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법학을 아시나요?

남녀의 이분법적인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

by 날개

현대 법철학에서 '페미니즘'(feminism)의 논의를 빼놓을 수 없다. Raymond Wacks 교수는 전통적인 법학이 여성의 지위를 눈에 띄게 간과하는 바람에, 페미니스트 법학 이론(feminist legal thory)은 이러한 소홀함을 바로잡는 데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즘 법학은 형법, 특히 강간과 가정폭력, 가족법뿐만 아니라 계약법, 불법행위법, 재산법, 공법을 망라하여 실체법의 여성의 불평등에 대해 순수한 학문적 분석을 넘어 포괄적인 분석을 제공하였다고 평가하면서, 이 이론이 대학 법학 커리큘럼뿐만 아니라 법 자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이에 관해 그는, 아내는 결혼 사실에 의해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법 원칙('결혼 동의 이론')을 폐기하고, 1990년대 초반 영국 법원이 부부강간죄를 인정한 사례를 대표적으로 든다. 판사가 페미니즘 법학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페미니즘 법학의 영향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말한다.


한편, 그는 여성들이 겪는 불의에 대한 불안감을 고려할 때 페미니스트의 주장이나 글은 종종 노골적으로 논쟁적인(overtly polemical)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채택한 강력한 슬로건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였다. 그만큼 페미니즘 초기에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여성의 일상적인 예속을 해결하지 못한 사회 운동에 대한 비난이 고스란히 급진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고 그는 분석한다.


아무튼, 페미니즘 법학에는 적어도 다섯 가지 주요 이념이 있는데, 이를 간단히 소개한다. 첫째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liberal feminism)으로, 법 앞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형식적 평등(formal equality)의 원칙에 근거한다. 이 관점에서는 기존의 법체계가 명시적 차별을 제거하고 성중립적인 법 적용을 해야만 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참정권, 교육권, 노동시장 진입 등 '기회균등'(equal opportunity)의 확대를 중시하며, 성차별을 법률 개정이나 제도 개선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은 법과 사회 전반이 가부장제적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다고 보고, '성'(sex)과 '권력'(power)의 관계에 주목한다. 성폭력, 포르노, 가정폭력 같은 문제들이 단순한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몸과 삶을 지배하는 구조적 폭력임을 강조한다. 법은 이러한 구조를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기 쉬우므로,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성 권력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전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셋째, 포스트모던 페미니즘(postmodern feminism)은 '여성'이라는 개념조차 고정되고 단일한 정체성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별은 사회적·언어적으로 구성된 담론의 산물이며, 법 역시 중립적인 규범체계가 아니라 권력관계가 내포된 담론 시스템으로 본다. 넷째, 차이 페미니즘(difference feminism)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를 단순히 부정하거나 제거할 것이 아니라, 여성 고유의 도덕성·가치·경험을 긍정하고 그것을 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 성별 외에도 인종, 계급, 장애, 성적 지향, 이주 여부 등의 사회적 정체성이 서로 교차하며 복합적인 억압과 차별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이와 같은 페미니즘 법학은 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데, 남녀 간의 본질적이 차이와 사회적 역할의 기대를 충분히 반영하고 고려하지 못하는 점, 남성-여성 관계를 지배-피지배 관계로 해석하여 남성과 여성의 협력과 결합, 다양한 관계성 등을 무시하고 사회전체를 이분법적 '대립'구조만 강조한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일부의 급진적 주장은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과 낙인론으로 변질될 수 있고, 특정 집단의 경험적 중심의 사고는 다른 집단의 배제와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진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페미니즘 법학은 조셉 라즈와 같은 법실증주의자(legal positivism)들 입장에서 보면, 법의 개념을 도덕과 지나치게 연결시키고 억압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간주함으로써, 도덕적 논쟁을 과도하게 개입시킨다. 특히, 각종 담론을 통해 법을 계속적으로 재정의하려고 하고 더 나아가서는 법의 권위를 불신하거나 해체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라즈에 따르면 이는 법의 객관적 권위와 실천적 기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법학 이론과 규칙은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윤리적·문화적·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수용성(social acceptability)이 매우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페미니즘은 정의를 외치지만, 때론 정의 자체를 자기편으로만 재단하려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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