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햇살아래로 땀이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아직 폐활량이 이정도면 괜찮다며 조금은 우쭐한 모습으로 산을 오른다. 어렸을적 아빠와 함께 산을 오르면 아빠는 저만치 먼저 올라가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를 이 힘든 곳에 왜 데려온 것이며,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산을 오를 수 있는지 의문을 품은채 등산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그랬던 나였는데 등산하는 재미를 알아버린 어른이 되어서야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을 써야 사는 것 같았고 인생의 험난한 여정을 아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날 시험하는 것 같았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제대로만 가면 되는 일 아니던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몸의 열기를 조금 식혀주며 활기를 북돋아 주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도 언젠가는 빛이 드리우듯 고구마 백만개를 먹은 것 같은 막막함도 계속 이어지는 것 같진 않다. 물도 먹어주고 김치도 먹어주면 고구마도 꽤 먹을만 했던 것 같다. 다만 그게 백만개라는게 문제였을 뿐이다. 한두개였으면 몰라도..
저 멀리 보이는 목표지점까지 오르면 아빠가 늘 그랬듯 스트레칭을 하시며 느리게 기어올라갔던 나를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다. 그때는 뭐가 그리 힘들다 느꼈었는지.. 아빠와 속도를 맞춰서 올라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언제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아버린 어리석음이 미워질때가 더러 있다. 아빠는 종종 말씀하실 것이다. 너는 어리석지 않다고.. 내가 똑똑하다며 인정해주던 아빠였으니.
점점 더 뜨거워지는 태양의 기운을 만끽하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숨이 조금 차오른다는 사실을 잊은채 말이다. 급기야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역시 난 꽤 괜찮은 사람이야'라며 수줍게 인정하던 차였다. 얼굴이 붉어 지는건 부끄러워서 인지 더워서 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부상으로 2주가량을 쉬면서 센터에 가고 싶다는 생각과 숨이 찰 정도로 운동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다른 바쁜 일들에 몰두해보기도 하고 웨이트 운동으로 대신 답답함을 해소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주가 흘렀는데 더는 답답함에 무료함까지 더해져 정체모를 스트레스가 누적되어가는 상태를 가만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선 등산길이었다.
별일 아닌 일에 꺄르르 웃어보이는 일까지.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고 나서 그 별일 아닌일에 대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들어서자 관리하시는 분께서 한바퀴를 크게 돌아 올것을 제안했다. 여기만의 룰이 있겠거니하며 한바퀴를 돌았다. 경차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주차라인이 보였다.
"이렇게 작은 주차라인이 내자리였네(키득키득)"
관리하시는 분께서 내가 하는 말을 들으셨는지 한마디 거들며 웃으셨다. 민망한 순간을 잘 지나갈 방법을 순간 궁리했다.
"감사합니다. 쏙 들어가네요 ㅎㅎ"
아.. 도망가고 싶다.
끝까지 웃음으로 무마해보려는 몸짓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한번 터지면 멈출 수 없는 특이한 개그코드는 종종 이렇게 애를 먹이곤 한다. 재밌는 날이다.
오랜만에 산을 오르는 몸은 아직 단련이 덜 된 폐활량에 놀라며 떨어진 체력에 현재의 몸상태를 체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몸을 일으켰을 때 종아리의 근육이 뭉쳤다는 걸 깨달았다. 하산할때만 리프트같은걸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걷는게 바보같아져서 또 몇일간 강제 휴식기에 들어갔다. 폼롤러와 마시지기를 친구삼아 회복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시끄러운 생각들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몸을 움직여야 생각들도 일요일을 맞이해 줄 것 같다. 풀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 더 이상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은 내가 생각한대로 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는 일로 오늘은 많이 행복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