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
항암
2021년 4월 16일 6시 30분.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8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먼저 채혈을 하고 CT촬영실로 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촬영실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쉼 없이 돌아간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촬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촬영실은 연신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암이 발견되어 수술 전에 암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 항암치료 중에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사람, 수술 후 장기들을 확인하고 암의 전이와 재발을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CT검사를 받는 사람 등 이곳은 언제나 보호자와 환자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하고 그 결과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통보를 받을까.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나는 촬영 전에 넣는 조영제 부작용이 심하여 이곳에 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내 몸이 거부하는 액체가 주사되어 들어갈 때 내 몸은 거칠게 저항한다. 그 저항은 매스꺼움과 구토로 나타난다.
촬영을 마치고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물을 마셨다. 소변과 함께 조영제를 빨리 몸 밖으로 빠져나오게 하고 싶었다. 오늘은 조영제 부작용이 심하지 않았다.
10시에 재수술을 집도한 교수의 진료실로 갔다. 교수는 침대에 누워 상의를 올려 달라고 했다. 눈을 감았다.
평소에 나는 수술용 예리한 칼날이 지나다녔을 부위를 남에게 보이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대중목욕탕을 찾지 않은지 오래다. 길고 선명하게 난 상처들은 나를 과거로 데리고 가곤 했기 때문이다. 샤워할 때도 가급적 복부는 보지 않았다. 복부에 남아 있는 수술 흔적은 20여 곳이나 되었다.
실밥은 간단하고 신속하게 제거되었다.
다시 장소를 옮겨 종양외과의사와 면담했다. 항암치료제 투여일을 5월 7일로 결정해 주었다. 투여하기 전에 먼저 혈액 검사를 통해 백혈구 수치와 간 수치를 살펴보고 진행한다고 했다. 투입구는 가슴 위쪽 부분에 심어 놓고 매번 그곳을 통하여 투여한다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투입하는데 6개월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투입구는 항암치료가 끝나면 제거하고 다시 꿰맨다고 했다. 나는 몹시 긴장한 탓인지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잠시 복도 의자에 앉아서 깊은 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항암치료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과 마음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또다시 몸에 투입구를 꽂고 약물을 주입한다는 것에 몸은 벌써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몸속 암세포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가하는 약물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생존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암세포들도 살아남을 방도를 찾는다. 암세포만을 표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지만, 암세포도 나름 진화했다. 그 결과가 바로 잠복과 전이와 재발이다.
바이러스나 세균 그리고 암세포는 동물이나 인간을 숙주로 삼아 기생한다. 숙주가 죽는다면 자신들도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세력 확장이라는 욕망을 멈출 수 없다는 듯이 증식에 매달린다. 벼랑 끝을 향해 달리는 인간의 무제한적인 욕망과도 닮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숙주인 인간의 몸과 함께 공생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항암치료를 받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이 망가지는 폐해를 말하지만 현대의학은 약물을 끊임없이 주입하여 암세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이 너무 심하여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재발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항암 치료를 한다고 하지만, 재발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도리어 항암치료의 독성이 다른 장기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말기에 이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질적으로 좋은 삶을 살다 갈 것인지 아니면 한 가닥 삶의 희망을 가지고 독한 약을 주입하면서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해야 할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조영제가 빠져나가자 갑자기 식욕이 생겼다. 지하 식당에서 야채 비빔밥을 먹었다. 오후 2시 40분에 수술을 담당한 교수와 면담을 했다. 의사는 화면의 수치를 보고 말했다. 혈액 검사 결과와 CT검사 결과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간경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간의 표면이 거칠다고 했다. 3개월 후 진료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근처 약국으로 갔는데 비보험 약이 포함되어 있어 영수증을 보고 놀랐다.
오후 5시에 숲속마을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검붉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산책을 했다. 방으로 가다가 본관 뒤 생활관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둘러앉아 불을 바라보았다. 매주 화, 목요일 저녁에는 불멍을 할 수 있다고 했다.
