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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Oct 01. 2023

인디언의 기도

귀가

집으로 돌아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 이제 마을 뒷산을 산책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에 하나가 되었다. 


산꼭대기로 가는 길 중턱에 있는 바위에 잠시 앉았다. 

멀리 하늘을 보다가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현 상황과 하루하루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은 무엇을 해 주고 있는가?  '신은 왜, 언제,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사실 기원전 5세기에 깨달은 현자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신이 창조주라면 왜 악한 사람들이 저렇게 잘 살고 계속해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착취까지 하게 내버려 두는가? 


그들은 형상을 가진 신을 만들기보다는 신을 인간의 내면에서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깨닫게 되었다. 신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다만 사람들은 신을 외부에서만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신은 만날 수 없다고 것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자신의 땅에 무단으로 침입한 백인들과 선교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무턱대고 '믿으라'고만 한다.
우리에게 당신들의 신화와 종교 교리에 있는 기적은 믿어라 하면서 왜 우리가 가진 신화의 기적은 미신이라고 치부해 버리는가?
우리의 신화가 당신들의 신화에 그렇게 뒤진다는 말인가?
정말로 당신의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이라면 신화의 세상에서 일어났던 기적이 모두 인정되거나 아니면 모든 기적이 미신이 되어야 한다.
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되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신들의 신이다.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찾아 이베리아 반도를 출발하였다. 이 항해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처절한 아픔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했다.


흰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유린하기 전까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소유욕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우월과 열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유하려는 욕망이 없는데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할 수 있겠는가? 서로 비교하고 시기하지 않는데 열등이 존재하겠는가? 


원주민들은 자연이 준 선물에 감사하며 살았다. 자연에서 채취한 약재나 식물들은 필요한 만큼만 가져갔다. 부족민들을 위한 들소 사냥도 필요한 만큼만 사냥했다. 사냥이 끝나면 그들은 들소와 들판의 정령에게 감사의 제의를 올리고 죽은 동물의 영혼을 달래어 주었다. 

또한 그들은 땅을 소유하는 개념이 없었다. 대지는 누구의 땅도 아니었다. 대지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을 뿐, 땅을 나누어 소유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었다. 부자가 있다면 가난한 자도 존재해야 한다. 부자가 없는데 가난한 자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가을이면 떨어져 생명을 마감하는 잎사귀를 보면서 자신들도 언젠가는 떠나게 됨을 깨달았고, 봄이면 다시 싹을 틔우는 씨앗을 보면서 죽음이 곧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눈이 녹으면서 자신을 버리듯이 대지를 통하여 자신을 버리는 법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은 자연과 늘 함께 공존했다.



타고르, 칼릴 지브란, 간디와 같은 동양의 성자들이 출현하면서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뿌리 깊은 생각은 여전한 것 같다.


20세기 초가 되면서 유럽식민지는 전 지구표면의 85%로 확대된다. 유럽인들에게 동양을 비롯한 미지의 땅은 그저 잉여자본의 투자로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착취의 대상이었고, 서구 제국주의의 야망을 펼치는 무대였을 뿐이다. 또한 기독교 전파의 대상이었다. 대체로 서구인들은 우월감을 지니고 유럽 이외의 대륙을 미개하고 마음대로 약탈해도 되는 대상으로 간주했다.


동양인이나 아메이카 원주민과 같은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유색인종은 더럽고 불결하다. 무지하고 게으르다. 잘 둘러댄다'는 나쁜 고정관념과 편견은 실제로 상대방을 상처 입히고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다. 유럽에서 뛰어난 축구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아시아 선수들이 가끔 인종차별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편견은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중세의 유럽인들은 목욕을 끔찍이도 멀리했다. 성경에 따라 씻는 것을 위선으로 생각했다. 5세기의 어느 성직자는 '기독교식 목욕 즉 세례를 한 번 한 사람은 더 이상 목욕 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특히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의사들은 목욕을 더욱 금지하게 된다. 대중목욕탕에서 여러 사람이 같은 물을 사용하면서 병원균이 전염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로 씻는 행위는 나쁜 것이 물을 통해 몸으로 침입한다는 잘 못된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씻는 것을 죄악시하였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어느 공주가 여행길에 너무 먼지를 많이 뒤집어쓰게 되어 얼굴에 살짝 물을 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얼굴이 회색빛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귀족들 사회에 널리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귀족들은 더러움과 불결함을 감추기 위해 얼굴 화장술과 가발을 개발했다. 그때 발달한 것이 향수가 있다. 그러나 향수가 체취와 겨드랑이 냄새, 입냄새를 막아주지는 못했다. 


평민들의 집에는 돼지와 닭이 함께 생활공간에 있었다. 병원균과 박테리아 바이러스 온상이 된 곳이었다. 사실 백인들은 똥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마을은 실제로 넓은 돼지우리 혹은 닭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사람의 배설물, 소똥, 돼지, 닭똥 등이 한데 뒤섞여 수 세대 동안 거대한 반죽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요강을 사용했는데 똥은 주로 거리로 던지거나 귀족들은 화단에 버렸다고 한다. 마드리드의 한 의사는 요강을 비우는 시간을 밤 11시로 정했다. 밤새 똥 냄새와 수증기를 밤의 찬 공기가 정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아침 10시가 되면 거리의 똥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당시 유럽은 세균들의 천국이었다. 평민이 99퍼센트를 차지했기 때문에 위생 상태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살해한 수도 많았지만 실상은 유럽인 신대륙에 상륙하면서 함께 가져온 각종 병원균과 바이러스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백 만 명을 질병으로 사망하게 만든 것이다. 콜레라, 천연두 등이 들어오고 불과  4세기가 지난 1910년대의 원주민 수는 고작 22만 명이었다. 


반면 인디언들은 매일 아침 태양을 바라보며 맑고 빛나는 강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질병이 거의 없었다. 


<인디언의 기도>

풀잎들이 햇빛 속에 고요히 있듯이

대지는 내게 침묵을 가르쳐 주네

오래된 돌들이 기억으로 고통받듯이

대지는 내게 고통을 가르쳐 주네

꽃들이 처음부터 겸허하게 피어나듯이

대지는 내게 겸허함을 가르쳐 주네

어미가 어린 것들을 안전하게 돌보듯이

대지는 내게 보살핌을 가르쳐 주네

나무가 홀로 서 있듯이

대지는 내게 용기를 가르쳐 주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들처럼

대지는 내게 한계를 가르쳐 주고

하늘을 쏘는 독수리처럼

대지는 내게 자유를 가르쳐 주네

가을이며 떨어져 생명을 마감하는 잎사귀들처럼

대지는 내게 떠남을 가르쳐 주고

봄이면 다시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대지는 내게 부활을 가르쳐 주네

눈이 녹으면서 자신을 버리듯이

대지는 내게 자신을 버리는 법을 가르쳐 주네

마른 평원이 비에 젖듯이

대지는 내게 친절을 기억하는 법을 가르쳐 주네


저 산 가장자리에 구름이 걸려 있네

그곳에 구름과 함께 내 가슴도 걸려 있네

저 산 가장자리에서 구름이 떨고 있네

그곳에 구름과 함께 내 가슴도 떨고 있네

<인디언의 기도: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류시화 엮음, 더숲)에서 인용함>


<제목 이미지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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