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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나(세례명)의 점집순례

아멘

by 반항녀

많은 천주교인들에게 혹시나 욕을 먹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지만 이런 것도 하느님은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며 글을 쓴다.


조금 전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엄마가 글감이라고 얘기해 주며 내가 점과 사주를 그렇게 보러 다닌 것은 엄마 탓(?)이라고 한다.


어릴 때, 엄마와 이모는 자식들의 점을 종종 보고 공유를 하곤 했다.


스타킹에 나오는 어린 무당(지금은 어른이 되셨겠지요.)한테 점도 봤다.


사촌오빠야가 당시 공부를 잘했는데도 사촌오빠야한테는 연예인이 될 거라고 했고, 나한텐 큰 침을 꽂을 거라고 했다.


우리 엄마는 신났다. 나도 신났다. 큰 침이란 게 뭐겠나.


한의사.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공부로 이름을 좀 날렸기 때문에 나는 정말 한의사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큰 침은 개뿔.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옷소매에 볼펜 똥을 묻히고 있다.)


사촌오빠야는 정말 연예계 쪽 일을 하고 있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점을 보고 나면 나쁜 말들이 없었기 때문에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도 점과 같은 미신이 좋아졌던 거 같다.


중‧고등학교 때는 사주나 신점을 보러 가기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부산 서면에서 학생들 사이에 유명했(?)던 ‘무지개 타로’를 많이 보러 갔다.

분명히 아는 사람들 있을걸?


타로 한 셔플에 2,000원. 주로 보는 내용은 당연히 ‘연애’였다.


친구와 둘이서 좋아하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보러 갔었는데 그럴 때마다 긍정적인 답변, 곧 남자친구가 생길 것이다라는 말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만약 8월에 생긴다고 했는데 8월이 되어서도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으면 음력달력을 검색해서


‘음 아직 음력으로는 8월이야.’ 하고 위안을 했지만 음력으로 8월이 끝나도 남자친구가 생기진 않았다.


타로가 그렇게 틀려댔지만 고등학교 때도 보러 갔었다.


고등학교는 여고를 갔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 자주 바뀔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겨서 그 친구와의 가능성을 묻기 위해 타로를 보러 갔다.


항상 같이 다니던 그 친구도 마침 그때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겨서 같이 보러 갔다.

(이 친구가 나랑 삥을 계속 같이 뜯겼던 친구다.)


타로를 봐주시는 분께 물었다.


“아저씨, 제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는데 연락은 좀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애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타로아저씨께서는 왼손으로 그 남자애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타로카드를 5개 정도 뽑으라고 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뒤집으며 고뇌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타로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결과를 보니, 니가 적극적으로 나가면 가능한 사이야.

지금 당장 그 남자애한테 ‘뭐해?’라고 보내봐.

확실히 좋은 효과가 있을 거야.”


나는 너무 신이 나서 그 자리에서 바로 ‘뭐 해?’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때 너무 신이 났어서 친구가 본 타로의 내용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들뜬 마음을 갖고 친구와 타로 결과와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서면을 돌아다녔다.


몇 시간이 지나도 답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드디어 그 남자애한테서 답장이 왔다.


정말 충격적인 두 글자.




“똥 쌈”




나는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그래 잘 싸라.”


라고 보내고 마음을 접었다.


이 사건 이후로 타로는 끊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 문과, 이과를 선택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이과라고 생각했다.


수학을 좋아했고, 수학을 잘했다. (나름)


그런데 1학년 마지막 기말고사에서 충격적인 수학점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봤던 신점에 나는 ‘의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의사는 무조건 이과였기에 이과를 선택했다.


그래서 2학년 이과용 교과서로 다 받았고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학이 되고 왜인지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불안은 엄마한테도 있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는 사촌 큰엄마한테 용하다고 받아놓은 무당한테 연락을 했고, 점사를 볼 날짜를 잡았다.

문현 쪽이었나.. 동래 쪽이었나.. 무슨 푸르지오아파트 근처였던 것 같다.


그 무당 분께서 질문을 하자마자 나는 문과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방학 때 당시 담임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문과 책을 새로 다 샀다.


그리고 문과로 진급했다.


나는 엄마보다 더 그런 미신에 믿음이 많았던 듯하다. 그 뜻을 순순히 따랐다.


17년 평생 이과로 생각해 오다 무당님의 말씀 한 번에 문과로 갔고, 나는 그게 내 길이라고 바로 받아들였다.

(이 무당님이 3화-삥에서 대학 가면 삥을 더 이상 안 뜯긴다고 말씀해 주신 용한 무당님이시다.)


