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였다. 달콤하고 황홀한 향이 갑작스레 코를 자극했다. 시스는 리마토를 쳐다보았다. 그 역시 후각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스는 팔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가 아니었다. 손과 발은 시스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욱!”
시스는 입을 가리고 토악질을 참았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냄새라는 감각이 시스를 치 떨리도록 불쾌한 기억 속으로 끌고 갔다. 달콤하지만 기분 나쁜 이 향기, 말리티아, 살아 있는 인형…….
리마토가 잔에 물을 따라 내밀었다.
“가호의 샘물이다. 이걸 마시면 진정이 될 게다.”
물을 몇 모금 삼키자 속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가호의 샘물은 오티움의 뒷산에 있는 약수였다. 먼 옛날 인간을 연민한 요정이 흘린 눈물이 샘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었다. 몸에 좋다고는 하지만 녹 냄새와 녹 맛이 나고 톡 쏘는 성질이 있어 학생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리마토를 비롯한 노 교수들이나 좋아하는 물이었다.
“여길 떠나 있는 동안 큰일을 겪었구나. 그것도 아주 나쁜 큰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느리게 젓는 리마토의 목소리에는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흑주술 가운데서도 가장 사악한 종류의 흑주술인 것 같은데. 그런 일을 당하고도 용케 살아 돌아왔구나.”
“별로 놀라지 않으신 것 같네요? 흑주술을 하는 마가나 마구스가 존재한다는 걸 이미 알고 계셨던 것처럼요.”
기운을 차린 시스가 말했다. 말리티아의 향기는 더 이상 맡아지지 않았다. 리마토는 네 말이 맞는다는 뜻으로 눈썹을 밀어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말해줄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흑주술에 걸렸었는지? 내키지 않는다면 억지로 말하라고 할 생각은 없다만. 모르긴 해도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테니.”
“말씀드리겠어요. 총장님을 믿으니까요. 제 사례가 그들을 파악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들을 막기 위해, 물리치기 위해 애써 주실 거죠? 제가 만난 마가는 정말이지 악 그 자체였어요. 그들은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해칠 거예요.”
“이전의 너는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지금의 너는 좀 변한 것 같구나. 나를 믿어 주는 건 고맙다만, 과연 나는 정말로 네가 믿어도 되는 사람일까?”
리마토가 해석하기 힘든 미소를 띠었다.
그가 알던 시스는 자신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인물이었다. 야박하거나 이기적이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타인의 삶에 무관심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다시 나타난 시스는 세상을 그리고 불특정의 타인들을 신경쓰고 염려하고 있다.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동안 봐 왔던 것을, 제 안목을 믿어 보는 수밖에요. 총장님께서 제 생각과 다른 분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다는 거죠. 총장님을 믿지만 어차피 조건은 걸 작정이었어요. 지금 저는 아주 절박하고, 총장님께선 절 도우실 수 있죠. 그래서 감히 제안하겠습니다. 제가 당한 흑주술에 대해 알려드리는 대신 오티움의 가장 오래된 유물을 보여주세요.”
듣고 있던 리마토가 주름진 이마를 치면서 허허허 웃었다.
“변하지 않은 면도 있었구나. 그랬지. 넌 대가 없이 뭔가를 넘겨주는 법이 없는 아이였지. 네 조건이 가장 오래된 유물을 보여주는 것이라……. 고심을 좀 해 봐야겠다. 유물을 지키는 건 오티움의 수장에게 주어지는 꽤나 신성한 의무란 말이지. 넌 안쪽 석실에 들어갈 자격 요건이 안 되는데, 그런 널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면……. 제 아무리 나 리마토 총장이라 해도 안쪽 석실 출입 시에는 반드시 유물 보존 위원회 소속의 교수 중 한 사람을 대동하거나 출입 기록부에 수기로 상세 내역을 남겨야 한다는 원칙을 어겨야 하니까 말이다.”
“결정하시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얘기를 하나 해 드릴까요?”
“어디, 들어나 보자꾸나.”
“가장 오래된 유물을 보여 주시면 제가 살아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시스가 왼팔의 소매를 걷어 위로 밀어 올렸다. 팔꿈치 위쪽에 검은 점이 있고 점에서 싹 모양의 선 하나가 팔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검붉은 색이 위로 갈수록 색이 연해지고 시작점에 가까운 쪽은 검은색이었다.
“제 심장이 있는 곳까지 이어져 있고 검은색 부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어요. 흑주술에 걸릴 때 마가에게 찔려 피가 났던 부위고요.”
“네 말은 검은색이 심장에 닿으면 네가……. 어쨌든 나는 처음 보는 표식이다만.”
어두워진 낯빛으로 리마토가 중얼거렸다.
“제 계산과 정확히 일치하는 속도로 자라고 있으니 이게 심장에 닿는 날이 제 마지막 날이 될 게 틀림없어요.”
그 표식이 정확히 누구에 의해 남게 된 것인지는 시스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흑주술을 부린 말리티아일 수도 있었고, 거의 죽을 뻔했던 자신을 구해준 파트로나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남은 게냐?”
“그건 밝히고 싶지 않아요.”
시스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이래저래 복잡한 마당에 남은 수명을 남들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좋다. 지하 수장고로 가자. 그런데 말이다. 안쪽 석실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무엇인지는 너 스스로 알아내야 한단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마토가 발걸음을 뗐다.
“그렇게 나오시면야 저로선 어쩔 수 없이 따라야죠.”
리마토를 황급히 따라가면서 시스가 툴툴거렸다.
“네가 조건을 건 데 대한 대갚음으로 골탕을 먹이자 하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란다. 실은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모른단다. 그 안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무엇인지를. 다들 열심히 연구하고 토론하고 있지만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지. 이런 모양 빠지는 얘기는 안 들은 것으로 해 다오.”
아닌 게 아니라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