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아름다운화장실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
『아름다운화장실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
당시 혁명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당사자로서 그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은 명예도 없고 훈장도 없는 사명과 헌신뿐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위하여 꼭 넘어야 할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리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많은 분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당시 2002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 회장으로 이 프로젝트를 승인하고 믿음으로 꿋꿋이 지원해 주셨던 고 이영덕 전 총리님, 아름다운 화장실포럼 위원으로 맹활약을 해주신 고 하동철 서울대 미대학장님과 고 장윤종 연대 건축과 교수님, 그리고 수원시의 화장실을 아름다운 화장실의 모델로 만들어 주었던 고 심재덕 시장님 등이다. 지금은 아쉽게도 작고하셨지만, 열정을 바쳐 추진한 아름다운 화장실운동 성공의 보람을 간직하고 가신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화장실 혁명』을 ‘2002 월드컵문화시민운동협의회’가 이끌었다면 이 운동의 실질적인 중심이 되었던 것은 협의회(이하 문민협)에서 구성한 각계의 전문가와 사회 저명인사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화장실 포럼』이었다.
화장실혁명의 전략과 방향에서부터 사회운동으로의 점화와 확산, 추진내용에 대한 심층적인 점검, 화장실과학-기술과 디자인은 물론 남녀 형평성과 사회발전적 함의, 그리고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大賞)' 제도의 운영과 전국 방방곡곡 화장실의 심사에 이르기까지 사명감과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았으면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일을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몸으로, 자신의 위상으로 이 무보수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전력투구해 주었다.
초대 포럼위원장을 지낸 김춘강(당시 대한어머니회 전국회장) 여사, 서울대 미대학장이던 빛의 화가 하동철 교수,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한 연세대 건축과의 장윤종 교수, 과학과 기술을 화장실 설비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한 대림대학교 기계과 전영상 교수, 독일에서 귀화한 방송인 이참(이한우로 개명, 전 관광공사 사장) 대표, 우리나라를 잘 아는 일본 여류작가 도다이쿠코 여사, 사업에 열정적으로 나서고 아름다운화장실 대상 수여식에선 사회를 도맡아 해 주었던 KBS 이지연 아나운서, 조선일보의 국제통이자 글로벌에티켓팀장을 맡고 있던 박승준 부장, 관광 분야의 전문가로서 뛰어난 식견과 혁신적 아이디어로 이름이 높던 이광희 한국관광연구원 개발연구실장, 그리고 이 혁명을 기획한 당사자로서 차질 없이 사업을 성공시켜야 할 미션을 짊어진 당시 협의회 운영국장 박연수(필자) 등이 위원으로 활약했다.
또한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 비판과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몸을 던져 사업을 추진해 준 많은 분들의 땀과 의지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먼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명구를 대한민국 화장실마다 심어 놓은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표혜령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운동 초기부터 참여하여 지금까지 변함없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름다운 화장실에 대한 집념과 진정한 시민운동의 실체와 효과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화장실의 효과를 가장 많은 국민에게 몸소 느끼게 함으로써 이 운동의 확산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해준 정숭렬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당시 주말마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불시에 방문하여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최단 시간 내에 우리가 추구하던 질 높고 아름다운 화장실로 바뀔 수 있도록 현장에서 뛰었다.
당시 수원시장이던 심재덕 시장은 아름다운 화장실이 무엇이라는 확실한 인식을 가진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월드컵 행사를 계기로 화장실의 변화를 통해서 수원시를 변화시키자는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아름다운 화장실 시책을 시정의 중심에 두고 많은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발굴하여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모델 역할을 해주었다.
이외에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김세옥 이사장, 한국관광공사의 이득렬 이사장 등도 깊은 이해를 가지고 맡은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었다. 물론 당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의 시장, 군수, 구청장들의 경쟁적 참여는 아름다운 화장실운동 성공의 핵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국에 아름다운 화장실 경쟁의 불을 붙인, 스폰서 하나 없는 『아름다운화장실 대상(大賞)』 제도 공동개최를 흔쾌히 수락하고 크게 지면을 할애하여 끈질기게 운영해 준 조선일보사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행정자치부의 교부세 지원이 없었으면 전국 지자체의 적극적 참여를 통한 단시일 내 전국적 확산은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파견한 친정 부처로서 『아름다운화장실 대상』을 국무총리상(후에 대통령상)으로 훈격을 부여해 주는 등 시책 추진에 힘이 되어 주었고, 필자가 지방재정국에 과장으로 근무했던 연고를 내세워 ‘전관예우’를 들며 요청한 특별교부세 지원을 흔쾌히 수락해 준 것은 이 사업에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아름다운화장실 포럼』
추진의 중심체로서 ‘아름다운화장실 포럼’을 구성하고 해당되는 전문가와 사회 저명인사들을 섭외했다.
