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는 며느리는 김장 열외!
죄송하지만 안 되겠어요. 어머님.......
찬바람이 불면 한해 먹을 김치 담그는 일이 참으로 보통이 아니다.
각 집마다 해 오던 그대로를 고수하며 때로는 추가 가감하는 방식으로 김치 속 양념만큼이나 색다르다.
우리는 맞벌이인 관계로 집에서 저녁 한 끼 해 먹는 터라 김치를 많이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장을 중심으로 철마다 담가주시는 깍두기, 열무, 파김치 등은 괜히 마음을 든든하게
해 준다.
둘째 딸은 이제 5학년 되는 나이인데 김치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집에서는 먹지 않겠다면 억지로 먹이지는 않았는데 밖에서는 어땠는지 또 모르겠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도 벌써 고학년이니 자그마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냥 그 냄새가 싫다고 한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터라 한국인이라면 김치를 먹어야지라는 뻔한 말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매년 시댁은 교회분들과 품앗이 개념으로 이집저집 해 주셨기 때문에 딱히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다.
바쁘고 힘든 우리 맞벌이 부부를 이해해 주신 거라
항상 감사하다.
일손이 부족하지 않아도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다 불러서 하는 시댁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사람 많아 밥 해내기 힘든 부분도 한몫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절인 배추가 흔하디 흔한 지금 이 세대에
밭에서 배추를 뽑아 씻어서 소금에 절여하는 번거로움 2배 김장은 생각만 해도 힘이 든다.
해보지 않았어도 알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토요일에 김장을 하신다고
올 수 있냐고 물어보신다.
알고 있던 시나리오가 아니다.
앗 그렇다.
우리 남편은 김장도사다.
야채 썰고 무 갈고 속 넣고 강원도 친구 시골집으로 김장하러 원정 갈 만큼 잘한다.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김장을 그냥 잘한다.
남편을 보내자.
아마 어머님도 아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무거운 거 나르고 옮기고 하는 김장일에 남자의 능력은 필수다.
마침 나의 아들이 그날 저녁에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자고 간단다.
비록 김장보다 더 힘든 아들의 시중(?)을 들었지만
그 일을 빌미로 김장에 참여하지 못했다.
조금은 연로하신 시부모님께 죄송하지만 나는 일하는 며느리다.
주중도 주말도 아이들 먹거리 챙기고 집안일하느라 피곤하다.
어김없이 해야 하는 빨래며 설거지며 분리수거는 또 왜 이렇게 반복적인지......
이제는 40대가 되어 운동도 필수로 해야 해서 시간내기가 더 힘들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있는 김장은 참석하는 게 도리이겠으나 때로는 눈을 살짝 감고 모른 척하고
싶다.
그리고 올해는 김장 전주에 장염에 걸려 설사를 반복하며 간신히 간신히 주말만 기다리며 출근했던 터라 솔직히 열외 받고 싶었다.
말이 길어지는 거 보니 많이 죄송하긴 한가 보다.
어제 남편이 말했다.
남편; 김장하는데 며느리가 안 가?
나; (큰 목소리로) 내가 일도 하는데 김장까지 해야 돼?
남편; 사무실 언니들은 지금 김장하러 간다고 난리 든데?
나;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내가 일도 하는데 김장까지 가야 돼?
나는 일하는 며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