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게되는 행운이다.
성경에 보면 특히 신약의 시작인 복음서에서
등장은 세례 요한으로부터이다. 그는 당시 사회의 갑의 출신이지만
홀로 광야로 가 ( ? 학자들은 광야의 공동체가 있을것으로도 얘기하지만 )
전설처럼 도를 닦고 ( ?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예언자가 된것으로 설명하지만 )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라는 사명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부터인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그런데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과 제자가 된 이들에게
난 나팔수야 구원자가 아니야라고 외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몰려든다.
그러자 당시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왕은 두려움을 느꼈는지 그가 한 말을 핑계로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날 기가막힌 춤을 춘 아이돌급인가보다. 의붓딸의
소원이 세례요한을 죽여달라는것을 받아들여 죽임을 당한다.
나팔수가 죽임을 당하자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신다.
세례요한이 왜 위대할까를 늘 생각해본다. 세례요한의 관점에서
그는 나팔수로 살기위해 광야로 가서 키워지고 자라나고 뜻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나팔수로 등장하고 기존의 갑의 세력에 의해 제거된다.
그는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사라짐을 당한 사람이다.
그는 따르는 무리가 많았지만 거리를 두었고
그는 따르는 제자가 많았지만 자신의 영향력밑에 묶어두지 않으려했고
예스와 노를 분명하게 표현하며 나팔수로서의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다 사라졌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자라는 평을 듣게 된다.
우리는 지금 여기저기서 나팔수들의 소리들을 듣는다.
구시대가 약해져가고 새로운 질서가 새워져가는 다양한 소리들이다.
구시대는 해체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새로운 질서는 모습을 제대로 갖출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할것이다.
그 탐구의 과정을 걸어가는 길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 올리게 하는
여정이기를 이 아침에 기도한다.
세례요한이 걸은것처럼 새시대를 알리는 나팔수가 되어 나팔을 불다가 사라지기를
감히 꿈꾸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