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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박 Sep 18. 2023

90학번에서 10학번으로

학번이 줄었다 

치과의사가 되기 전과 후 같은 장소에서 


학번이 줄었다 


북미 오대호인 아리오 호수와 온타리오 호수의 높이 차이로 만들어진 나이아가라의 의미는 ‘천둥소리를 내는 물’. 트럼펫 삼만개를 동시에 불 때 와 같은 데시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백만 마리의 매미가 동시에 울어 대는 소리라 표현했지만 실제로 와보면 비주얼이 강해서 오히려 소리는 묻힌다. 물이 만드는 소리가 아닌 바위에 부딪혀 내는 상처들의 소리. 물 자체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 상처의 마음 소리들이 거대한 세상에 묻혀 존재조차 하지 않는 티끌처럼 여겨지듯, 작은 물방울들이 튀어 내는 비명의 소리는, 너무나도 미약한 외침일지 모른다. 폭포의 비주얼에 묻혀 버린 파열음처럼. 쓰나미가 무서운 건 바닷물이 아닌 바닷물에 쓸려오는 물건들 때문이다. 우리가 괴로운 건 일어난 상황 자체가 아니라, 상황들이 만들어낸 어지러운 상념들 때문이고 슬픔은 상실에서 오는게 아니라 오히려 남은 자괴감, 추억, 허세, 무너진 자존감들로 부터 온다.  폭포를 보며 나의 고통과 번민을 조용히 삼자의 시점으로 바라볼때, 비로소 내 마음이 쉴 수 있었다.  한 줌의 폭포가 물꽃을 뿜으며 폭포가 통과하는 바위들이 흘리는 땀으로 공기가 촉촉해지면서 내 마음 공간 안에도 물씨가 맺혔다. 희망이라는 작은 이슬. 이왕 시작하는 거 내가 해보지 못한 걸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히 어떻게? 적어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의 엄청난 도전이어야 했고,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세상을 향한 객기도 남아 있었다. 병원서 하얀 가운을 입고 다니는 의사들이 멋져 보였다. 15년 전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포기했던 생물학이 떠올랐다. 덤으로 산 인생 아니던가! 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다 잡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용기를 주셨다. “30살에 의사가 되던 40살에 의사가 되던 사람들은 널 의사라 부를 거야” 내 어머니는 자식들을 피어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밑거름이 되신 분이시지만, 때론 그 밑거름의 악취로 아이러니하게도 자식들을 도망치게 하셨다. 그래서 누군가를 도와줄 땐 무조건적으로 해야 한다. 베풂을 무기로 이것저것을 요구하면 베품을 받는 쪽에선 원망이 생긴다. 내 어머니는 나의 작은 성공을 늘 인정하지 않으셨다.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을 때에도 수고했다는 칭찬의 말이 없으셨고,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도 마찬가지셨다. 본인의 그늘과 흔적이 없는 나만의 성공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고 결국 빈털터리가 된 내 모습을 보시고 “그것 봐라. 넌 내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 병신일 뿐이야.”라고 하셨다. 피해는 상황이지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을 기준으로 상대를 정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고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에게 정신적 학대를 할 권리는 부여되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 당신의 자녀에게 ‘병신’이라고 말하는 부모님이 과연 세상에 얼마나 될까?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남은 건, 사랑의 미온보다는 고통과 증오의 온도가 더 높았다. 어쨌든 치과 의사에 도전하라는 어머니의 판단은 결국 옳았다. 


삶에서 99번을 성공했어도 현재 실패했다면 실패고, 과거에 99번을 실패했어도 현재 성공했으면 성공이다. Carpe Diem 지금이 이 순간이 중요하다. 사실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를 지각하는 순간 이미 과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과거와 미래의 다툼이다 영화 연출을 전공했던 난 학부로 돌아가 필수 과학 과목을 이수해야 했다. 비학위 과정으로 2010학번이 됐다. 90학번에서 10학번으로 학번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20세기에는 문과였던 내가, 21세기에는 이과인 치과의사에 도전한다. 여행의 목적은 환상을 없애는 것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이번 여행에서는 환상을 하나 더 심었다. 새롭게 품은 환상은 그렇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계획은 세웠으나 계획이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걸까? 고등학교 때도 과학이라곤 지구 과학을 공부해 본 게 전부였다. 그런 내가 미국에서 의대를 준비하다니, 말이 돼? 스스로를 믿지 못해 반문하고 회의하며 때론 희망으로 가득 찬 아침을 맞이했다가도 다음날이면 다시 시무룩해지기를 반복했다.  자신감의 회복이 중요했다. 대담성, 자신감, 열정의 감정은 근육과 같아서 사용하지 않으면 소실된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 당시에 난 벼랑 끝 아슬한 지점에 서 있었다. 다만 짙은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지를 못했을 뿐. 강신주님은 그의 인문학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실은 급류이고 이상은 손안에 쥔 작은 나뭇 조각이다. 별 도움은 되지 않지만 자신의 인생에 주인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나뭇조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최소한 급류의 힘에 저항은 해 볼 수는 있는 것이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작은 나뭇조각 하나를 손에 쥐고서 그 겨울을 8번이나 버티어 냈던 듯하다. 


“가장 좋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라." 

푸브릴리우스 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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