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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반 Sep 17. 2023

월간 디깅 #8 - 4월 (특별 편 - 사카모토 류이치

4월,  열렬했던  불꽃을 기리며

23. 04

230328 사카모토 류이치 (Ryuichi Sakamoto)

4월,  열렬했던  불꽃을 기리며




1. Rain (The Last Emperor OST)

특집 "사카모토 류이치" 편의 시작을 알리는 곡은 그를 전 세계에 인식시킨 곡, Rain이다.

한국에서는 이 곡을 막장 드라마나 예능에 주야장천 사용해서 음악의 가치가 다소 변질된 감이 있다.

그러나 곡을 제대로 들어보면 OST인 만큼 영화를 극적으로 살리는 데 아주 안성맞춤이다.

이후로 소개할 그의 영화 OST에서는 일종의 "비장함"을 엿볼 수 있는데 이 곡도 슬픈 느낌보다 잘 벼려진 비장함이 돋보인다.

월간 디깅#4에서 이 앨범에 실린 곡 중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의 마지막 콘서트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었기에, 그의 마지막 소식이 안타깝기만 하다.






2. Glow (Fennesz & Ryuichi Sakamoto)

크리스티안은 사카모토와 마찬가지로 전자음악을 하는 프로듀서이다.

사카모토도 전자 음악을 하는 경험이 있기에 두 사람의 궁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던 만큼, 이 앨범에선 그들의 협주가 조화롭다. 이미 Sala Saint Cecilia라는 앨범으로 2005년에 만난 적이 있으니 효과는 두 배가 된다. 소리에서 질감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앨범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해준다.

평온하고도 불안한 소리의 질감이 빛처럼 퍼졌다가도 다시 부서지는 것. 

반복되는 소리의 울림에서 그을린 노을을 느낀다.






3. 출성 (남한산성 OST)

섣부른 말일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들어 본 사카모토 류이치가 그동안 제작한 영화 OST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다. 남한산성이란 영화는 한국 영화에서 찾기 힘든 건조하고 냉정한 느낌이 드는 영화인데 영화적 특성에 잘 맞춰서 음악이 제작되었다.

그가 대단한 점은 (아래에도 비슷하게 서술되겠지만) 영화가 제작되는 배경이나 국가에 따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장치로서 전통악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기존 "출성" Ver 은 김덕수와의 협연으로 북이나 장구, 해금의 소리가 적절하게 들어갔으며 string. ver보다 더 단조로운 형태를 띤다.

이렇게 한 음, 한 음, 쌓아 올린 음들의 무게감이 주는 힘은 영화적으로 해석했을 때 왕의 비통한 심정을 대변하여 감상자에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구태여 영화를 찾아보지 않아도 음악만으로 제목만큼이나 살벌한 눈바람과 칼바람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질 정도의 표현력을 느낄 수가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하는 것.

이것이 세계가 인정한 위대한 음악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ver. 한국 전통악기와 오케스트라가 깔끔하게 조화롭다.



string. ver. 개인적으로는 이 버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마지막 황제"에서도 엿볼 수 있는 사카모토 류이치만의 풍부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4. Undercooled

그가 솔로로 나오기 전, YMO시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렉트로니카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를 잘 알지 못하거나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청취자들은 그가 되게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피아노곡만 주로 하는 음악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실험적이고도 도전적인 면은 YMO에서의 활동부터 뻗어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실험적인 정신이 솔로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져 디스코그래피 곳곳에 남아있다.

undercooled는 2004년 발매된 "chasm"의 타이틀 곡이다. 앨범 전반이 뉴에이지 감성이 풍부해서 일본 뉴에이지의 특징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곡은 MC 스나이퍼의 목소리가 한국어 가사로 들어가 있는 독특한 곡이다. 더욱 눈여겨볼 점은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서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인데, 사카모토 류이치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평화와 관련된 운동을 많이 해왔기에 생전 마지막까지도 사회에 위협이 되는 여러 사건·사고에 끝까지 목소리를 내왔다.

추측하기로는 다른 국가의 언어를 사용해서라도 각 언어가 가진 한계점을 뛰어넘어서 메시지를 알리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해금 또는 얼후 같은 현악기 소리가 들어갔는데 이것도 묘한 분위기가 있다.






5. Flower (Taeko Onuki)

시티팝이 주 장르인 그녀는 목소리가 편안해서 모든 장르를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다.

이 역시 대단한 장기라 "flower"에서 큰 활약을 했다.

둘을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연주와 어울림이 보통이 아니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람도 없이 반주와 잘 녹아드는 건 그녀의 훌륭한 테크닉 덕분이다. 

더불어 목소리의 울림이 피아노의 울림과 비슷해서 타에코가 아니면 누가 이 곡의 노래를 불렀을까 싶을 정도. 맑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는 또 다른 피아노의 합주처럼 들린다.


긴 시간이 흘러도 맑은 목소리는 여전하다.






6. The Revenant Main Theme (The Revenant OST)

투병 중에 만든 작품.

"코다"를 보면 빙하에서 소리 샘플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듄 OST를 제작하기 위해 사막을 방문한 한스짐머도 그렇고, 위대한 작곡가들은 기존 악기를 넘어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소리를 찾아 나서는 게 특징인가 보다. 그런 노력 끝에 이런 멋진 곡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거겠지.

