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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l Sep 25. 2023

안드레아 사장님은 스탠드업코미디언이 되겠다고 한다.

실패 없이도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구에떼 모어게(구텐모겐의 스위스독어), 안드레아!"


어제저녁, 급히 부탁할 리플릿이 있다는 그녀의 문자를 받고 아침 일찍 안드레아 아줌마의 매장을 찾았다. 작년 그래픽회사를 시작할 때부터 꾸준히 광고 지면디자인과 리플릿 디자인을 의뢰해 온 그녀는 나의 몇 안 되는 단골 고객 중 하나이다. 우리 집에서 뛰면 30초 거리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그녀의 매장에는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에서부터 여러 스위스메이드(Swiss made) 디자인 제품들이 3개 층을 꽉 메우고 있다. 작은 관광지인 우리 동네 상점들 중 유일하게 내 지갑이 열리는 매장이 안드레아의 가게이다. 여기서 잠깐, 대부분의 나라는 생산국을 표시할 때 'made in'이라고 표기하지만 스위스는 고집스럽게 'Swiss made'라고 쓴다. (2017년 상표 및 출처 표시에 관한 스위스 연방법에 누가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원재료 무게의 80%와 필요한 가공이 스위스에서 이루어지는 식재료, 제조 비용의 60%와 필수 제조 단계가 스위스에서 이루어진 공산품, 회사 본사와 관리 부서가 스위스에 위치한 서비스제품에 한해 Swiss made를 표기할 수 있다.)


처음 이 작은 관광지로 이사를 와서 둘러본 상점들의 모양새에 기가 막혔다. '어이구야! 이거 진심으로 팔려고 진열해 놓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품들은 조악했다. 파워포인트로 작업한 듯한 엽서는 오래도록 팔리지 않아 색이 바래있었고, 저걸 도대체 이 관광지에서 왜 팔자는 걸까 싶은 코르크 소재의 지갑과 가방들, 가장 만만한 냉장고 자석조차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부분의 상점은 건물주들이 운영하고 있었고, 월세에 대한 압박도 생활고도 없는 그들에게 장사는 그저 은퇴한 동네 노인들의 여가생활인 것 같았다. 다만 지출을 한껏 준비하고 이곳을 찾은 중동 부자들 만이 안타깝게 빈 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긁히지 못한 신용카드를 들고 허망한 눈빛으로 관광버스에 오르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사업을 구상해 보기도 하지만, 그저 딸내미랑 강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이나 나눠먹는 게 좋은 나는 항상 구상에만 만족한다.


여하튼 안드레아랑 이런저런 일 관련 이야기를 하다 겨울시즌 이야기가 나왔다. 매년 12월 한 달간 대대적이고도 장기적인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는 우리 동네는 그 행사의 종료와 동시에 대부분의 호텔과 레스토랑이 긴 휴식기를 갖는다. 


"맞아, 우리 동네 1월이면 완전 비지!(Stimmt, im Januar wird es hier voll leer.)"나는 얘기 했다. 


여기 표현으로 '완전 비다'를 'voll leer (영어로 하자면 full empty가 되겠다.)'라고 한다. 안드레아는 매일 쓰던 이 '꽉 비었다'는 표현이 갑자기 신기해졌는지 깔깔거리며 웃고는 갑자기 수첩에다 이 표현을 적기 시작한다. 


"매일 하는 말인데 그건 왜 또 적어?"


내가 묻자 자기가 요즘 스탠드업코미디를 준비 중인데 이 두 반어가 같이 쓰이는 게 코미디의 소재가 될 것 같다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이 이 주제에 살을 더해준다. 


"나는 어제 케밥 주문하는데 매운 소스 없이를 같이(독: mit ohne Sauce, 영: with without sauce) 주세요라고 이야기하고 나니까 이상하더라고"


안드레아는 이 표현도 수첩에 열심히 적는다. 50대의 그녀는 그렇게 틈틈이 그녀의 60대를 준비 중이었다.




