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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걷기 예찬

피부과 어디 다녀?

세 번째 백만보 시작

by 놀다잠든 나무

종종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은밀히 그러나 간절하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대답 대신 기분 좋은 웃음을 보낸다. 지금부터 한 6개월 전쯤인가 하루만 보 씩 걸어보자 시작한 백일이 두 번 지나갔다. 5월 24일 오늘부터 다시 10일이 시작이다. 세 번째 백일이다. 이제는 백일이 아닌 일 년이 될 듯하다. 여전히 아침 출발이 쉽지는 않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아침 걷기가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 하는 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침에 몸을 일으켜 신발을 신게 만드는 요인이 많다. 아침에 나서는 이들만이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영롱한 이슬을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자라주는 각종 잎새들. 가끔은 걷기를 멈추게 하는 직박구리의 부름. 동네에서 가장 큰 소리로 불러주는 오디나무 아래 브라마 닭들. 그뿐만 아니다. 점점 붉고 검게 익어가는 앵두, 오디, 버찌 등 각종 길가의 열매들. 이러한 것들의 변해가는 모습이 궁금하다. 보이지 않던 뽕나무 열매들이 초록에서 주황색으로 그 후 빨개지더니 어느새 검은색으로 물컹하게 익어간다. 노랑털알락나방 애벌레에 온몸이 초토화되어 가던 화살나무의 여린잎들은 오늘도 무사한가. 온몸을 다 뜯겨 한없이 가엾게만 보이던 화살나무. 6월에 접어드니 애벌레는 간곳없고 다 뜯겨 먹힌 여린 잎 사이로 다시 작은 새순이 올라오는 걸 보니 기특하다. 큰 소리로 부르는 아침 닭의 홰치는 소리에 다가가보니 발등이 수북이 털로 덮인 브라마 수탉이 암탉들과 아침을 깨우고 있다. 가끔은 암탉 중 한 녀석은 등의 털 한 부분이 다 뜯겨 나가 붉은 살이 보이기도 한다. 저들에게 밤새 심상치 않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며 걷기도 한다.


KakaoTalk_20250605_145553848.jpg 브라마 닭은 크게 아침을 연다


화살나무는 노랑털알락나방 애벌래의 수난 속에서 봄을 견디고 있다

가끔은 뛰기도 한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생각났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뛸 수 있다". 자신감과 용기를 주는 말이다. 귀에 꽂혔다. 아침에 트랙을 걷다 보면 수많은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연히 걷기를 고수해 왔었다. 나에게 뛰기는 뇌구조 속에 없는 단어였다. 학창 시절 입시를 위해서 치러야 했던 100m 달리기도 20초를 넘치는 기록이었다. 그 후로 달리기는 거의 해본 적이 없지 싶다.

걷기만으로도 뿌듯했다. '해보니 되네'를 되뇌며 걸었다. 어느 날 문득 많은 트랙의 러너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400m 트랙을 한 바퀴 돌았는데 한 바퀴 더 돌아도 되겠다 싶다. 냅다 다시 한 바퀴 더 뛰었다. 그렇게 세 바퀴를 쉬지 않고 뛰었다. 다시 걷기를 3바퀴. 이런 식으로 일명 '걷뛰'가 시작되었다. 걷뛰에 이어 언젠간 러너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 하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걸으며 뛰기도 하며 걷뛰, 아니 걷기가 규칙적인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어느덧 주변에 권하고 있었다. 함께 하자고. 해보니 되더라고. 그렇게 해서 함께 걷고 뛰는 일행이 8명이나 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요즘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좋아졌는데!."라든가 "피부과 어디 다녀? "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흐뭇한 일들이 생겨나는데 계속 그리고 함께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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