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상상하면서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하나 있다. 미래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수치로 측정되어 마치 회사의 주가처럼 매겨지고 등락을 거치기도 하고 등급이 매겨지기도 할 것이라는 것.
일견 비인간적이고 비정해 보일지 모르나 감정보다는 계량적인 수치가 더 객관적이고, 정성평가보다는 정량평가가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그 평가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방법이 인간이 아닌 AI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 뻔하기에 그렇게 변하는 것이 더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나만 해도 프로야구의 스트라이크 존을 판별하는 건 지금처럼 사람이 할 것이 아니라 로봇, 즉 스트라이크 판별 AI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재밌는 역설이 있다. AI가 아닌 시대에도 입사를 위해서는 계량적이고 객관적인 수치가 중요했다.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토익은 몇 점을 획득했는지, 과거에 어느 곳에서 커리어를 쌓았는지 등등. 그 사람의 성품이나 성향등은 면접 또는 같이 생활하면서 대면방식의 형태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AI시대에는 이미 그 사람이 온라인을 통해 오픈하고 발행한 수없이 많은 루트를 통해, 취미며 관심사며, 가족관계며,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 지 까지도 손쉽게 취합하고 분석할 수 있다. 그걸 사람이 일일이 품을 들이지 않아도 AI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 인간의 시대에는 객관적인 것만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을 AI시대에는 만나기도 전에 주관적인 것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전에 내가 썼던 역사를 뒤바꾼 거래들에 등장했던 수많은 협상영웅들도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상황과 처지를 정확히 파악했기에 즉, 프리세일즈에 중점을 두고 거래했기에 가능한 성공들이었다. AI시대 이전엔 객관적이고 공식적으로 오픈되어 있는 고객의 정체와 상황만을 알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고객의 사적인 부분까지도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펼쳐져 있기에 더 부지런한 고객성향 분석의 단계를 거쳐야만 할 것이다. 왜냐고? 경쟁사는 이미 AI를 통해서 너무나 쉽게 그것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각각의 고객 성향뿐 아니라 고객사 전체의 철학과 지향점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한결 수월한 영업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어느 고객사에나 존재하는 기술적, 법적 비토세력 즉, 영업사원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그룹들을 설득함에 있어서 사전조사 프리세일즈의 효과는 엄청나게 발현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영업사원 자신의 가치와 주가를 높이는 데 이전보다 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본인의 가치를 높이는 데 신경 쓰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영업의 시대에는 영업조직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소위 묻어가는 게 가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각자의 능력과 가치가 철저하게 조사되고 매겨지고 등급화되는 시대에는 이제 일하지 않고 무능한 영업사원은 분노의 대상이 된다. 특히 본인이 영업에 대한 인사이트를 주지 못하고 팀원이나 부서원을 관리하는 역할이 주라고 생각했던 영업조직에서의 중간관리자들은 더 이상 설 땅이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기업은 이제 개인의 역량을 펼치는 중개업소, 즉 프로바이더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런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모든 기업의 구성원은 그 기업의 오너와 1대 1의 관계로 계약하고 평가하고 평가받게 될 것이다. 구성원 각자가 크리에이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기에 중간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흐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영업사원은 본인이 가진 장점과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고 내가 왜 경쟁력이 있는 지를 피력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학습하고 내가 어느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이 요구되며 필요에 따라서는 비슷한 위치 또는 서로 전략적인 니즈가 있는 다른 영업사원과 어떤 형태로든 적극적인 콜라보를 꾸려야 할 생각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나 자신을 개개인 한 명 한 명의 등급과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계속해야만 한다. 기업은 그런 개인에게 일의 의미를 주고 합쳐져 성장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장이 되는 역할을 해나간다.
오늘은 다양한 자신의 모습과 정체성이 대중에게 공개되고 평가되는 시대에 영업사원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스탠스에 대한 얘기를 해 보았다. 누차 얘기하지만 아직 완전히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이기에 조금은 포괄적이고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 있으나 이러한 고민과 상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액션가이드도 도출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때로는 당장 무엇을 하지 않아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도 모르는 기운이 생기고 발현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고민은 틀림없이 의미가 있다. 어쨌든 우리는 이미 와있는 미래에 대한 준비를 누군가보다 먼저 하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