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저 그런 하루일지라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by 소월

두번째로 정신의학과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나의 일주일간의 심리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황이 한번 왔었지만 약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선생님은 차분한 웃음을 지으시며 그렇게 천천히 이겨내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며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는 첫째날 검사했던 자율신경계 결과지를 살펴보시고는 모니터에 띄우고 설명해 주었다. 크게 문제는 없지만 자율신경계 균형도가 깨져 있는 상태였고 공황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여러 설명이 이어지고 선생님은 이번 달이 마지막 근무여서 사실상 내담자로서 선생님과의 상담은 오늘이 마지막날이였다. 하루 24시간중에 20~30분정도의 상담이 두번 이루어졌을 뿐이지만 참 힘들었을 시기에 나의 두려움을 안정시켜 주기위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었던 분이였고 또 최선을 다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던 분이였다. 아쉬움이 밀려왔다.


전혀 친하지도, 친해지지도 않았던 선생님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선생님은 두번밖에 상담을 안했는데 뭐가 아쉽냐며 멋쩍어 하셨는데 두려움을 잔뜩 안고 있던 내담자에겐 한줄기 빛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생님과의 헤어짐에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두 마디로 감사함과 아쉬움을 표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두번째 신경안정제를 아직 먹지 않았고 한번 왔던 공황을 무사히 넘겼고 그 후로 몇일이 아무일 없이 지나갔다. 평범한 하루들이 주는 일상을 다행으로 여겼다.


다시 러닝을 시작하고 페이스를 찾아가기 위해 천천히도 뛰어보고 인터벌로도 뛰어보며 매일을 격렬한 운동 후의 개운함으로 달래곤 했다. 이트로 느껴지는 근육통마저 반가운 오늘이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가 내리고 난 후의 하늘은 새하얀 구름들이 폭신한 모습으로 차분하게 산에 걸쳐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입추가 지났을때는 선선하게 느껴졌던 공기가 처서가 지나고 다시 습하고 더운 기운을 가득 품고 있다.


선선한 공기도 덥고 습한 공기도 각자의 매력대로 흘러가는 인생 아니던가. 계절이 바뀌어가는 순간들은 정돈되지 않고 계속 바뀌기를 반복하며 때로는 혼란스럽고 바쁘게 조금씩 변화되어 간다. 느새 바뀌어 있는 계절을 느끼는 일은 어쩌면 건강하게 살아있는 동안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아닐까.


아프지 말자. 건강하자. 몸도 마음도..


아무일 없던 것처럼 지나간 평범한 오늘을 잘 살아줘서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저 그런 하루이지만 특별히 아프지 않아서 다행인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전과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