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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의 밤

05 사랑방 사람들의 놀이

by 김호진

밤새 내린 눈이 무릎까지 차오르고 온 세상이 하얗게 되어 어디가 길이고 밭인지 구분이 없어졌다. 초가지붕 위에 쌓인 눈들이 녹으면서 처마자락 끝에 길고 굵은 고드름이 달렸다. 아이들은 뜀박질로 바쁘다. 누가 더 긴 고드름을 따는지 내기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바람에 추위도 잊었다. 고드름을 아이스크림 마냥 쭐쭐 빠는 아이도 있었다.


들판이 얼어붙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마을까지 밀려오자 할아버지 사랑방은 갑자기 북적되고 생기가 돌았다. 어른들의 헛기침 소리가 부쩍 잦았다. 사랑방 손님들은 꼭 사랑방 입구에서 헛기침을 하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사랑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지만 들어갈 수는 없었다. 가끔씩 지나다가 방문이 열릴 때 힐끗 보면 담배 연기가 꽉 차있고 침침한 것이 어두웠다. 낮에는 주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 짜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아랫목에 목침을 베고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털웃음을 짓곤 했다.


사랑방 근처를 지나거나 외양간 쇠죽을 끓이는 곳에 들어가면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나이 많은 어른들의 숨소리와 웅웅 되며 이야기하는 소리, 가끔씩 헛웃음과 담배 곰방대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국이 아버지가 회사에 쉬는 날이면 사랑방은 소란스럽고 활기가 넘쳐났다. 방안에만 있던 사랑꾼들이 마당에서 윷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날은 사랑방 손님들을 모두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고 내기를 하면 분명 먹을 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날은 윷판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사랑방 손님들이 한바탕 웃고 농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앉아 있곤 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대국이 아버지는 나를 안아서 번쩍 들어 올려 보곤 했다. 내가 태어나고 한 달 뒤에 대국이가 태어났다고 했다. 모두 아들을 낳아서 잔칫집 분위기였다고 하였다. 특히 대국이 집에는 딸을 내리 세 명을 낳았기 때문에 경사 중에 경사였다고 했다. 그리고 문칸방에서 독립하여 새로 장만한 아담한 집으로 이사도 갔다.


사랑방 손님들의 윷놀이는 나무를 작게 깎아 윷을 만들고 작은 간장 그릇에 담아서 던져서 윷을 놀았다. 멍석 위에 숯으로 금을 긋고 윷이 날아가는 높이, 던지는 거리 등을 정하고 편이 갈리면 놀이가 시작되었다. 대국이 아버지의 말에 모두 잘 따랐다. 손님들은 가끔 대국이 아버지의 성씨를 대상으로 쪼가리 '편 씨'라고 농을 떨었지만 도시로 출퇴근을 하면서 직장을 다니는 우리 마을에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매일 김천시내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자전거는 친구 차지가 되었다. 동네 앞 신작로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으면 친구가 차례로 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안장이 높아 위로 올라타지 못하고 가랭이 사이로 페달을 밟으면 한 손으로 운전을 하는 방법으로 탔다. 그래도 몇 번이나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 겨우 탈 수 있었다. 날이 어둑해지고 할머니가 찾아 나설 때까지 자전거 타기도 반복되었다. 오늘 타지 않으면 언제 타볼 수 있는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윷놀이로 한바탕 웃음소리를 떠들썩하던 마당이 고요해지고 어둠이 밀려와 별이 모습을 드러낼 때쯤이 되면 사랑방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오늘은 윷판에서 떨어진 돈으로 달걀을 사 온 모양이다.


사랑방 손님들이 오늘같이 내기 놀이를 하거나 화투 놀이를 하고 돈이 조금씩 오고 가다가 모은 돈으로 작은 잔치를 열곤 했다. 밤이 긴 겨울밤에 출출한 배를 채우면서 사랑방 손님들은 축복 같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랑방 손님들의 웃음소리에 호롱불이 일렁이자 검은 그림자들이 춤을 춘다.


하루는 서부할아버지가 밤 중에 큰방으로 오셨다. 삶은 달걀을 수북이 담은 바가지를 주었다. 할머니와 나는 서너개씩 먹었다. 달걀을 이렇게 많이 본 적은 없었다. 또 한꺼번에 여러 개를 먹어 본 적도 없었다. 암탉이 달걀을 낳으면 따끈할 때 몇번 훔쳐 먹어 본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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