명목만 걸어놓는 모임이 아님을, 해야 하는 사명과 보람을 이해하고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되는 일임을, 그리고 보수도 명예도 없는 일임을 알려주고 마음속으로부터의 공감과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야 했다.
섭외과정에서 사회적 명망가로서 잘 알려진 한 건축분야 인사는 행정자치부 국장이라고 하자 기대에 부풀었다가 화장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냉랭하게 안면을 바꾸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한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정말로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고 발전이 되는구나 하는 분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
이 귀중한 분들에게 보람과 함께 이 운동을 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기획자의 몫이자 의무였다.
포럼이 중심이 되어서 아름다운 화장실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부터 공급주체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교육과 함께 전국적인 확산방법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내용을 가지고 문민협에서는 전국 시도별로 구성된 지역협의회와 협력하여 속도감 있게 전국적인 확산을 추진해 갔다.
화장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디자인과 자재의 혁신은 물론이고 냄새를 없애는 과학, 쾌적한 실내환경, 화장실 사용 에티켓과 남녀변기 비율 등의 사회적 형평성 문제까지 다루어졌다. 예를 들면, 당시 화장실은 남자용이 7이면 여자용은 3에 불과했는데 연구를 통하여 화장실 사용 시간이 남자보다 여자가 1.5배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져서 1단계로 남녀 비율을 5:5로 올리는 기준을 마련하였다.
또한 폐쇄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화장실을 밝고 열린 공간으로 끌어내는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어 내었다. 창문을 크게 하여 바깥의 아름다운 자연을 들여놓고 천창을 통해서는 햇빛을 받아들여 밝음과 악취의 자연 처리 효과를 극대화했다. 여기에 더하여 작은 정원을 화장실 내에 설치하여 실내공기와 환경을 근원적으로 개선하기도 하였다.
특히 협소한 손 씻는 공간을 깨끗하고 넓은 파우더룸으로 확장하고 기저귀를 갈 수 있도록 편의 공간으로 개조하였다. 여성들의 용변 시 소리에 민감한 경우를 고려하여 ‘에티켓 벨’을 설치하고 용변 중 수없이 두드려 대는 노크 소리의 스트레스를 막기 위하여 변기에 앉아 걸쇠를 걸으면 “사용 중”이라는 표시가 문밖에 표시되도록 하는 장치도 고안하였다.
선진 외국의 화장실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하여 많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도입이 되었고 실제 화장실에서 이를 접한 사용자들의 반응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뜨거웠다.
『아름다운화장실 대상(大賞)』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아름다운 화장실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용 모델을 확충하면서 아름다운 화장실운동 확산의 효과를 높이고 범국민적인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조선일보와 함께 『아름다운화장실 대상(大賞)』 제도를 시행하였다.
지역별 예선을 거쳐 올라온 공중화장실과 업소 화장실을 대상으로 아름다운화장실포럼 위원들의 현지 방문을 포함한 정교한 심사를 거쳐 시상 대상이 선정되었고, 대상을 받은 기관은 그 영예가 빛나도록 언론매체를 통해 널리 알리고 시민들로부터 칭찬받도록 하였다. 물론 실질적으로도 상금과 함께 재정적 지원 등 실리를 보장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 경쟁과 심사의 기회를 통하여 어떤 것이 아름다운 화장실인가를 모든 공중화장실 관계자에게 인식시켜 주는 기회로 활용했고 어떤 교육보다도 효과가 컸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삶의 질 개선 차원에서 시민을 위한 작품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 담당기관에서는 보람을 가졌고 시민들은 즉시 박수를 보냈으며 긍지를 느꼈다.
