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 지내자 우리
적막으로 휩싸인 방안에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갑자기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빗소리에 귀기울이며 시간을 몇분 보냈다. 지금이 장마시즌인걸 상기시켜주는 요란한 빗소리가 오늘따라 굉장히 시원하고 상쾌하다. 창문을 닫았다가 다시 조금 열어 빗소리를 음악삼아 들어보기로 했다. 조금씩 들이치는 비쯤은 음악을 선물해준 대가로 기꺼이 허락해 주기로 했다. 고마워.
친구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다. 요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친구는 지금 분명히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조금 일찍 작업을 마무리하고 통화가능 메세지를 보냈다. 친구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힘든 마음을 기댈 대화상대가 필요했다. 특별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녀에게는 많은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주 통화하자고 얘기를 했던 나였다.
늦은 밤 친구와의 통화가 이어졌다. 쏟아내고 싶었을 그녀의 마음을 반쯤은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쓸쓸한 목소리에 많은 위로가 되지 못해 미안해 지는 밤이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때로는 말없이 그저 들어주는 일로 그녀의 답답함을 많이 쏟아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녀는 무거움을 기댈 든든한 어깨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은 꼭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사는 이야기 하면서 때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삶의 무게가 많이 기대어 지곤 한다. 특별한 이야기거리가 없어도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반갑고 좋다. 친구는 이름앞에 붙은 수식어를 종종 떼어내고 우리 나이대의 한 사람으로서 대해주며 공감능력 또한 출중하고 내 이름 석자 그대로를 존중하고 인정해준다.
연락하는 일을 꽤나 귀찮아하던 인간은 언젠가부터인가 친한 사람들과의 연락을 자주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얻는 에너지의 크기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장거리 운전으로 피로해진 몸을 쉬게 할 생각이였는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해 계속 뒤척이다가 이불을 박차고 거실로 나와버렸다. 분명히 피곤해 골아떨어져야 하는 상태였고 오전에 디카페인을 섭취한것이 전부인데 내내 각성상태를 유지하려하는 너를 억지로 잠들게 할 요령은 없었다. 아마도 호르몬의 영향이 있거나 너무 고단하여 잠들지 못하는 상태, 그게 아니라면 온갖 쓸데없는 생각들을 불러모으는 좋지 못한 습관때문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에세이 크리에이터라는 뱃지를 선물받았음에도 충실히 작가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해보며 쓰다 만 글을 이어서 완성해 보기로 한다. 새벽에 쓰는 글을 아침에 읽었을때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또한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락을 기다린다는 것은 소통하고 싶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관계, 일상이 궁금하고 나의 일상을 궁금해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기대하는 마음들이 때로는 생각을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거나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기대치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사람과 사람이 잘 지내는 방법중의 하나는. 어디선가 본 글인데 바람이 통하는 관계라는 글이 떠오른다. 친구도 가족도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이라고 생각했던 마음들을 조금 내려놓고 기대치를 낮추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애정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는 것처럼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올바른 방향으로 표출되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엄마가 매일 전화하시는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졌다. 가끔 받고싶지 않을 때도 있는데 엄마는 내가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들까지 전부 하시곤 한다. 관심이 지나치고 말이 많아져 나역시 상대방에게 쓸데없는 이야기거리까지 지껄이게 되지 않도록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늘 숙제인것 같다. 적당함의 기준은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한다.
각성상태가 지속되었던 새벽녘의 하늘이 밝아온다. 보이지 않던 구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회색빛 하늘이 이쁜 새벽을 맞이하는 중이다. 참 오랜만에 잠을 반납하고 새벽과 친구를 맺은 오늘이 실타래처럼 엉망으로 얽혀있던 생각들을 정리해 주었고 덕분에 못썼던 글을 완성해냈다. 뭐 하나 달성한 기분으로 오늘 저녁까지 각성상태가 잘 유지되길 바란다.
아무래도 오늘은 디카페인말고 카페인으로 마셔줘야 할 것 같다. 커피포트의 물끓이는 소리가 요란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