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에피소드> D-45
국군의 날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덕에 추석 이후로 시간이 곧잘 갔다. 개천절이 있어 이번 주도 무난하게 잘 갈 거 같은데 문제는 그다음 주부터다.
10월이 끝나야 정말 집 갈 날이 보이기에 나의 마음은 아직 답답하기만 하다. 신병 시절 말출을 많이 모아야 한다는 선임들 말을 들었어야 했다. 말출을 30일 정도 남겨뒀더리면 지금쯤 집에 있었을 텐데 남은 휴가는 고작 만박(15일) 뿐이다.
사실 지금껏 쓴 휴가에 대한 후회는 없다.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나갔었고 또 극 J인 덕에 계획을 아주 잘 세워 알차게 놀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작년 5월, 입대를 앞두고 난 나 자신에게 강한 가스라이팅을 했다. 18개월간 돈 벌러 가는 거니 자아는 갖다 버리자고 굳게 다짐했건만 그리 오래 가진 않았고 복무율 80%까지 휴가 하나만 바라보며 어쩌어찌 버텨왔다. 그런데 맞선임이 떠나고 왕고의 반열에 오르고 나서부턴 아직도 내가 군인이란 사실이 정말 받아들이기 싫다. 수많은 간섭 앞에선 애써 못 이기는 척 수긍하지만 머릿속엔 반항이 섞인 의문이 계속 맴돈다.
“말년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이 있듯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스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만 국방부의 시계는 참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이제는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는 중대 후임들은 날보고 얼마 안 남았다고 부러워하지만 난 그들에게 아직 많이 남았다며 한탄한다. 신병 때 왕고를 보며 부러워했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후임들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이가 없다. 집 갈 날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PS. 3주만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