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다가, 저랬다가

by 날개

인간은 실로 '생각하는 갈대'와 같다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의 은유처럼, 우리는 사유의 능력을 가졌음에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끊임없이 갈팡질팡한다. 이 흔들림의 근원은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욕망의 비극적 충돌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나머지 모든 가능성을 포기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다 갖고 싶고,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까지 동시에 얻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욕심의 총합이 선택의 순간에 닥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충돌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격렬한 저항에 휩싸인다.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인간의 본성은, 합리적인 판단 대신 '미련'이라는 족쇄를 스스로 채우게 한다.


우리가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그 결정이 가져올 미래의 유익보다 버려야 하는 과거의 가능성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결국 죽음이라는 하나의 종착지에서 만날 뿐인데, 왜 이토록 중간의 경로에 집착하고 미련을 갖는지에 대한 물음은, 우리가 삶의 목적을 경로 자체의 의미에서 찾는 존재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길 하나하나에 자아의 파편을 투영하고, 그 선택이 만들어낼 잠재적인 '나'의 모습에 이미 감정적 투영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 단순히 기회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심었던 또 다른 나의 씨앗을 제거하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이 미련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애착이며, 포기할 수 없는 자기 존재에 대한 욕망의 '그림자'이다.


이러한 정념(情念)이 영혼과 몸과 마음을 사로잡을 때, 우리는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고통스러운 갈등이야말로 인간이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역설이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가 강조한 바와 같이, 인간은 스스로를 규정할 어떤 본질도 없이 세상에 던져졌기에, 모든 선택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무거운 자유를 안고 있다. 우리가 갈팡질팡하며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려 할 때조차, 그것은 '결정하지 않는 상태를 선택하는 것'이며, 이 무결정 자체가 가장 큰 불안과 미련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정념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곧 우리가 이 삶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이 미련을 완전히 끊어내는 것은 곧 죽은 자의 평온함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미련과 집착을 극복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배울 때 비로소 평안이 찾아온다. 선택의 길, 그 끝이 모두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가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동안 무엇을 느끼고 경험했는 지다. 포기한 가능성에 대한 미련은 '선택받지 못한 삶'에 대한 환상일 뿐이며, 현재 선택한 길 위에서 만나는 순간과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소명이다.


결국,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간의 본질을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완벽한 선택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불완전한 선택과 그에 따른 상실의 고통까지도 삶의 온전한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련이라는 정념은 우리를 멈추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도록 끊임없이 자극하는 역동적인 힘이기도 하다. 따라서, 갈팡질팡하는 순간에,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열정과 고뇌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내야 한다. 삶은 정지된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포기하고 선택하며 나아가는 이 흔들리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고통스러운 미련을 아름다운 삶의 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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