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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Sep 09. 2024

마른 꽃 향기

(말린 작약)

  

                                                                    

  해마다 오월과 유월 사이에 꼭 주문하는 꽃이 작약이다. 작약은 종류가 많고 저마다 특색이 있지만 연분홍색 꽃잎을 가진 ‘사라’를 좋아한다. 절화를 들이다가 우연히 작약을 만났고 그 향기가 마음에 남아 매해 사게 되었다.

  꽃이 오면 열탕 처리하고 물 올림을 하고 나면 시들어 있던 꽃잎이 조금씩 열린다. 탁구공만 하던 봉오리가 며칠 지나면 두 주먹을 합친 것만큼 크고 탐스럽게 피어난다. 거실이나 현관에 두고 슬쩍슬쩍 다가가서 향을 즐긴다.

  꽃을 오래 보기 위해 매일 갈아주는 물에 얼음 두어 조각 넣어주고 세균 방지를 위해 락스 한 방울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 지나면 시들해진다.

  꽃이 시드는 게 안타까워 활짝 폈을 때 말려보았다. 바람길 있는 그늘에 두고 열흘 정도 말리면서 서너 번 모양을 잡아주었더니 꽃잎은 자홍색으로 변하고 향기는 짙어졌다. 나는 이런 마른 작약(사라)의 색과 향에 마음이 끌렸다. 마른 꽃은, 꽃봉오리를 열어 설렘을 주고 은은한 향기를 내는 생화와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겨울이 올 때까지 함께해도 잘 변하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작약을 들이고 물 올림 하던 날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 그의 명복을 비는 카톡 조문이 단톡방 화면을 넘겼다. “잘생기고 똑똑한 친구가 이렇게 가서 너무 황망하다.”라는 글도 올라왔다. 그랬다. 키 크고 잘생기고 공부도 잘해서 늘 반장을 하던 친구였다. 그가 몇 년 전부터 단톡방에 백두대간을 종횡한 사진을 올리고 초등동기생이 최고라며 애틋한 감정을 나타냈을 때 이미 암세포와 싸우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동기생 대표가 되어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가서 그를 배웅하고 왔다. 꽃봉오리 시절 한 꽃밭에서 자라서는 저마다의 향기 품고 살았는데…. 아직 떨어지긴 아까운 꽃이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의 향을 오래 기억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문상 다녀온 다음 날 꽃병에서 작약이 활짝 폈다. 두 송이를 골라서 그늘진 바람길에 거꾸로 매달았다. 잘 마를 것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보다 두 살 적은 그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우리는 같은 마을에 살아서 서로 알고 있다. 며칠 전 제 오빠 가는 길에 와줘서 고맙다고 한 전화였다. 어릴 때처럼 다정다감한 그녀는 우리가 매일 만났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언니야, 나는 언니 아버지가 가끔 생각난다.”

  내 친구들 사이에 호랑이라고 소문난 아버지에 대해 이 아이는 어떤 기억을 하고 있을지 살짝 긴장되었다.

  “어느 해 마을 잔치에서 언니 아버지가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노래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마을 잔치에서 노래를 불렀다니! 술을 한잔 하면 흥얼대던 기억은 나지만 딱히 어떤 노래를 들어본 기억은 없다.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언니 아버지가 ‘너영나영’을 어찌나 잘 부르시던지. 아직도 생생하다.”

  무슨 노래지? 민요인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제주 방언에서 유래한 사랑 민요로 ‘너영나영’은 너하고 나하고 라는 뜻이라고 한다. 노랫말이 해학적이고 아름답다.     


  너영 나영 두리둥실 놀구요

  낮에 낮이나 밤에 밤이나 참사랑이로구나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구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 그리워 운다

  (…)

  호박은 늙으면 맛이나 좋구요

  사람은 늙으면 한 세상이로구나

  (…)  

-방언에서 유래한 것이라 노랫말이 조금씩 달랐다.-     

  노랫말을 읽어보니 그제야 알 듯도 하다. 어떤 기억은 필요하지 않을 땐 이렇게 깡그리 잊히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다. 얼른 노래도 들어봤다.

  아득히 먼 곳에서 젊은 아버지가 무명 바지와 적삼을 입고 두 팔 벌려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너영나영’가락이 아버지의 웃음 가득한 얼굴과 춤사위에 섞여 내게로 왔다. 어쩜 나도 노래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텐데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볕에 그을린 검붉은 얼굴로 지게를 지고 다니던 모습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지게 위의 짐은 청솔가지 섞인 나뭇짐일 때도 있었고, 당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볏단이 쌓였을 때도 있었다. 지게 위에 바지게를 얹어 붉은 감이나 채소를 옮기기도 했다. 어린 나도 가끔 아버지 지게 위에 올라타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들로 따라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버지도 한때는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겠지.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을 건사하고 살아내느라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사랑가는 마을 잔치에서나 불러봤던 걸까? 아버지가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니 낯설다. 내겐 일하는 아버지가 평생 울로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이생을 마치고 가실 때 사랑 노래와 어깨춤을 품고 갔으리라. 우리의 아버지가 되느라 가슴에서 꺼내지 못한 흥을, 그곳에선 맘껏 향유하시길 바라본다.


  주말부터 말리던 작약의 향기가 짙어졌다. 고향 후배의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아버지 향기가 마른 작약 향처럼 진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스며들었다.

  내 휴대전화가 ‘너영나영’을 무한 반복한다.


작약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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