 구입했다. 아들의 핀잔을 듣고 나서야 온라인상에 핸드폰을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조금 더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수많은 사이트가 있는 걸 알게 됐고 가장 최근의 핸드폰은 그중에 평판이 좋고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곳에서 구매했다.
하지만 나의 성격상 과연 잘 산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됐고 더 좋은 조건으로 구매한 것처럼 보이는 댓글이나 주위사람들이 신경 쓰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AI의 시대가 되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은 내가 직접 어느 판매사이트가 좋은 조건인지, 언제 사면 좋을지 등을 찾아야 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가장 똑똑한 비서처럼 AI가 나에게 추천을 해주는 때가 곧 도래할 것이다.
내 상황과 위치, 그리고 사용패턴등을 입력하고(말하고) 지금 시점 혹은 어느 시점에 가장 좋은 조건의 핸드폰 구매처를 찾아 달라고 하는 순간, 후회를 동반하지 않을 최적의 구매방법을 알려주는 시대. 이제 더 이상 동네 핸드폰영업점에 호갱이 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다. 정해진 가격을 가지고 있으나 그 안에서 영업을 통해 마진을 획득해 온 영업사원은 투명하게 벌거벗겨져 고객의 선택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포인트는 이것이다. 챗GPT가 됐든 생성 AI가 됐든 계속적으로 학습하는 AI가 발전할수록 고객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기 쉬워질 것이고 그건 영업사원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거.
다만, 이러한 방법을 계속 모르는 고객들은 그냥 호갱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AI의 발전이 인류에게는 축복이나 개개인에게는 잔인할 수 있다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2. 영업사원은 이제 한 곳에 소속되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의 크리에이터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집 근처 새로 분양할 예정인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들른 적이 있다. 방문객들에게 분양을 권고하는 몇 명의 영업사원(?)들이 있었고 짓게 될 아파트에 대한 홍보와 지금 분양신청을 했을 때의 장점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영업과 영업사원의 영업기술에 관심이 많은 난 분양여부를 떠나 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을 담당한 영업사원의 설명을 들었고 나름 친해져 단 둘이 있을 때 물었다.
"팀장님은 그럼 여기 시행사 직원이신 건가요? 제가 볼 때 꽤 고수이신 거 같은데."
"무슨 요, 아닙니다. 알바 뛰는 겁니다."
"네? 알바요?"
"네. 굳이 치자면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죠. 시행사와는 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는 겁니다. 두 달 전에는 서울에서 분양하는 다른 시행사에서 일했었어요."
이제 영업사원은 어느 한 곳에 소속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영업의 노하우를 다양한 회사, 조직에 팔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도 프리랜서라는 형태로 그런 형태를 보이지만 향후엔 더 가속될 것이고 위의 시행사 팀장 같은 형태가 일반화될 수도 있다. 특히 전문직의 영역에서 보여지는 사무장이라는 직책은 그러한 가능성이 실현될 것을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준다. 변호사, 세무사 등의 사무소에는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하고 발굴하는 역할을 가진 사무장이 존재하는 데 이들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팀으로 조직을 꾸려 더 좋은 조건으로 한꺼번에 옮겨가는 행태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생각은 복잡해진다.
첫째, 이제 모든 영업사원은 회사에 채용되어 조직의 힘을 등에 업고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량을 키워 회사나 조직에 스카웃 되어야 한다.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영입되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둘째, 어느 한곳에 소속되는 게 일반적인 게 아닌 시대가 온다면, 나만의 영업 노하우와 스킬,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굳이 어느 한 분야에만 전문성을 가지고 영업을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영업도 가능하지 않을까? 제품이나 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영업의 중요 축인 건 맞지만 많은 부분 AI가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 보다는 고객의 심리를 파악하는 협상의 기술과 에티튜드, 경험이 더 부각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영업사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제품에 대한 전문적 지식에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의 영업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영업의 기술을 함양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재밌는 상상이 계속 펼쳐진다.
미래의 영업에 대한 상상력과 인사이트는 시리즈로 계속 써나갈 예정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고 변화가 시작된 지 시간적으로 얼마 되지 않아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20년 동안 기성영업을 해온 나로서는 새로운 도전이고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술접대는 계속 이전의 방식대로 하게 될 것인가? 골프접대는? 영업사이트를 발굴하는 건 기존의 방식을 유지할 것인가? RFI-RFP-제안설명회-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같은 일련의 입찰형태는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아주 사소한 부분부터 거시적인 부분까지 영업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AI시대는 AI 자체가 학습을 통해 진화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개발한 인류에게도 계속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학습은 근의 공식을 외우는 게 아니라 근의 공식이 나오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실험과 원리를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