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마지막 달달이
2025년 12월 31일 오후 10시 25분
평소 동네 엄마들이랑 먹으러 다녔던 맛집 중에 남편이 좋아할 만한 곳을 꼽아 두었다. 언젠가 가야지 했던 그 집에 오늘 드디어 남편과 방문했다.
막국수 집이다.
깨끗하게 뽑은 메밀면과 들기름, 김만으로 나를 확 사로잡았던 곳이다.
오픈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사람들이 가득가득했다. 한 해의 마지막을 좋아하는 사람과 괜찮은 식사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나 보다. 대기번호를 받았다. 20번이다.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내가 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두 번이 아니어서, 화가 났다. 그래서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고 대기하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다정한 연인들이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휑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쭉 나온 입이 기대감에 쏘옥 들어갔다.
서둘러 남편 손을 붙들고 가게로 들어갔다.
들기름 막국수 두 개를 시키고, 특별히 수육도 시켰다.
그리고 잔 막걸리 하나도.
직원분이 양팔을 걷어붙이고 커다란 막걸리통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사발에 넘치듯이 한 잔을 따른다.
넘실 넘실 넘어갈 듯이 찰랑거리는 막걸리가 떨어질까 입을 대고 후루룩 마셨다. 시~~ 큼 한 게 오래된 누룩맛이 확 나는 정통막걸리였다. 묘하게 끝맛이 단데, 쩍쩍 달라붙지는 않아서 수육과 궁합이 딱 맞았다.
한 모금 마시니 수육이 당겼다. 수육을 먹으니 막걸리 한 모금이 또 당겼다.
그렇게 서로 밀고 당기다가 그만
내가 취해버렸다.
남편에게 내 막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덜어준다.
"많이 먹어~ 여보. 여보 좋아하자나아아아아아"
혀가 꼬였다. 남편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조금 있다가 미소 띤 표정으로 바뀐다.
취한 걸 알아차린 게지.
그리고 나는 아까 삐친 것도 다 잊어버리고 수다쟁이가 되었다.
가게에 비치된 책도 갑자기 들고 와서 읽다가, 감동받아서 눈가가 시큰해지는 주접을 떤다.
옆자리에 애기엄마들이 앉았다.
다리를 쏙 내어 놓고 니은 자로 앉아 있는 돌도 안되어 보이는 온몸이 핑크 투성이인 아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버렸다.
남편을 보고, 훌쩍거리면서
"우리 애들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저럴 때가 있었어..."
막걸리 도수가 꽤 높았나. 아니면 가득 퍼주셔서 그랬나.
2025년의 마지막 날 낮, 나는 낮술에 훌랑 취기가 돌아서 진상짓을 했다.
차로 돌아와서는, 갑자기 큰 애 욕을 막 한다.
"그렇게 이뻤는데! 왜 나를 그렇게 속을 썩였어! 나쁜 것 나쁜 것."
그러다가 또 갑자기 훌쩍거리면서
"진짜 어릴 때 태어날 때 생각나.. 너무 예뻤는데... 내가 너무 못해줬어... 나쁜 엄마 나쁜 엄마...
사실 지금도 되게 이쁘다. 걔 어제 집에 와서 춤추는데 엄청 귀여웠다. 내가 내가 미안하다 우리 애한테..."
혀 꼬이는 소리로 헛소리를 댕댕 해댄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던 남편은 그걸 다 들어주더니.
내 등을 토닥토닥해 주면서
"네가 수고했어. 애들 키우느라 애 많이 썼어"
남편 없으면 나는 누구한테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여보, 오늘 막국수 맛있었어?"
"어. 진짜 너무 맛있더라."
나만 먹는 것 같아서 불편했던 마음의 정체는.
맛있는 걸 보면 당신 생각이 나는 이유는.
커피를 마시러 오니 술이 서서히 깨어 간다.
낮에 이렇게 휘몰아치듯 취해본 건 너무 오랜만이다.
"자기가 늘 머리가 복잡하겠어. 생각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남편이 건네는 다정한 한 마디.
맞아. 내 머릿속은 늘 걱정이들이 지배하고 있다.
밥걱정, 애들 걱정, 남편 걱정, 시댁 걱정, 친정 걱정....
나는 그걸 알아주는 게 고마웠다.
남편도 늘 바쁘고 정신없겠지. 어깨가 나처럼 늘 무겁겠지.
사실 내 짐이 곧 그의 짐이다.
나도 남편에게 말을 건넨다.
"여보가 진짜 많은 걸 담당해주고 있어. 당신 아니면 난 자신이 없어. 고마워. 참 든든해서"
2025년의 마지막 날
낮술 먹고 취해서 헛소리나 해대는 마누라를 여전히 귀엽다고 말해주는 남편을 둔 나는 행운아.
2026년도 건강하게 행운을 누리고 싶다.
고 생각해 보는 오늘이었다.
12월 일기를 달달이로 마무리하네요.
사실 12월 일기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11월 일기의 마지막을 아주 오만하게 마무리해 놓고서는 후회막심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또 썼던 일기들을 줄줄이 읽어보니,
아. 나 이렇게 살았구나.
싶어서 또 좋더라고요.
여하간 뭐든 안 쓰는 것보다는 써서 보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2025년은 저한테 너무 많은 변화와 감사가 있는 해였습니다.
한 해 동안 얻은 용기와 에너지를 도움닫기 삼아,
2026년엔 조금 더 날개를 펼쳐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설렘 가득 담아,
새 해를 맞이해보렵니다.
안녕 잘 가, 나야.
안녕 반가워,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