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쓴다
뇌과학자들이 말하는 우뇌와 좌뇌,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이드(id)와 슈퍼에고(superego), 종교에서의 악마와 천사, 철학에서의 에로스(eros)와 로고스(logos), 이상과 현실...
꼭 이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힐 때면, 내 안에 분명히 둘 이상의 내가 있다는 확신이 든다.
특정 정보나 경험이 저장되는 것을 취사선택하거나, 관념이나 추억으로 저장되는 형상과 형태를 결정하거나, 이를 꺼내 수많은 판단과 결단을 내릴 때, 내 안에서는 흔하게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시간과 여유가 없다. 빠른 판단과 결정, 반응과 선택이 필요하며 요구되거나 혹은 강요되므로, 충분한 숙고 없이 직관적으로, 그저 감각적으로 반응하고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미 지난 일에 대하여 종종 곱씹어 후회하고 회한하게 되는데,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다는 '과거운명론'에 의지하여 자신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를 합리화하고 객관화하여 나 자신을 구출하고 보호하게 된다. 이 과정에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이 내 안의 자신들과의 솔직하고도 진솔한 대화이다. 이 대화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무한 반복 형태로 관념에서 이루어지게 되지만,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보단, 일기를 쓴다. 그나마 추상화된 문자의 힘을 빌어 좌뇌가 우뇌에게, 슈퍼에고가 에고에게, 천사가 악마에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 위로하되 미래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독이고, 우뇌는 좌뇌에게, 이드는 에고에게, 악마는 천사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논쟁을 벌인다.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논리적이고 차분한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으므로 대개는 이 과정에서 갈등이 봉합되고 어느 정도 해소되어 '일시적으로' 평정심이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넘쳐나는 정보와 외형적으로 피상적으로는 초연결 세계에 살고 있지만, 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사일로(silo)와 같이 서로 무심하게 담을 쌓고 고립되어 살아간다. 회복탄력성이 떨어져서 상처받을 용기가 없거나, 항상 멋진 모습과 완벽하고 행복한 모습만 남에게 보이고 싶거나, 허물이 드러나면 비웃음거리가 되거나 차별받을 수 있다는 생각, 그와 관련된 과도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 분위기, 돈이라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가늠할 수도 없는 매우 얽히고설킨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 등의 문제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기'라는 숙취해소제를 믿고 이 평정심이 또 다른 권태를 불러오기 전에...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