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소생법

#2. 그리고 또 아침

by 이복덕

눈을 뜬 건 오전 아홉 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남편은 두 시간 전 출근했다. 잠과 현실의 경계에서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암막커튼 때문에 침실엔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다. 현실로 넘어오는 발걸음은 느렸다. 햇빛 한줄기가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시선이 빛을 좇아 벽에 머물렀다. 틈으로 빛이 가득 쏟아졌다.


유난히도 나는 감정의 소화가 더디었다. 남에게는 가벼운 감정도 나는 쉽지 않았다. 어젯밤 부서진 감정들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다.


벌컥벌컥. 얼음물 한 컵을 쉬지 않고 마셨다. 얹힌 것들이 차가운 물에 씻겨 내려가길 바랐다. 목부터 위까지 시린 기운이 흘렀다. 아찔한 차가움이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일깨웠다. 살아있음으로 나는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집에서 이동하는 데에 한 시간, 외출 준비하는 데에 삼 십분.

하지만 병원진료까지는 한 시간 이십 분이 남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한 달에 한 번 진료를 받았다. 부서진 어제의 끝에 오늘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건 운이 좋다. 생생한 감정과 생각이 진료에 반영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보통 진료는 6분 언저리로 뒤에 대기 환자가 없다면 10분 정도까지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 달 동안의 일과 치열했던 어젯밤 이야기, 그리고 조언을 듣기엔 빠듯했다.


다음 진료 예약을 잡고 나왔다. 다음 진료는 2주 후였다. 상태가 나빠져 진료 주기가 앞당겨졌다.


병원을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평일 낮 지하철에는 사람 몇 명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디를 가는지 궁금했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지하철 의자가 딱딱했다. 진료실에 폭신했던 의자와는 달랐다.


쿠션이 푹신한 의자. 보드라운 티슈. 나지막한 음악, 따스한 아이보리색 공간. 진료실에는 우는 내가 있었다. 어젯밤의 절망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나를 혐오하고 죽이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런 믿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나가떨어진 것이 억울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은 심리상담을 추천하며 심리상담센터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2주 뒤에 뵈어요."

선생님께 전하는 인사는 적어도 2주 뒤까지는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자기 주문이었다.


언제나 병원 진료 이후에 마음은 어지러웠다. 감정의 복기는 마음을 흙탕물로 만들었다. 가라앉아 있던 감정과 생각이 떠오르고 섞이며 혼란스러웠다. 오늘도 감정과 생각의 침전을 기다렸다.


하늘에 빛이 가라앉자 남편과 함께 잠자리에 누웠다. 다행히 오늘은 눈꺼풀이 가볍게 감겼다. 곧 잠에 들었고 남편도 곧이어 잠에 들었다.


꿈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꿈은 언제나 시작이 불분명하듯이 나의 울음도 언제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꿈속에 나에게는 울거나 더 울거나 두 개의 선택지만이 있었다. 꿈은 절정으로 치닫았고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꿈속 세상이 흔들렸다. 남편이 나를 깨웠다. 나는 꿈과 현실에서 모두 울고 있었다. 서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새벽 6시였다. 창 밖은 어스름한 푸름으로 곳곳이 물들어 있었다. 이내 남편을 안심시켰다. 그저 무서운 꿈이었다는 거짓말을 했다. 꿈속은 울음만이 존재하는 무서운 곳이었다.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 있었으니 완전한 거짓은 아니었다. 미처 가라앉지 못한 감정이 만들어 낸 꿈이었다.


축축한 아침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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