아빠는 이런 사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났고 엄마와 아빠가 그때 이 일로 싸웠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수능 D-100부터는 매일 묵주기도를 했다.

성모님과 하느님은 분명 다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 대학 입시를 위해 엄마(세례명: 로사)는 매주 대구에 갓바위로 가서 초를 켜고 절을 하고 왔다.


어쨌든 그렇게 문과로서 대학을 가게 되었다.


대학을 가서는 이제 무엇이 궁금할까.


바로 취업 아니겠는가.


이때도 사촌 큰엄마가 용하다고 추천해 주신 점집에 갔었던 것 같다.


사촌 큰엄마가 몇 분 계셔서 정확히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부산 물만골에 있는 점집이었고, 남자 무당님이셨다.

(혹시 가보신 분 댓글 달아주세요.)

한복을 입고 계셨고 외모는 정말 아랍계열로 이국적이셨다.


내 취업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그래서 한 참 ‘빙의’ 또는 무언가로 무당님이 모시고 있는 신한테 나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해주고 계셨는데


갑자기 2층 계단에서 어떤 교복 입은 남학생이 내려왔다.


“아빠 용돈 좀.”


좀 많이 깼다.


하지만 무당님은 신부님이 아니니 아들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무당님은 현실세계로 돌아와 주머니에서 만원인가 2만 원을 꺼내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아무튼 다시 집중을 해서 점사를 듣고 있었다.


무당님이 나에게 ‘말뚝살’이 있다고 했다.


팔뚝살도 아니고 말뚝살이라니. 뭔..


말뚝살이란 게 남들은 한 번에 될 일이 나는 한 다섯 번은 해야 되는 거라고 하시면서

이건 굿으로 풀어줘야 한다고 하셨다.


굿가격은 500만 원.

일단 알겠다고 하고 나오면서 엄마랑 얘기했다.


그래도 다섯 번 하면 된다는 거니까 다섯 번 하자. 500만 원 내서 굿하는 것보다 그게 낫지.


내 생각도 그랬다. 어쨌든 원하는 걸 결국에는 한다는 거니까.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 취업준비를 할 때 잘 안 풀리면 말뚝살이 생각나면서 굿을 했어야 했나 하곤 했는데

대학교 졸업하고 6개월 만에 취업에 성공했다.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신점은 이 이후로 거의 끊었.. 다.


(그래도 하나씩 끊어가는 모습이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 같지 않은가)


이후로 엄마는 점은 다시는 보지 말자고 그랬다.


아.. 앞에 적었던 ‘사람 죽은 집’에 있었던 일들처럼 뭔가 답답한 일이 생기면 정-말 부득이 점을 보러 가긴 했네.


아무튼 그 뒤로는 나는 혼자 사주를 보러 다녔다. 엄마한테는 비밀로하고.


왜냐면 엄마가 돈 아깝다고 뭐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주에서 좋은 얘기가 나오면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돈 아깝다는 혼을 들을 각오를 하고 사주얘기를 했다.


철학관. 사주는 통계학이 아니던가.


신점과 다르게 통계학이니 믿을만하다며 새해가 되면 보러 가고 이직하고 싶으면 보러 갔다.


사실 사주를 계속 볼 필요는 없는 것 같긴 하다.


생년월일시로 나오는 거니까. 내 생년월일시는 바뀔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계속 보는 것은 내 사주가 나쁘지 않기 때문인데 사주를 보면 뭐 다 잘 풀린다고 말해주시더라.


그리고 어느 순간 한 철학관에 정착을 했다.


그 정착한 철학관에서는 내가 취업할 년도와 월을 정확히 맞췄다.

(궁금하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그게 문제였다. 그랬기에 계속 다닌다.

(그래도 가격이 합리적이다. 한 번에 30,000원)


그리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스토킹 사건을 신고하고도 혹시 2번을 더 갔는데 그 두 번 모두 선생님께 그것을 물어봤다.


“혹시 올해 사주에 제가 복수의 칼에 맞아 죽는다는 얘기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러면 나는 안심이 됐다.


스토킹 이후 불안으로 치료를 받고 있긴 한데 가끔은 선생님이 칼 맞을 일이 없다고 해주신 그 말씀이 약보다 위안이 될 때가 있긴 하다.


이렇게 보면 결국 점을 보러 다니는 행위는 일종의 상담행위가 맞는 것 같다.


힘든 일이 있고, 그것이 불안해 누군가한테 털어놓고 어떤 답이라도 듣는 것.


근데 가격은 좀 하향평준화 됐으면 좋겠다.


용하다고 해서 귀가 솔깃해지면 10만 원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못 간다.


내 상한선은 3만 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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