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명하죠? 너무 궁굼하당.
여기가 한국이여, 멕시코여.
사진: Unsplash의INHYEOK PARK
요즘 을지로는 아마도 이 가게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이게 왜 여기에??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을지로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낡은 인쇄소가 잔뜩 있던 골목골목 사이 오래된 노포에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낮부터 소주 한잔씩 캬~ 하시면서 드시고 계셔서 어린 마음에 왠지 어른들의 자리에 끼어들기 어색해 입맛만 슥 다시고 햄버거 가게나 어디 있나 뒤적거리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새 애들은 을지로에서 만난다고 한다. 심지어 너무 힙해서 을지로를 힙지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니 뭐시라. 뭐이 그리 힙한데. 나도 좀 보자 뭐가 힙한지 가보자.
그래서 우리는 타코가게에서 모였다. 을지로와 타코라, 저언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데. 삭신이 쑤시는 나이라서 힘들 줄 알았는데 그 기묘한 낯섦에 설레어서 그런지 기다리는 동안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쪼르르 가게 앞에 서서 호명을 기다렸다. 겨우 불려서 타코랑 콜라를 시키고 앉으라고 해서 자리를 찾았더니 어머나 세상에. 목욕탕 의자 같은 거에 앉으란다. 등받이도 없다. 4명 자리인데 반은 가게 안쪽에 반은 도로변인 가게 뒤쪽에 걸쳐져 있어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일어나서 비켜줘야 할 형편이었다. 쪼그려 앉아서 스릴 넘치는 타코를 먹은 셈이다. 멕시코에 이민 간 한국 사람이 한국식 포장마차를 멕시코에 차려 그 안에서 식사를 한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 맛은 지금도 당장 달려가서 먹고 싶을 만큼 훌륭했다. 딱 거기 그 의자에 앉아서 먹어야 한다.
요새 서울은 너무 재미있어. 잠은 집에서 자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해외여행을 오는 기분이랄까.
일행 중의 한 언니가 한 말이다. 정말 과연 딱 그 말이 정답이다.
"아. 배불러. 이제 커피를 마시러 갈까?"
그런데 카페가 어딘교.. 찾을 수가 없다. 간판도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단서를 찾으면 된다.
외벽에 붙은 낡은 종이 포스터, 바닥에 작게 그려진 화살표, 바람불면 날아 가기 딱 좋게 생긴 입간판 등을 찾아보자.
마음에 드는 단서를 찾았다면 머리속으로 어떤 곳인지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돌진해보자.
그렇지만 대부분의 '힙'한 카페들이 갖구 있는 치명적인 걸림돌이 하나 있다. 엘레베이터가 없다.
자, 그래서 방법은 하나 뿐. 숨을 일단 고르고 계단 등반 시작!
'힙' 찾기가 호락호락 하지는 않다.
헉헉 거리면서 걸어올라 가면 사무실에서나 볼 듯한 철문이 기다리고 있어서 여기가 맞나? 싶은 곳이 바로 내가 찾는 장소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 상상치도 못한 광경이 펼쳐지기 일쑤다. 쌍화차에 노른자 넣어 파는 옛날 다방이 나오기도 하고, 온통 레이스로 잔뜩 장식된 공주님 방에 초대되기도 하며, 옛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여주인공의 방 안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래서 매우 설레는 마음으로 늘 기대를 한다. 나는 그 문을 통해 대체 어떤 세상으로 가는 것일까?
한껏 분위기를 즐기고 나오면 펼쳐지는 골목은 또 새로운 세상이다. 화려한 네온사인들과 거친 길거리의 대비된 분위기는 정리되지 않아 어지럽기 그지없다. 어떻게 보면 미래 sf소설에서 나오는 디스토피아 광경 같기도 하다. 게임 사이버펑크의 나이트시티가 바로 떠오른다. 만화 총몽의 고철도시 생각도 나고 말이다. 갑자기 사이보그가 툭 튀어나와 걸어갈 것 같다.
조금 걷다 보면 골뱅이 골목도 나오고, 감자탕집. 칼국수집... 장사한 지 10년 20년은 훌쩍 넘긴 가게들이 보인다. 그렇게 오래된 노포를 지나치면 안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문짝이 어찌나 낡았는지 툭 치면 떨어질 것 같은 그 틈사이로 솜털이 보송보송한 청춘들이 제육볶음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러면 그 옆에서는 또 한참 역전의 용사 같은 세월을 보낸 것 같은 아저씨들이 묵은 때를 벗겨내듯 뚤뚤뚤 소주를 따르고 있다.
여기저기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옛날 우리 아버지들도 이런 데서 일 끝나고 한잔 하셨겠지, 하는 마음으로 착석하고 나면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와 파골뱅이, 치킨이 나온다. 한 모금 마셔보고 깜짝 놀랐다.
"와 맥주에 설탕을 탔나?"
공사장 한쪽 벽에 주르륵 펼쳐놓은 간이 탁자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먹는 맥주 한잔과 안주는 왜 이렇게 맛이 좋은 걸까. 안으로 들어가서 먹어도 같은 맛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사진: Unsplash의Soyoung Han
이런 곳에 어떻게 저런 곳이 숨어있는가 말이다.
을지로는 과거고, 현재고, 젊고, 나이 먹었다. 미래적이지만, 낡아빠진 모순적인 느낌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거기에 몇 발짝을 걸으면 여기는 홍콩이기도 하고, 일본이기도 하며, 멕시코 일 수도 있다. 뉴욕이 이런 느낌일까?
유구한 역사를 통해 변화한 서울의 을지로는 낡은 할머니의 집을 리모델링해서 사는 손주의 모습 같기도 하다. 진정한 과거와 현재의 콜라보랄까.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매력적인 '힙지로'로 가보시라.
옆구리에 타임머신도 끼고, 몇 걸음 걷는 것으로 비행기도 탈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