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자본
신사역 2번 출구 - 가을이 스산한 11월 마지막 주말
점심시간을 막 넘긴 오후 2시경 한 노인이 신사역 2번 출구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약 70세 정도는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은 넥타이를 한 정장 차림에 그리 두껍지 않은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추례하거나 촌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감남 한복판에 어룰릴듯한 세련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지방에서 올라와 길을 헤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리버사이드호텔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나요?"
논현역에서 신사역 방향으로 걷고 있던 중이었다. 늦가을 찬바람에 주머니에 양 손을 꽂은채 걷고 있었다. 갑자기 앞에 불쑥 나타나 무언가 말을 걸어오는 낯선 노인과 맞닥뜨린 순간 적잖이 놀라 몸을 뒤로 젖혔다. 당황하였다. 반사적으로 내 몸을 그 노인과 좀 멀리 떨어지도록 피했다. 주머니에 손을 푹 넣고 귀에는 이어폰까지 꽂고 걷고 있었기에 노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냅다 손사례치며 달아나듯 멀리 떨어져 노인을 지나쳤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방금 전 갑자기 벌어진 그 상황이 뭘까? 대체 누가 왜 무슨 말을 걸어왔는지 궁금했다.
잠시 신호대기하는 동안 당황하며 서성이는 그 노인을 바라보니 그는 또 다시 옆 신호의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중학생인듯한 커다란 백팩을 멘 아이를 잡고 또 묻고 있었다.
다행히 그 남학생은 피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하여 귀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상체를 살짝 뒤로 젖혀 놓은 채 걸음을 멈추고 뭔가를 듣고는 있었다.
그 사이 내 방향의 신호등이 바뀌어 걸음을 옮겨 건너고 말았다
그 이후 목적지에 가서 일을 보면서도 내내 머릿속에서 그 노인이 떠나질 않는다
그저 '리버사이드호텔이 어느 방향이냐'고 물었을 뿐인데 왜 그리 피했을까
물론 처음 다가왔을 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었지만 다시 묻지도 않고 우선 피하기부 터했던 것이다
이내 다른 사람을 붙잡고 다시 묻곤 하던 그 노인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왜 피하기부터 했을까. 왜 그리 쌀쌀맞게 굴었을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으면 다시 물어보고 길을 알려주면 되었을 것을.
그 노인도 그가 사는 지역에선 자신 있게 살 텐데. 낯선 곳에서 길을 헤맬 뿐일 텐데.
왜 피했을까.
그가 노인이기에?
그가 세련되어 보이지 않아서?
그도 아니라면 너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서 미처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었노라고.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피한 것이라고.
애써 다독여본다.
그 노인은 리버사이드 호텔에 잘 찾아갔을까.
아마도 결혼식장을 찾아가는 모양인데 잘 찾아갔을까.
늦진 않았을까.
괜히 미안함에 이것저것 자꾸 떠올려본다.
노인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인구의 25%가 노인인 나라에서 노인은 살만한 나라인가?
노인이 대접받고 인정받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때는 언제일까?
선거 때는 왜 노인이 대접받고 인정받으며 그들의 욕구가 잘 받아들여지는 걸까?
왜 그때 그들에게는 인정받고 호의적인데 그 외의 대상인 다른 계층에게는 노인이 환영받지 못하는 계층일까?
단지 노인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피했을 따름인데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노인을 위한 나라라 할 만큼 정치권에서는 반기는 계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외의 계층에게는 상대적 박탈을 느껴야 했고 이는 노인을 환영하기보다 은근한 적대감을 갖게 되는 대상으로 만든다.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 계층들에겐 반갑지않은 존재로 다가오는 의문의 1패를 당하게 된다.
괜히 노인 때문에 피해 보는 느낌적 느낌은 세대적 적대감마저 갖게 한다.
최근 들어 '좋은 어른'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야말로 노인이 많은 나라, 노인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 평균나이 100세가 되어가는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이 좋은 어른으로 사회와 잘 소통하고 사회의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노인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창피함에 예민해지기는 힘든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