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오설록 에프터눈 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가격도 만만찮고 혼자서 가기 뭐 해서 쉽게 갈 수가 없었다. 에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오후의 차를 마시는 사교적 모임이라고 다음어학 사전에 나와있다. 가장 적절한 표현 같다.
“엄마, 내일 오설록 1979 갈까요?”
언젠가 내가 한 말을 무심히 듣지 않고 새겨둔 딸이 다음 날 쉬는 날이라면서 카톡을 보냈다. 할 일이 있어도 미루고 가야지. 내심 반가워서 갈 수 있다고 하고는 일정 조정을 하고 설렘으로 기다렸다.
예약한 시간에 도착해 보니 세련되고 도회적인 공간에 은은한 차향이 났다. 직원의 안내로 자리에 앉자 차를 시향하고 선택할 수 있게 상자 속에 담긴 아홉 가지 대표 차를 가져왔다. 더 많은 차 종류가 메뉴판에 있었지만, 딸과 나는 상자 속에 담긴 차를 하나하나 맡아보고 딸은 ‘세작’을 나는 ‘제주 화산암 차’를 선택했다.
시향할수있는 9가지 대표 차(뚜겅을 열고 차향을 맡아본다.)
타원형 트레이에 찻잎이 담긴 주전자와 우려낸 찻물, 찻잔이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세작은 이미 알고 있는 차 맛이었고 화산암 차는 녹차를 좀 더 발효시켜 만든 차로 홍차보단 가볍고 고소한 맛이 났다. 차는 다 마시고 나면 뜨거운 물을 더 추가해서 마실 수 있다고 했다.
선택한 차를 이렇게 준다
에프터눈티 본 메뉴가 나오기 전에 귤꽃 향을 품은 우잣담과 제주 청귤로 만든 티 칵테일(논 알코올)이 나왔다. 달달 상큼하며 시원하여 입맛을 돋우었다. 한 잔 더 먹고 싶은 맛이다.
다음으로 고메 더덕 버터와 제철 과일 쨈을 곁들인 카카오 현무암 스콘이 나왔다. 에프터눈티에 빠질 수 없는 스콘이라지만 나는 소스로 나온 더덕 버터와 과일 쨈의 풍미와 향긋함이 좋았다.
왼쪽 하얀 컵의 오렌지색이 칵테일, 사각상자에 담긴 현무암 스콘, 스콘 아래 청자빛 종지에 담긴 것은 스콘을 더 맛있게 하는 더덕 버터와 과일잼
드디어 긴 사각 2단 트레이에 기대하던 에프터눈티가 나왔다. 트레이 1층에는 푸른 독세기콩 토마토 카나페. 딱새우 샐러드 타틀렛, 뿔소라와 아브루가 카나페, 흑돼지 잠봉 고사리 상웨떡 샌드위치가 올려져 있다. 나에겐 이름이 어려웠지만 모든 재료가 제주에서 온 우리 재료들이라고 한다. 모양도 예쁘지만 크기도 앙증맞아서 손가락으로 집어 먹으면 된다. 최상의 맛을 내는 신선한 재료들이 입안에서 머물 사이도 없이 사르르 사라졌다. 너무 달거나 짜거나 기름지지 않고 딱 적당한 맛이다. 1층 트레이에 있는 것 중 제주 해녀가 직접 잡았다는 자연산 뿔소라와 양송이가 합해진 아부루가 카나페가 제일 좋았다. 양송이의 향과 소라의 식감이 살아 있고 특유의 감칠맛이 혀를 호강시켰다. 딸은 딱세우 샐러드 타틀렛을 좋아했다.
트레이 1층 오른쪽 부터 푸른 독세기콩 토마토 카나페. 딱새우 샐러드 타틀렛, 뿔소라와 아브루가 카나페, 흑돼지 잠봉 고사리 상웨떡 샌드위치
그 중 제일 맛 있었던 아부루가 카나페
1층 트레이의 음식을 다 먹고 현무암 스콘(초코스콘)을 소스를 발라가며 먹었다. 그때 직원이 와서 따뜻한 물을 찻잎이 들어 있는 주전자에 새로 부어주었다. 차 맛이 떫지 않게 2분 정도 우린 다음 다시 차를 즐겼다.
1층 음식들을 너무 맛있게 다 먹어서 더 못 먹을 것 같았는데, 하나씩 하나씩 자꾸 손이 갔다. 2층에 있는 디저트들은 크기가 좀 더 컸다. 나에게는 조금 단 듯해서 남길 것 같았는데 결국 맛에 끌려 다 먹었다. 나는 트레이 2층에 있던 디저트 중에는 모양도 색도 맛도 한라봉 무스타르트가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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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위기에서 딸과 조곤조곤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본래 예쁜(지극히 주관적임) 딸이 살림과 회사 일, 손주에서 벗어나 온전한 내 딸로 함께한 오늘은 더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