왜 우리 지역에는 그만 못한가 하는 욕구도 표출되면서 이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았던 아름다운화장실운동은 급속도로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아가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화장실대상 시상 행사는 시상식에 그치지 않고 전국 화장실 관계자와 설계자, 자재와 설비기업이 한자리에 모여 정보와 최신의 성과를 나누는 자리를 겸하였다. 화장실 과학과 기술개발, 설비 및 자재의 혁신을 위하여 전문가 심포지엄과 함께 전시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였다. 화장실 과학과 디자인에 대한 공론화는 처음이었다. 수요 기관과 시민의 수준 높은 요구는 관련 기업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기업의 생리답게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설계, 디자인, 자재 등에 관한 관심과 활발한 참여는 빠르게 최고의 모양과 품질을 가진 화장실 제공의 원천이 되었다. 실제로 아무리 아름다운 화장실을 기획하고 원한다고 해도 자재와 설비가 받쳐주지 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것을 해외로부터 수입해서 충당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변화의 바람
당시 화장실 대부분의 주요 자재는 저급한 타일이나 천편일률적인 경량패널이었다. 평당 건축단가는 80만 원 선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화장실은 가장 구석진 곳에 배치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쉽게 더러운 느낌이 나고 관리의 손길이 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화장실이 건물 전체 건축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격 기준으로 당시 1/100도 되지 않는 데 비해 화장실은 사장부터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가장 많이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인데 아무리 옷을 잘 입고 좋은 사무실에서 일해도 불결한 화장실을 이용하는 순간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그 불결한 화장실을 이용한 방문객은 그 기업을 높이 평가할 마음이 들 리가 없다.
화장실을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에 배치하고 건설 단가를 평당 300만 원 이상으로 권장하였다. 전국 최초로 울산의 현대백화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비싼 장소에 매장을 넣는 대신 아름다운 화장실을 설치하여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어떤 공중화장실은 건설단가가 평당 1,000만 원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신문과 방송에서는 비판이 거셌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화장실의 문제를 환기하게 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업초기에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어렵게 화장실 전면 리모델링을 해놓은 것을 가보니 구조와 모양은 그대로 두고 타일과 칸막이 경량패널만 새것으로 교체하였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남자용 소변기 앞에 소지품을 놓을 수 있는 선반을 설치한 것인데 이것은 아름다운 화장실과는 거리가 멀어서 크게 낙심이 되었다. 당연히 불합격 처분을 하였고 디자인과 자재와 화장실 구조 등을 아름다운 화장실 기준에 맞추어 재시공하도록 하였다.
이후 완성된 화장실을 보러 갔을 때는 큰 가능성에 고무되었다.
당시는 선거 탓인지 많은 관광버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다녔는데 마침 그 휴게소에서 내린 할머니 한 분이 급히 화장실에 오시다가 화장실 앞에서 들어가시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근처에 있던 우리에게 물었다. “선상님 이거 화장실 맞는가요? 신발 신고 들어가도 되는가요?”
공급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서 이용자를 변화시키자는 전략에 확신을 갖게 하는 순간이었다.
화장실 관련 기업의 좋은 아이디어와 제품은 빠르게 팔려 나갔고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이제는 일정 수준 아래로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와 함께 기자재와 설계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반 화장실 분야에도 이 추세는 저절로 확산되고 이 수준은 당연히 지켜질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접객업소의 화장실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확산은 더욱 빠르게 진척이 되었다. 놀랍게도 이 변화는 자발적인 변화였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바뀐 것이다.
아름다운 화장실 공급을 계기로 사용자의 행태변화를 본격적으로 이끌기 위한 방안으로 시민운동조직을 구성하고 지원하였다. 대표적으로 ‘화장실문화시민연대’를 들 수 있는데 녹색소비자연대의 표혜령 씨가 주축이 되어 1999년 12월 13일 발족했는데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쉼 없이 운동을 펼치고 있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후에 심재덕 시장(국회의원)의 주도로 ‘한국화장실협회’도 발족되어 체계적인 아름다운 화장실 정착에 일조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화장실 / 발상에서 완성까지』
『아름다운 화장실 -발상에서 완성까지』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의 교과서가 되는 매거진도 발간했다. 왜 화장실이 바뀌어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 운동의 추진전략을 밝히고 동참을 호소하는 한편, 모델이 되는 국내외의 아름다운 화장실을 사진과 설명으로 소개하여 벤치마킹과 아이디어 개발에 도움을 주고 디자인 포인트, 화장실 관련 법규, 사용자들의 화장실 관련 의견, 전통 화장실과 현대의 화장실 관련 과학과 미학 등 화장실을 하나의 전문적 분야로 승화시키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대한민국 화장실혁명은 성공하였고 획기적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준비를 위하여 대한민국 화장실 혁명의 현장에 수많은 공무원과 관계자를 보내어 벤치마킹 했다. 대한민국 화장실은 국제적인 성공모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