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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다잠든 나무 Jul 06. 2024

여전히 사랑해

나이 든 나무

종일 소파와 한 몸이다.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누워 동그란 눈만 움직인다. 나무의 심벌인 귀는 여전히 쫑긋하게 세워져 있다. 그러더니 다시 엎드린 채 역시 눈과 귀만 움직인다.  


"세상 게으른 몸짓이라도 비웃지 말라고.

날이 더워져서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다고.

나이 들어 봐라, 만사가 힘들다고.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지만 지금은 먹기 싫다고.

좀 더 새로운 별식은 없냐.

늘 같은 것만 먹으니 입맛이 없다고."


나무는 게으른 몸짓으로 종일 누워있다. 뒤집어 누워있는 데디베어와 등 대고 누워 종일 같은 포즈다. 밥그릇에 놓이기가 무섭게 먹어치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까 준 밥이 그릇에 그대로다.

아홉살 나무는 살살 꾀도 부리고 싶어지는 나이인가 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이제 나이는 들었지만 건강하다고.

나이 들어보면 알 거야.

입맛이 옛날 같지 않아.

간식의 '간'자만 나와도 벌떡 일어났던 때가 있었지.

까까의 '까'자만 들어도 눈을 반짝이며 졸졸거렸던 때도 있었지. 

할까에도 갈까에도 먹을까에도 눈을 반짝거렸지. 모두 '까까'로 들렸으니까.

지금은 '까까'라 해도 진짜 눈앞에 놓이기 전까지는 움직이고 싶지 않아."


여전히 나무는 말똥거리며 눈으로 말한다. 


"여전히 많이 사랑해.

얼른 '산책'이라고 해봐.

난 벌떡 일어날 거야."


알겠어, 나무야 우리도 많이 사랑해.

오늘도 나가서 멋지게, 재미있게 산책하자. 

그렇게 오래 함께 하자.

여전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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