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스텐 냄비가 가스 불 위에서 다글다글 오랫동안 끓고 있다. 그러다가 입 안 가득 거품을 물고 부르르 소리를 내지르면서 비눗물을 밖으로 뱉어낸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지. 삼십 년 가까이 장롱 속에서 세월의 때를 담아왔으니…….’
삶아내고 헹구고 또 삶아내고, 소다 물에도 헹구어보고 식초 물에도 헹구어본다. 그래도 세제가 남았을까 싶어 밤새 맑은 물에 담가놓았다.
다음날 눈뜨자마자 제일 먼저 어제 종일 삶고 헹구기를 반복해서 대야에 담아놓은 작고 앙증맞은 옷을 살며시 짜서 햇빛 쏟아져 들어오는 베란다 건조대에 널어놓고 수시로 가서 만져보았다.
딸은 한 여름밤에 둘째로 태어났다. 나는 간호사인 동생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남편은 잘 소독한 가위로 아기의 배꼽과 나를 이어주던 탯줄을 조심스레 자르고 동생은 따뜻한 물로 아기를 닦아서 싸개로 잘 싸 나에게 보여주었다.
“언니, 고생했어. 예쁜 공주야.”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눈도 채 못 뜬 빨간 핏덩이를 보니 너무 작아서 한없이 애처롭기도 하고, 약간의 서운함이 함께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눈가를 타고 흘렀다. 첫째 딸을 낳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무더운 날 남편과 동생이 번갈아가면서 연탄불 앞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미역국을 끓여내랴 아기 목욕물 데우랴 허둥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태어날 때 둘째의 그 연약하던 모습이 가슴에 담겨있어 늘 마음 졸이면서 키웠다.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달리 딸은 건강하고 슬기롭고 예쁘게 자랐다.
드디어 대학원을 졸업한 둘째는 어느 날 발그레 상기된 뺨에 딸 특유의 초승달 같은 눈웃음으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
“축하한다. 우리 딸!”
나는 너무 기뻐서 둘째를 꼭 껴안아주었다. 이제 함께 행복하게 지낼 일만 남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착각 속에 셈을 하고 있었는지, ‘자식은 품 안에 자식이지’ 하던 말을 실감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 나 결혼해도 돼? 오빠가 결혼하자는데…….”
벌써 결혼을? 이제 취직하고 두 달밖에 안 되었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쪽이 찢겨 나가면서 찬바람이 휭 하고 지나갔다.
딸이 결혼을 하고 신혼살림을 하는 동안 어쩜 하는 짓마다 하는 말마다 그렇게 섭섭하고 야속할 수가 없었다. 착하고 어여쁘던 내 딸이 낯설기만 했다. 삼십 년 가까이 온전한 내 것이라 믿었던 자식이 거짓말처럼 타인이 된 것 같은 배신감, 그 배신감에 가슴이 미어지듯 아프고 화가 났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웠던가?
그러나 그 서운하던 마음도 딸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다 녹아내렸다. 이제 딸도 엄마가 되는구나.
매일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와 딸을 생각하면서 뭘 해줄까? 보이는 것마다 아가와 연결되지 않는 게 없었다.
보물지도 마냥 꽁꽁 숨겨둔 육아 일기를 찾아내어 읽고 또 읽어보며 맞아! 이땐 이랬었지 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옷장 깊숙이 두었던 누렇고 꾀죄죄한 배냇저고리를 찾아냈다. 딸의 것이다.
배냇저고리는 아기가 태어나면서 처음 입는 옷이다. 옛사람들은 배냇저고리는 재수가 있다 하여 시험이나 송사에 몸에 지니게도 하고 배냇저고리를 집안의 장수한 어른이나 어머니의 옷으로 만들어 입히면 수명이 길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도 딸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옷을 장롱 깊숙이 간직했던 것 같다.
작고 앙증맞으며 아직도 젖내가 폴폴 나는 것 같은 누런 배내옷을 보는 순간 이 소중한 것을 딸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얼마 후 딸은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딸은 백화점에서 사둔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배내옷과 햇살내음 가득 담긴 저 어릴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함께 바구니에 담아놓고 어린 아기를 씻기고 난 후 번갈아가며 그 옷들을 갈아입힌다.
“아가야, 이 옷은 엄마가 너 만할 때 처음 입었던 옷이란다.”
딸은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지으면서 소곤거렸다.
오래전 썼던 글로 내 수필집 <가죽벨트가 있던 이발소>에 상재 되어있는 글을 꺼내어본다.
그 아기가 12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