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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는 나이를 모른다

by 박정옥




열어놓은 창으로 장미꽃 향기를 실은 초하初夏의 바람이 들어왔다. 햇살 또한 평화롭기 그지없이 거실 깊숙이 들어와 나의 공간을 엿보고 간다. 휴일이라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남편은 이발소에 가고 난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와 빨래를 하다 보니 나른한 한낮이 지나있었다. 그때 남편이 검은 비닐봉지를 덜렁덜렁 흔들면서 들어온다. 좀처럼 혼자 나가서 뭔가를 들고 온 일이 없는 남편이지만 저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지금 하자.”

“지금?”

야구 중계를 보고 싶은 남편은 텔레비전에 눈을 두고 마땅찮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두워지면 잘 안 보인다는 내 말에 겉옷을 벗고 내 앞에 앉아 머리를 약간 숙였다.

난 손을 깨끗이 씻고 간편한 옷차림을 한 후 비닐봉지에서 염색약을 꺼내서 골고루 잘 섞은 다음 솔빗에 묻혀서 정성스레 남편의 머리에 바르기 시작했다. 특히 눈에 잘 띄는 앞쪽 머리와 귀밑 부분에 더 많이 신경을 썼다. 남편의 머리는 지난번 염색할 때 보다 더 힘이 없고 약간 곱슬곱슬해져 있었다. 염색하느라 위에서 내려다보니 반백인 정수리가 훤하다 못해 휑하다. ‘이이 머리가 너무 많이 빠졌구나!’ 가족을 위해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힘들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직모直毛에다 유난히 머리도 검고 숱도 많은 남편이었다. 그때는 흰머리가 생기거나 숱이 적어질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우와! 멋지다. 남궁원보다 우리 남편이 훨씬 잘생겼다.”
염색약으로 붙여 올린 머리가 근사해 보이기도 하고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 기도 한번 살려주고 싶어 추켜세워 주었다. 남편도 씩 웃는다. 십여 분의 시간이 흐르고 염색이 끝났다. 이제 20분 정도 지나고 머리를 감으면 아마 남편은 훨씬 더 젊고 멋져 보이겠지.


이젠 내 차례다. 어쩌다 보니 우린 둘 다 머리가 빨리 세었다. 유전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40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흰머리를 처음엔 족집게로 뽑던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족집게가 그 양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그래도 처음엔 염색하지 않으려 버텨보았는데 갈수록 흰 머리카락은 늘어만 갔다. 나이 들어 생기는 잔주름과 더불어 더 늙어 보이기까지 하고 벌써 흰머리라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시작한 염색이었다.

남편 손에도 어느덧 비닐장갑이 끼워져 있고 염색약 묻은 솔빗이 들려있다. 좀 전에 떨었던 아부 덕분인지 아내의 흰머리가 안타까운지, 이 도령이 춘향이 태를 보듯이 “이리 보자, 저리 보자, 뒤돌아봐라, 앞이 더 많구나.” 하면서 갖은 정성으로 염색약을 발라준다. 키 차이가 크게 나는 덕분에 남편은 앉았다가 섰다가 무릎을 꿇기까지 한다. 아내 머리를 염색해 주느라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수십 년 동안 살면서 어찌 좋은 날만 있었겠는가?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절절히 사랑하기도 했었다. 가난해서 차비를 아끼려고 1시간 넘는 거리도 걸어서 다니고 시장에서 배춧잎을 주워서 된장국을 끓여야 했던 우리의 젊은 날이었다. 그 처절하던 시간도 추억이 되고, 이제는 마주 보고 흰머리 감싸주며 옛 이야기하는 친구 같은 사이로 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세월도 함께 남편으로 친구로 그리 살 수 있다면 난 결코 잘못된 삶을 사는 건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 어느 주례사의 이야기는 아주 늙어 흰머리가 많이 생길 때까지 오래오래 잘 사라는 뜻인데.

우리의 흰머리는 나이도 모르고 생겨난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마주 보며 염색을 해주겠지. 아주 먼 훗날까지.

염색이 필요 없을 땐 또 다른 무언가를 함께하면서 가슴속에 응어리진 미움이나 섭섭함은 다 버리고서 남은 인생길을 함께 산책하리라.



오래전 썼던 글이다.

바람과는 달리 남편은 이 세상 소풍 마치고 별나라에 먼저 갔다.

수필집 <가죽벨트가 있던 이발소>에 상재되어 있는 것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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