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일회

카르페 디엠

by 애기타


청도 운문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착한 죽마고우가 안내하였다. 공양을 담당하는 비구스님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 더러 직접 가꾼 채소를 서로 주고받는다고 했다. 운문사 경내를 둘러보고 운문댐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은퇴하신 노스님이 계신다는 암자에 들렀다. 스님이 계시는 방의 벽과 바닥에는 온통 달마도와 붓글씨뿐이었다. 모두 스님이 손수 쓰고 그린 것이라 했다. 불교신자임을 힘주어 말하고 스님께 글씨 한 점 주십사 청했다. 노 스님께서 '일기일회'(一期 一會)라고 쓰신 글씨와 달마도 그림 한 점을 주셨다. 글의 의미를 정확히 몰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만남이나 기회'라는 뜻이었다. 다도(茶道)에서 차를 대접할 때, 차를 끓여낼 때 지녀야 하는 마음가짐이라 한다.


‘일기일회’란 중국 진(晉) 나라 원언백의 “만년에 단 한번, 천년에 단 한차례뿐인 귀한 만남 ‘만세일기 천재일회(萬歲一期 千載一會)’”에서 나온 말이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기회)이며, 모든 만남도 생애 단 한 번의 만남(인연)이라는 뜻이다. 이 모든 것이 생애 단 한 번이니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뜻으로 수년 전 회자되었던 까르페 디엠(Carpe Diem)과 아모르파티(amor fati)와 일맥상통한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다음 생의 나를 결정한다. 매 순간 우리는 다음 생의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인 것처럼,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할 일이다.


부모님과의 인연이 일기일회였다. 부모님과의 함께 한 시간은 돌이켜 보면 그리 길지도 않았다. 과연 부모님과 함께 얼마나 즐거운 순간을 함께 향유했으며 제공해 드렸는가? 기쁨과 즐거움은 찰나에 불과하고 걱정과 근심을 끼쳐드렸음이 수백 배는 될 것이다. 떠나가신 후 자식을 키워보며 살아계실 동안 그리하지 못했음을 후회스럽다. 효도란 부모님을 위한 일만이 아니다. 떠나시고 난 후의 밀려드는 아쉬움과 후회를 덜기 위한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좀 더 살갑게 대해 드리지도, 자주 뵙거나 또 손 잡고 나들이도 자주 하지 못했다. 그 가벼워진 육신을 가끔이나마 업어드렸다면 또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야위어진 어깨를 주물러 드렸던 게 언제였던가. 나이 들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이리도 많음에 그동안 홀로 감내하신 외로움 또한 얼마나 컸을까? 수많은 스킨십을 하며 자식을 키우기에 부모님께 그리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비록 온전치 못한 육신일 망정 부모님과 함께 했던 매 순간이 일기일회였음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안타깝고 사무친 그리움에 생각할수록 가슴만 먹먹하다. 어디 나만의 경우일까 자위해 보나 마음은 편할리 없다. 죽은 효자라는 핀잔과 비웃음을 들을 망정 누워계신 산소나마 자주 찾아뵙고 예전의 무심함을 속죄하며 그리움에 머리를 조아릴 따름이다.


두 번째 일기일회의 기회를 글쓰기로 맞이하였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수필과 만남이 그것이다. 이번에는 놓칠 수 없다. 또 후회도 남기지 않으리라.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였으니 한 눈 팔 겨를이 없다. 매 순간 정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코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시간이 아니었던가. 지금 이 순간 또한 지나가리니, 아쉬움과 후회가 없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새벽 두 시, 발코니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한겨울 차디찬 공기 탓에 모든 게 정지되어 버린 듯한 거리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정물화 같다. 한겨울 적막한 밤하늘로 회한 어린 한숨을 날려본다. 무심한 밤하늘에 별만 총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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