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펠드의 '권리 분석'이 플랫폼 규제에 주는 시사점
우리가 일상에서 매우 불쾌함을 느끼게 되거나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면, 나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생각할 때이다. 보통 권리를 침해받는 사람은 권리의 동전의 양면이 되는 상대방의 '의무' 위반을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권리 행사가 상대방이 의무와는 전혀 관계없거나 반대로 상대방의 '갑질'(나름의 권리행사)에 대하여 나는 대응할 권리가 없거나, 오히려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렇듯 우리는 '권리'에 대하여 '의무'에 상응하는 말로 그냥 관념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권리'의 의미가 항상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체계적으로 개념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임을 느낄 수 있다.
웨슬리 호펠드(Wesley N. Hohfeld, 1879-1918)는 이러한 '권리'라는 말의 정체를 해부한 법철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X는 R을 할 권리가 있다'는 명제를 해명하려고 시도한 미국의 법학자이다. 그는 '권리'(right)의 근본적인 법 개념을 구분하고 그 개념들 간의 관계와 체계를 정밀하게 분석하였다.
그는 권리의 개념을 네 가지 의미로 구분하였다. 첫째, Y에게 X가 R을 하도록 허용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X는 Y에게 '청구권'(claim)을 갖게 되는 경우다. 그는 이 청구권을 단순한 '권리'(right)로 부른다. 둘째, X는 무엇인가를 하거나 하지 않을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서, Y는 X에게 아무런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경우다. 그는 X의 권리를 '특권'(privilege)이라고 구분한다. 셋째, X는 청구권이나 특권이 있든 없든 간에 법적 권리와 의무를 변경하는 법률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이를 X의 '권한'(power)이라고 부른다. 넷째, 다른 사람인 상대방(Y)의 권한에 의해 X의 법적지위가 변경될 수 없는 경우, 이를 '면책'(immunity)이라고 한다.
호필드는 이 네 가지 개념에 대해 각각 반대의 개념과, X의 상대방인 Y의 입장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짝을 이루는 상응(correlatives) 관계를 가진 개념을 제시한다.
[반대 개념]
권리(right) - 무권리(no-right)
특권(privilege) - 의무(duty)
권한(power) - 무권한(disability)
면책(immunity) - 책임(liability)
[상응 개념]
권리(right) - 의무(duty)
특권(privilege) - 무권리(no-right)
권한(power) - 책임(liability)
면책(immunity) - 무권한(disability)
호펠드는 '권리'의 개념을 나 혼자 갖는 추상적인 '권한'(power)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방 누군가와 연결된 상응 개념이라고 하면서, 이에 관한 예를 든다. 가령, Y가 X의 토지에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권리를 X가 Y에 대해 가지고 있다면, 이에 상응하여 Y는 그 토지에 접근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진다. 즉, 권리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엄격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반면, '특권'은 개념상으로는 '의무'와 반대되는 것이지만, X 자신이 해당 토지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Y가 자신의 토지에 접근을 할 수 없다는 '무권리'(no-right)와 상응 관계에 있다. 즉, X가 어떤 자유(특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과 마찬가지로, X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상응되는 개념은 상대방인 Y가 갖는 '책임'이며, X가 '면제'된다는 것의 상응 개념은 Y사 법적관계를 변경할 수 없게 되는 '불능'과 짝을 이룬다.
Raymond Wacks 교수는 호펠드의 분석을 한계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꽤 영향력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Wacks 교수는 호펠드의 네 가지 권리는 모두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권리이지만, 내가 어떤 의무를 부담하고 있을 경우에 반드시 상대방에 상응하는 권리를 가진다거나, 내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상대방이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이에 대한 예로서, 형법은 특정 의무를 부과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권리를 누군가가 가지는 것은 아니고, 교사는 학생들에게 특정 의무를 지지만 이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며, 유아나 동물에 대한 의무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이로써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든다.
이를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적용해 보면, 대형 플랫폼은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보다는 '특권, 권한, 면책'과 같은 특수한 권리를 이용해 디지털 시장의 '게임'(game)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즉, 자신의 '특권'을 통해 소비자와 이용사업자를 '무권리' 상태로 두거나, '권한'을 남용하여 소비자와 이용사업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면책'을 통해 상대를 '무권한' 상태에 두게 된다면, 권리와 의무의 불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해 플랫폼 규제에서는 소비자나 이용사업자가 플랫폼에 대하여 공정한 거래 조건을 요구할 '권리'를 명확하게 갖도록 하고, 이에 상응하는 플랫폼 사업자의 '의무'를 규정하는 방식을 통해 힘의 균형을 맞추고, 플랫폼의 '특권, 권한, 면책'의 남용은 금지되는 것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호펠드의 '권리 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플랫폼 규제는 단순히 거래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대응적 권리구조를 고려하여 정교하게 설계해 나가야 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