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권 전쟁의 서막

새로운 상법이 던진 시한폭탄

by 날개

회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기로는 회사는 돈 버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는데, 회사의 집행권한을 위임받은 이사들이 누구를 위해, 즉 누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인가를 묻는다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왜냐하면 회사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인데, 예컨대, 주주, 근로자, 임원(이사, 대표이사, 감사 등), 고객, 채권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일반대중 등등,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는 언제나 일치할 수 없고 빈번히 갈등하고 충돌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국 리즈대학교 로스쿨 Andrew Keay 교수의 '계몽된 주주가치'(the Enlightened Shareholder Value)에 관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회사의 목적을 규명하는 이슈는, 회사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에서는 아주 오랜 세기에 걸쳐 지속적인 논쟁거리였다. 회사의 목적 논란에 관하여는 양대 이론이 있는데, 첫째는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가장 우선으로 하는 주주가치 원칙과, 주주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그 기준으로 하는 이해관계자 원칙이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주로 채택된 주주가치 원칙에서, 회사는 어떤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보다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회사의 목적은, '배당, 생산성, 효율성'을 통하여 회사의 시장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반면, 이해관계자 원칙은 유럽 대륙지역(특히, 독일)에서 주로 채택되었는데, 이 원칙에서 회사의 목적은, 이해당사자로 식별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데 있다. 즉, 이사는 주주뿐만 아니라 회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다수의 이해관계자의 이익에도 기여해야 한다.

두 원칙은 각자의 회사법적인 논리와 장단점을 가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오다가, 영미의 주주가치 원칙이 대륙의 이해관계자 원칙으로 이동하는 트렌드가 생겼다. 처음으로 이해관계자 원칙을 법률에 도입한 것은 198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였는데, 단기이익에만 매몰된 주주가치 원칙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법에서는 이사들이 직무를 수행할 때, 근로자, 공급자, 고객, 채권자 및 회사가 운영되는 지역사회와 같은 주주 이외의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지만, 의무적인 규정은 아니었다. 그밖에 미국 코네티컷주, 애리조나주, 아이다호주는 더 나아가 이사들에게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할 의무를 부과하기도 했다. 급기야 2006년 영국은 사실상 처음으로 기업의 목표를 법령에 포함시키기에 이르렀는데, 회사법 개정으로 다음과 같은 조항을 추가하였다(제172조 제1항).

(1) 회사의 이사는 신의성실로써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성공을 도모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며, 이를 수행할 시에는 다음 각 호를 고려해야 한다.

(a) 장기적인 어떤 의사결정의 가능한 결과

(b) 회사 근로자의 이익

(c) 공급업체, 고객 및 기타 업체와의 사업관계 발전 필요성

(d) 회사 운영이 지역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

(e) 높은 수준의 사업수행에 대한 평판을 유지하는 회사의 전망

(f) 회사 구성원 간에 공정하게 행동할 필요성

위 조항으로 인해 주주가치 + 이해관계자의 가치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주주가치가 '계몽된' 것일까? 그런데, 언뜻 보기에 위 조항은 영국이 주주가치 원칙에서 상당히 멀어지고 이해관계자 원칙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자세히 들어다 보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사의 특정행위가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더라도 법해석상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 가치는 이후 여러 근거로 비판을 받아왔는데,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상충되는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지고,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적절히 고려하는 데 있어 이사들의 불이행을 강제할 방법과 절차가 없는 것 등이다. 즉, 이해관계자는 이사들에 의해 자신의 이익이 고려되지 않았고 자신의 이익을 고려해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에 빠진다.

ESG 열풍으로 기업의 거버넌스에도 관심이 많아지면서, 주주가치에서 더 계몽된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주주가치 원칙을 고수하는 영미권의 입장은 상당히 강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불완전한 이해관계자의 '목록'은 이사들에게 유용한 목적을 거의 제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다양한 이익의 저울질, 우선순위 및 조정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법률에서 특정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게 제기된다. 또한, 이사들이 업무를 수행할 목적을 명확히 하기보다는 오히려 모호하게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위험이 있는데, 이사들이 다른 당사자들의 권리를 크게 향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이해관계자 뒤로 숨어버리면서, 주주들에 대한 책임만 경감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회사법의 역사가 긴 서구권에서의 이런 논의를 보다가, 우리나라로 눈을 돌리게 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회사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기존 회사 외에 주주를 포함하여 확대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7월 22일 자로 공포된 개정 상법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등)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

이사의 충실의무조항이 신설된 것은 IMF 금융위기 직후인데, 전범인 영미법에서보다 더 포괄적인 신인의무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입법자의 취지였다. 이에 더하여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추가한 것은 그렇다 치고, 회사-주주 간 이해관계 충돌, 주주 간 이해관계 충돌 시에는 어떻게 할지, 총주주(전체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 상당히 많은 논쟁과 소송의 빌미가 되겠구나, 기업 지배구조에 관한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구나, 기업들과 주주들은 로펌을 많이 찾게 되겠구나 하는 등의 잡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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