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간의 <은중과 상연>
드디어 넘쳐흘렀다.
시종일관 고여있던 그녀의 눈물의 둑이 마침내 터지고 말았다.
처음부터 언제나 고여있었던 그러나 절대 흐르지 않았던 은중의 눈물의 둑이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둑이 터져버린 은중이 목놓아 울부짖은 것은 그때였다. 조력사망의 동행자로 함께 간 취리히의 블루하우스에서 성연이 마지막 튜브를 열고 깨어나지 않는 깊은 잠에 빠져들고 나서다. 은중은 오열했다.
은중의 눈물은 늘 고여있다.
자습시간에 짝꿍이 공작과제물을 발로 툭툭 거려 하지 말라고 말했다가 선생님이 아닌 4학년 2반 반장 천상연으로부터 손바닥을 회초리로 맞았을 때도 은중은 울지 않았다.
대학시절 동아리 선배가 애인인 은중을 두고 상연을 챙기러 진천에 갔다는 걸 알고 왜 그랬냐고 따져 물을 때도 은중의 눈물은 흘러넘치지 않았다.
사진동아리 시절 내내 사진의 피사체가 사랑하는 선배였던 동아리와 이별하던 순간에도 은중은 눈물을 눈에 가득 담고 있었다.
영화사 류 PD시절 청춘영화 기획안을 훔쳐 버젓이 영화사를 차리고 마는 제비영화사 대표 상연의 배신에 분에 떨어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은중의 눈물은 고여있을 따름이었다.
상연과의 마지막 여행을 드디어 선택하고 떠나면서도,
취리히의 리마트 강이 보이는 방 안에서 상연에겐 마지막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하면서도 눈물은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내내 절제되어 왔던 은중의 눈물 둑은 상연의 마지막 숨을 확인하고서야 터지고 말았다. 주체 없이 넘쳐흐르는 눈물에 은중은 오열했다.
은중의 참을 수 없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이라던 상연과 마지막이 여행이 아닌 홀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던 것일까.
싫어함이 아니라 미워함의 대상인 상연을 너무 늦게 용서했다는 후회의 눈물일까
......
무려 장장 열흘이라는 긴 추석 연휴가 드디어 이런 호사까지 허용했다.
연휴의 마지막 밤, 15부의 <은중과 상연>을 보면서 무려 열다섯 시간을 하룻밤만에 독파하고 말았다.
넷플릭스에서 미루다 미루다 만지작 거리기만 했던 <은중과 상연>을 드디어 몰아서 다 보고 말았다.
한번 보면 빠져들것 같은 예감에 쉽게 뛰어들지 못했는데 열흘 연휴 끝에 결국 덥석 물고 말았다.
예상대로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촘촘한 전개와 여러개의 사회문제를 터치한 흡인력으로 끊어보기가 어려웠다. 15화 전체를 앉은자리에서 하루에 끝냈다.
그 여운이 다음 날까지 종일 맴돈다.
물론 식탁에서도 <은중과 상연>른 좋은 반찬이었다.
꽤 일반화된 상학의 문제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다루어진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조력 사망을 우리 사회의 수면 위로 올려놓은 과감함은 이젠 말할 수 있어야 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송혜진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