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섬마을에 홀로 가보다
나에게 역마살이 발동한 그날 아버지 파제사罷祭祀였다.
남동생 집이 있는 진주(개양) 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대신 통영행 버스를 탔다. 한 시간 정도 달려서 통영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였다.
여객선 터미널로 가서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연화도 배편을 알아두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어 꽤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더니 1인분은 팔지 않는다고 했다. 혼자서는 맛있는 것 먹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며 작은 식당에서 해물탕을 먹었다. 의외로 해물이 가득 들어 있어서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혼자서 호텔이나 모텔 같은 곳을 가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찜질방에서 하룻밤 지내기로 했다. 찜질방은 제법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나처럼 배낭을 머리맡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여행객들인가 보다 하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내가 혼자라서 그런지 뭇시선이 따갑다.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배낭을 끌어안고 뒤척이다가 이른 아침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그곳에서 충무김밥 한 줄과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배에 올랐다.
연화도를 거쳐 욕지도로 가는 카페리호는 신선한 아침 공기와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가르며 흰 물결을 일으켰다. 뱃멀미를 핑계 삼아 뱃전에 나와 바다를 눈에 담는 동안 갈매기들도 부서지는 물살 위에서 푸드덕 날갯짓하며 뱃전을 맴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배에서 만난 입담 좋은 아저씨의 욕지도(섬) 자랑을 뒷전으로 하고 연화도에 내렸다.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연화도라고 부른다는 이 섬은 전설의 섬이고 낭만의 섬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 억불 정책에 남해로 피신하여 보리암에서 기도하던 사명대사를 여동생(보운)과 아내(보월) 사랑하던(보련)이 찾아와 만나게 된다. 이것을 불연佛緣이라 생각한 사명대사는 함께 연화도로 와서 토굴 속에서 수도 정진하고 득도하였다고 한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할 것을 예측하고 해상 지리 법 거북선 건조법 등을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연화도 전설) 지금도 연화도에는 세 여인의 법명을 딴 보운의 길, 보월의 길, 보련의 길이 있다.
나는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 연화사에 잠깐 들러 삼배三拜하고 차도와 등산로가 함께 이어진 능선 길을 걸으면서 연화도의 쪽빛 바다를 가슴에 담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이 길은 얕은 능선이었지만 길 위에서 양쪽으로 바다를 다 바라볼 수 있었다. 언덕배기 아래로 방목한 염소들이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잠시 쉼터에서 쉬었다가 보련의 길을 따라 걸었다. 보련의 길은 차가 다닐 수 없는 작은 숲길이 었다. 앙증스러운 야생화들과 눈에 익은 하얀 산국山菊이 ‘혼자라도 괜찮아!’하고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아들딸 바위와 망부석을 지나 연화도의 명물 출렁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끝으로 통영 팔경의 하나인 용머리 바위가 바다 위에서 그 멋스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연화도 구석구석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세 시간 정도 걸린 산책 같은 산행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다시 통영으로 나왔다.
통영 서호시장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가오치항으로 향했다. 이곳에 사량도로 가는 여객선이 있다. 배 이름도 사량호다. 신분을 기록하고 배를 타니 40분 정도 바다를 가로지른 끝에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량도,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맛하고는 다르게 사량도란 이름은 이 섬의 상도와 하도를 흐르는 물길이 긴 뱀처럼 구불구불하다 하여 사량 해협이라고 했던 옛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는 상도에서 내렸다. 등산코스가 괜찮은 이곳 산을 오를 생각이었다.
섬 안의 교통편은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마을버스 한 대와 영업을 하는 승합차 한 대가 있었다.
“혼자 오셨어요?”
승합차 기사가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혼자는 위험하고 등산로 입구까지는 차를 타고 가야 산 타기가 쉽단다. 차비가 꽤 비싸다. 기사는 친절하게도 잠시 기다려 보라더니 함께 갈 사람을 찾는다. 마침, 등산로 근처 마을까지 가는 손님이 있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차비를 받지 않고 명함 한 장을 건네준다. 가는 길에 태워준 거라 받지 않겠단다. 그 명함 전화번호에는 민박집과 승합차가 나란히 있었다.
상도 전체 산행을 하기 엔 출발 시각이 늦기도 하고 혼자라 겁도 약간 났다. 그래서 중간쯤 되는 옥동에서 시작해서 성자암을 지나서 지리산(사량도 지리산) 쪽은 가지 않고 월암봉 꼭대기까지 올랐다. 산꼭대기 능선을 타고 양쪽 바다를 보면서 산행했다. 가마봉을 지나 옥녀봉에 다다르니 오른쪽엔 사량 해협이 왼쪽엔 대항해수욕장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반짝거리며 햇살에 빛나는 바다는 이탈리아 카프리섬에서 본 가슴 설레던 물빛 못지않게 아름다운 우리 바다의 쪽빛이었다.
혼자서 산행하는 동안, 출렁출렁 흔들리던 출렁다리, 온통 칼날 같은 돌로 이루어진 잡을 곳 하나 없던 바위산, 직각으로 용접한 수직 철 계단 등은 내 가슴과 다리를 후들후들 떨리게 했다. 하지만 제일 무서웠던 건 주중이라 등산객이 거의 없는 산에서 만나는 낯선 남자였다.
섬에서 하룻밤 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의 밤바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아까 받은 명함을 보고 전화를 했다.
“아저씨, 아까 그 아줌만데요. 방 있어요? 구경할만한 곳도 알려주세요.”
아저씨는 방이 있다면서 이제 어스름이 지고 있으니, 마을버스로 섬 전체를 한번 둘러보란다.
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면서 사량도의 저녁 풍경을 감상했다. 버스 기사한테 갯벌 체험 행사가 있냐고 물어보니 지금은 없지만, 민박집 아저씨가 갈치낚시를 잘한다고 한다. 갈치낚시라! 멋진 밤이 될 것 같았다.
민박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저씨는 가족 없이 혼자 산다. 갑자기 두려웠다. 저녁 식사 후 아저씨는 갈치낚시를 가자며 서둘렀다. 나는 산행을 해서 너무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문을 꽁꽁 잠그고 바깥 동정을 살피며 오늘도 숙소를 잘못 선택했다며 후회했다.
친구라도 함께 왔으면 용기를 내서 갈치낚시를 체험해 볼 수 있었는데 좀 아쉽기도 했다. 섬에서 느껴보고 싶은 밤바다와 섬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는 낭만은 사라졌다. 민박집주인이 이혼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저씨는 내게 아침을 챙겨주고 승합차로 여객 터미널까지 태워주었다. 그리고 담에 또 사량도에 놀러 오라고 했다.
나는 저 친절하고 고마운 아저씨가 혼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잔뜩 경계하고 두려움을 느낀 데 대해 살짝 미안했다.
사량호를 타고 다시 통영으로 나왔다.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동화 속 아이처럼 천사의 날개도 달아보았다.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라서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통영 시내 관광도 즐겼다. 마지막으로 서호전통시장을 기웃거리며 그곳의 특산물을 구경하고 통영의 명물 꿀빵 한 상자를 사서 밤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역마살은 일단정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