내가 들은 게 맞다면 이 곡은 오직 첼로와 바이올린만 이용한 것처럼 들리는데,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악기만 사용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가령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마지막 황제나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의 경우는 오케스트라를 메인테마로 해서 풍부한 소리의 향연이 특징이다. 반대로 남한산성과 레버넌트는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관객의 집중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단순한 곡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레버넌트의 테마곡은 중간마다 한기가 느껴질 만큼의 생생한 공기 소리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어서 영화를 보충하는 장치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매서운 바람이 불고 척박한 시린 땅에서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이렇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7. Blu

클래식은 왜 클래식일까. 아마 모든 음악의 근원지이기 때문이다. 전혀 정반대의 장르라 할지라도.

요즘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 블랙핑크의 "shut down"처럼 대중가요에서도 클래식을 샘플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인적으로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는 클래식의 단점을 환기해 준다는 점에서 현대에서 보여주는 접근법을 꽤 환영하는 편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보면 앨범들이 간혹 바흐의 곡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물론 그가 바흐를 좋아한 탓도 있겠지만 이만큼이나 거장조차 클래식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클래식은 현대음악에서 떼려야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Blu는 마치 라벨의 볼레로를 연상케 한다. 멜로디는 전혀 다르지만 밑에 깔린 베이스의 고조됨이 볼레로와 아주 유사하다고 느껴진다.

곡이 진행됨에 있어서 악기가 하나씩 추가가 되는데 마지막 다 같이 합주하는 구간은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재구성한 익숙한 느낌마저 든다.

Blu는 그가 얼마나 클래식에 깊은 애정을 두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8. The Last Emperor (The Last Emperor OST)

마지막황제의 Rain과 The Last Emperor를 비교하라면 지금에선 후자를 고르는 편.

마지막 황제 메인테마는 피아노+바이올린 조합과 오케스트라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오케스트라 버전을 더 추천하는 바이다. 남한산성이 한국 영화였기에, OST에 한국 전통악기가 사용됐던 것처럼 마지막황제에서는 전통악기까진 아니더라도 70~90년대 중국영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친숙한 멜로디가 곡 전반에 깔려있다. 특히 끝 음이 몇 번 늘어지는 특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시대극을 다루는 영화적 장르에 중국의 색깔을 덧입혀 준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곡은, 비슷한 문화권이라도 나라마다 정서와 문화의 분명한 차이를 뛰어넘는 노력을 보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자서전에서 마지막 황제 작업 당시, 중국 관련 음악을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서 공부했다는 말이 있는 만큼 그의 열정을 엿볼 수가 있다.


이 곡이 수록된 1996년도 앨범 말고 영화 자체의 OST 삽입된 버전에서 더 다채로운 감상을 받을 수가 있다.

 





9. Andata

async 앨범은 철학적인 단어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되었는데 정확한 시점을 짚긴 힘들지만,  그의 앨범은 더 이상 "음악"이라기보다 "소리"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앨범의 라이브를 담아낸 "에이싱크"다큐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이름도 모를 다양한 기구들을 그 자리에서 조합한다. 오르간과 유사한 깊은 소리가 나거나, 피아노의 현을 문지르는 마찰 소리를 내는 등 친숙한 악기에서 새롭게 들릴만한 소리를 구현한다.

이렇게 소리가 모여 음악이 되고 음악을 다시 해체하여 날것의 소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고뇌를 알 수 있다.

이 앨범은 그가 YMO시절, 전자음악을 위주로 만들 때의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그때와 달리 더욱 서늘하고 원초적인 감각에 가까워졌다는 최종 감상이다.

앨범의 재킷 또한 서늘한 풍경의 일부가 오류가 나 늘어진 모습이 앨범을 대변해 주는 모습처럼 보인다.  


Blu가 볼레로를 생각하게 한다면 이 곡은 신기하게도 동방신기의 "천년연가"가 떠오른다.

드라마 내용은 몰라도 OST는 알고 있었는데, async의 앨범을 듣다가 너무 익숙한 멜로디라 찾아봤더랬다. 물론 둘의 전개는 완전히 다르지만 초반 멜로디가 매우 유사하다.






10. 20220207 

그의 마지막 유작.  

"12 "번째 정규앨범이며 "12" 개의 곡이 수록되어 있다. 

12 앨범은 모든 곡이 시작이며 절정이고 끝맺음이다. 그만큼 전곡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전체적으로 모든 곡의 구성이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모든 불순물을 걸러내고 깨끗한 정제수를 담은 느낌이 들 정도.

류이치 사카모토 다큐멘터리 "Coda (2017)"에서 보여준 고유의 음악적 세계관이 async에 이어 마침내 완성에 이른 듯하다. 그동안 해를 거듭하며 세상에 선보였던 음악들이 점점 간소화되더니 마침내 태초에 도달했다는 감상. 부산스러운 잡음과 바람과 공기의 마찰 소리 그리고 꺼질듯한 숨소리까지, 그대로 녹음된 날 것의 소리의 모음집은 그대로 음표 위에 새겨져 있다.

그의 마지막이었을 숨결이 고스란히 가라앉은 앨범을 들으며 4월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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