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뭔지 아는가? 당연히 알겠지. 이젠 혈액형으로 성격이 어떠니 무슨형과 무슨형이 잘맞느니 하면 고인물 소리를 듣는다. 고인물은 무슨말이냐고? 모르면 당신이 그냥 고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롤이 무슨게임인지 아는가? 30대 이하의 친구들에게는 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스타크래프트가 무슨게임인지 아는가라는 질문이나 진배없을것이다. 진배없을것이다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모르면 당신이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말과 진배없을것이다. 암튼,
난 30대때는 스타크래프트에 50대에는 롤에 푹빠져 산다. 뭐 프로게이머처럼 잘한다는건 아니고 할줄아는게 그거밖에 없으니 주구장창 한다는 뜻이다. 요즘도 퇴근하면 꼭 라이엇에 접속해서 한판은 때리고 그다음은 유튜브 시청하는게 루틴이니까. 그런데 여기서 반전. 난 늘 사용자지정게임만 한다. 쉽게 말해서 온라인으로 접속한 다른 유저와 게임을 하는게 아니라 그냥 컴퓨터를 상대로만 한다. 아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무슨 재미냐고. 사람들하고 하면서 잘하면 영웅도 되고(이걸 게임용어로 하드캐리한다고 한다) 못하면 욕도 먹고 해야 재밌지 않냐고. 일리있는 말이다. 근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놈의 욕이 좀 심해야 말이지. 이제부턴 좀 험한 얘기니 이해하시길.
조금이라도 게임을 잘 못하면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아버지 없냐고 확인한다. 심지어는 사람이 아니라고 벌레취급도 한다. 이걸 몇번 당했더니 뉴비(초심자)여서 가뜩이나 위축되 있는데 힘이 쭉 빠져버리게 되더라. 상대방에게 게임 x같이 한다는 말을 들으면 극찬받았다고 좋아한다. 이건뭐지? 그런 게임의 성격과 분위기를 당연히 여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거나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좀 이상한 사람들이다. 우리 아들이 이상하다는 말은 아니고. 흠) 난 적응이 잘 안됐다. 그래서 욕할일 없고 욕먹지도 않는 컴퓨터랑만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스타크래프트를 했던 30대때도 난 비슷했던것 같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가봐. 난 그때도 당연한 인기모드인 배틀넷 보다는 게임내 자체 미션깨기를 좋아했던것 같다. 이쯤되면 적어도 게임만으로 보면 대인 기피증 환자나 다름 없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평소의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 결국 평소에는 나자신도 모르는 내 잠재의식속의 기질이 게임에서는 발현되는게 아닐런지. 어쩌면 게임을 할때 마음 깊은곳에 잠들어있는 내 진정한 MBTI를 발견하게 되는건 아닐런지.
MBTI 너무 믿지 말라는 얘기다. 큰 물줄기는 맞을수 있지만 강이 뭐 항상 바다로만 흐르는가? 중간에 더 작은 하천으로 빠질수도 있고 목마른 누군가의 목구멍으로 들어갈수도 있고 수영하는 사람의 오줌과 섞일수도 있고. 암튼 때로는 내가 모르는 나같지 않은 성격이, 기질이 발현될수 있다고 생각하자는 거다. 난 이런 성격이니까라고 단정짓고 살면 기회가 왔을때 자연스럽게 포기할수도 있으니까. 내가 대표적인 사례다. 글을 쓰는걸 좋아하고 심지어 이렇게 잘쓸줄(이견이 있을수있음을 넓은 아량으로 감수하겠다) 누가 알았겠는가. 새벽에 화장실 갔다왔다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줄 나자신은 알았겠는가?
에필로그 : 생각해보니 게임하면서 드러난 내 MBTI가 또있다. 난 스타크래프트를 할때 온리 프로토스였다. 지금 롤은 챔피언이(캐릭터) 200개 가까이 되는데 티모만 한다. 다른건 배우기도 싫고 하고 싶지도 않다. 처음에 용기내 배우고 익숙해진 것만 한다는 뜻이다. 이런 성격은 MBTI 알파벳중에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