안드레아의 인생 계획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언젠가 남편 회사에서 초대한 크리스마스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파티에서 나는 이런저런 보조업무를 하던 십 대 소년 두 명을 보았었다. "누구야?" 어느 부장의 아들쯤 되는 아이들이 용돈이나 벌 요량으로 일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사무직 현장 실습생들(Lehrlinge)..."  그랬었다. 스위스는 중학교 때 이미 진로를 결정해서 열네댓 살이면 이미 현장에서 실습이 시작되었다. 중학교에서 자신의 미래 직업을 선택한다? 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막막했다. 단순히 인문계와 실업계의 구분에서 더 나아가 세분화된 직업교육이 고등학교 때부터 현장과 연결되어 시작되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학교에 나가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실전에 투입된다.


아이 입학식에서 나눠준 스위스 교육 시스템 표. 표 왼쪽 나이에서 15세 이상 부분부터가 고등교육이다. 고등교육 이후의 진로는 간식 사다리 타기처럼 자유롭게 선택 가능하다.



얼마 전 싱크대가 막혀 배관공이 데리고 온 조수 아이도, 난방을 가스로 교체하며 필요 없어진 수영장만 한 기름통을 지하에서 분해해 수거해 가던 기술자들이 데리고 온 아이도 다 현장 실습생들이었다. 단순히 일일 견학을 나온 것 같았던 마트에서 본 그 아이들도 다 판매직 현장 실습생들이었다. 돈벌이의 현장에서 만나기에 그 아이들은 너무 어려 보여 낯설었고, 장난기가 쏙 빠진 진지한 그 아이들의 표정에서 내 사고 깊숙이 자리 잡은 직업의 귀천이란 더욱 낯설었다. 


저렇게 현장에 서 있기까지 이 아이들이 스스로 했을 고민은 내가 저 나이에 했을 직업에 대한 막연한 고민과 얼마나 다를까 싶었다. 학교와 지자체, 많은 직업연대와 회사들이 유기적으로 박람회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아이들의 결정을 실질적으로 돕고 있다. (이곳의 직업연대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야겠다. 한 회사 내에서도 어느 직업연대에 속하는지에 따라 연봉인상이 다르다. 과장이든 부장이든 어떤 기술직으로 직업을 시작했는지에 따라 그 직업연대의 결정에 영향을 받게 된다.) 중학생 10명 중 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2~3명을 제외하고는 이 시기에 모두 자신의 직업을 찾아간다. 십 대 중반에 결정한 직업으로 10년의 경력을 쌓아도 이들은 아직 20대 중반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20대 중후반의 시기에 현 직업을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다른 직업에 도전해 볼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는 시기를 갖는다. 10년이면 자신을 알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이 시기의 직업변경은 실패를 상징하지도 않는다. 기술직에 종사하던 이들은 자신의 도약을 위해 이 시기에 대학에 진학해 빵빵한 현장경험을 토대로 이론을 배우고 필요한 인맥을 쌓는다. 현장직과 사무직이 철저히 나누어져 네가 현장을 아네 모르네 다툴 일이 적다. 대부분의 학, 석사 과정이 최소한 5년의 경력을 입학 조건으로 제시하고 회사에서는 어느 직위 이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 학위를 필요로 한다. 15세에 마트에서 일을 시작한 아이가 상무까지 오르는 이 열린 결말이 대단히 신문에 나거나 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은퇴를 맞이한 이들에게 '이제는 뭐 하고 살까나?'라는 고민은 그리 생경하지 않다. 삶의 마디마다 계속해서 해 왔던 질문이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 없이도 지속적으로 수정되어 왔던 대답이다. 리듬체조 선수로 활동하다 언어교육자로 길을 변경했던 안드레아는 이제 잡화점 주인으로 살고 있다. 은퇴 후에는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그녀는 그녀의 모든 직업이 좋았다고 했다. 생뚱맞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은 그녀의 계획을 응원하며 나 또한 웃긴 일이 생기면 그녀에게 소재를 전해주겠노라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무대에 서게 될 안드레아 할머니에게 계란꽃 다발로 퐈이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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