20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나도 한 자리 끼워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며 잠시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몇 가지 질문도 받았다. 암이 발견된 곳이 어디 부위인지. 얼마나 되었는지. 항암은 하고 왔는지 물었다. 나는 간의 반 이상을 절제하였고 항암은 오늘 예약하고 왔다고 했다.
나는 큰 수술을 했고 앞으로 어떤 삶이 전개될지 모르는 위태한 상황인 것을 알리려 했는데 그분들은 대단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표정으로 담담했다. 한참 주고받는 얘기를 듣고서 이해를 하게 되었다. 불멍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술적 치료뿐만 아니라 항암치료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항암치료를 50번을 하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항암 치료 중에 암세포가 재발하여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장기적으로 여기 머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여자분은 몇 달이 지났지만 항암 후유증으로 고통스럽다고 했다. 손끝과 발끝이 물건을 잡거나 닿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저리고 아프다고 했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힘들어하여 함께 왔다는 젊은 부부는 여기서 제공되는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럴 때면 자꾸만 옛날에 맛있게 먹었던 때가 생각나서 그 음식을 찾는데 막상 아이스크림을 사 오고 라면을 끓여 주면 결국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젊은 부부는 소리 내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그 부부의 말을 듣고 안타까움과 함께 힘이 되는 말로써 위로했다. 그리고 씩씩하게 잘 이겨내어 멋진 신랑과 잘 살기를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함께 왔다는 남편은 믿음직스럽고 금방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졌다. 그 마력은 바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절한 말과 행동이었다. 나도 그날 밤 그와 친해졌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 만난 여성분은 내 옆에 앉아 양말을 벗고 장작불 가까에 발을 가져다 대었다. 그녀는 대장과 간 그리고 난소까지 암이 전이되어 계속되는 항암에 몸이 견디지 못하게 되자 항암을 포기하고 왔다면서 애써 웃어 보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을 이야기를 듣고 나는 '지금 나의 처지가 엄청나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버렸다.
1세대 항암은 1940년대부터 행하던 방법이다. 항간에는 1차 세계대전에 사용하던 살생용 화학제를 쓴다고 한다. 아주 미량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문제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살해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몸에 나타나는 부작용은 심할 수밖에 없다. 방사선 치료는 암을 발생하게 하는 방사선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몸을 더 상하게 하여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한다. 2세대 항암은 표적치료제로 다만 조건에 맞거나 선택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금 몸 안에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최악의 상황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수술이나 치료 과정에서 전이가 발견되면, 현대의학은 방사선 요법과 화학요법으로 종양을 공격해 없애려고 한다. 그러면 종양세포는 유전자에게 돌연변이율을 높이라고 지시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면역체계는 복잡하다. 박테리아 같은 경우에도 과다한 항생제에 대응하여 유전자를 변형시킨다. 이러한 행동들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암세포도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잠복과 이동을 서슴지 않는다. 암세포는 숨어있다가 다시 집을 짓고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서 집을 짓는다. 이때 사람들은 암이 '전이되었다 '와 '재발되었다'라고 말한다.
항암식단은 우리 몸의 염증을 없애고 면역력을 높여 암과 같은 변형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막겠다는 방어전략이다. 매 순간 발생하는 암세포와 염증은 세포의 변형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몸의 메커니즘에 대응할 수 있는 성분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여 몸의 독소를 제거하고 염증을 줄여 면역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자연식을 통한 자연치유이다. 자연에서 나오는 식물들에는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기도 하지만 몸을 보호해 주는 성분을 다량 함양한 것들이 많다.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은 지금 내 몸의 상태를 설명해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은 마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몸을 편하게 하는 음식은 마음까지 편하게 해 줄 것이고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다면 몸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나에게 몸과 마음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하는 방법 중이 최선은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연에 감사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