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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fton Parker Jun 09. 2024

16. 여행4: Washington DC (3/3)

Thanksgiving Holiday 2021

(커버이미지 : 케네디 대통령 가족의 묘지. 가운데 큰 묘비석은 대통령 부부, 양쪽 작은 묘지석 각각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자녀들의 것이다. 묘지석의 위쪽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설치되어 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워싱턴 DC 여행기 2/3에서 계속


셋째 날 : 알링턴 국립묘지와 올드 가드


미국의 현충원 : 알링턴 국립묘지 (Arlington National Cemetery)

워싱턴 DC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엔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를 들렀다가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로 치면 서울 동작 현충원 같은 곳이다.

넓이는 서울 현충원의 1.5배 정도인 것 같고 남북전쟁, 1차 &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과 현재까지 이르는 미군 전사자와 유공자가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버지니아 알링턴에 있는 이 지역은 원래 남북전쟁 때 남부 연합군의 총사령관 로버트 리(Robert E. Lee, 버지니아 주 출신) 장군의 가족 재산이었다고 한다.

북부 연방군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거의 몰수하듯 구매했고 이곳을 북부군 전사자의 묘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엔 거의 강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남북전쟁 이후 소송을 통해 리 장군 가족이 소유권을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이미 국립묘지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로 정부가 다시 구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행을 오기 전에 세은이 영어 과외 시간에 워싱턴 DC로 여행을 간다고 DyAnn에게 얘기했더니, 올드 가드(Old Guard)가 지키는 무명용사 묘를 꼭 보러 가라 추천해 주었다.

"Old Guard? 군대 의장대는 Honor Guard라고 하지 않아요?" 

"맞아, 근데 알링턴 묘지를 지키는 병사들을 특별히 올드 가드라고 해"

DyAnn이 알려주기를, 올드 가드는 연방 정부의 각종 행사를 담당하는 육군 보병 의장대라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를 지키는 보초병들이 육군 전체에서 최고 엘리트들이라고 했다.

DyAnn은, 묘지 보초병들은 제대 이후에도 품위를 지킬 것을 서약해야 해서 평생 음주나 욕설도 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게다가 야외에서 날씨 상관없이 1초도 쉬지 않고 보초 근무를 한다니, 대단한 의지가 체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겠다.


여행의 마지막 날, 모든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나와 알링턴 국립묘지로 향했다.

링컨 기념관 뒤편으로 포토맥 강을 건너면 거기서부턴 버지니아인데 알링턴 국립묘지 입구가 바로 붙어있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국립묘지 입구로 들어서면 작은 박물관 같은 방문자 안내소가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역사에 대한 사진과 글은 한번 읽어볼 만했다. 다른 나라들의 방문 기념 선물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국 상이군경회 방문기념패(2007년)도 찾아볼 수 있었다.

표를 사서 밖으로 나서니 묘지 같은 느낌은 별로 없고 아주 넓은 공원 같은 분위기다. 나는 혹시나 해서 세은이에게 뛰거나 크게 웃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왼쪽) 알링턴 국립묘지 방문자 안내소. 작은 박물관 같다. (오른쪽) 국림묘지로 들어가는 길. "이 곳이 신성한 곳임을 잊지마십시오."라고 적혀있다.
(사진) 케네디 대통령 가족묘지. 가운데 두 개가 부부의 묘, 양쪽 끝엔 어려서 사망한 두 아이의 묘다. 임기 내 공무 중 암살로 사망하여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입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하 JFK)의 묘부터 찾아갔다. 꽤 넓은 부지에 조성되어 있었는데 부부의 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두 아이의 묘도 같이 있었다.

JKF와 아내 재클린, 막내아들 패트릭과 사망 당시엔 이름이 없었던 첫 딸. 이렇게 네 명의 묘이다.

둥근 모양의 묘역 한가운데에 있는 가족 묘는, 망자들의 이름, 생년과 망일이 적혀있는 바닥 묘비석 4개로 되어있다. 

국가 유공자가 사망하면 배우자가 사후에 함께 안치될 수 있고 만약 미성년인 자녀가 사망하게 되면 그 경우에도 함께 안치된다고 한다.

JFK의 아들 패트릭은 생후 2일 만에 사망했고, 생일도 없이 묘비에 "Daughter"라고만 쓰여있는 JKF의 딸은 엄마 재클린의 뱃속에서 유산되었다고 한다. ("아라벨라"라고 이름 지으려 했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JFK는 임기중인 1963년에 재선 선거운동차 텍사스 주 댈러스를 방문했을 때 암살당했다.

남편의 사망 5년 뒤, 재클린 케네디는 재혼했고 오나시스라는 Family Name을 새로 얻게 되어 재클린 오나시스가 되었는데, 1994년 사망한 후에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묘역 입구 앞쪽엔 흰색 대리석 울타리가 쳐져 있는데 JFK의 유명한 연설문 구절들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는데, 그 당시 미국을 이끌던 젊고 강력한 리더십이 한순간에 허망하게 사라지니 더욱 그리워하는 것 같다. 

묘지의 가운데에는 항상 불타고 있는 추모의 불꽃, "Eternal Flame (꺼지지 않는 불꽃)"을 마련해 두었다.


우리는 JFK의 묘를 나와서 국립묘지 언덕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트롤리를 탔다.


무명용사의 묘, 올드 가드 : 헌신에 대한 최고 수준의 존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미군 전사자를 추모하는 무명용사의 묘(Tomb of the Unknown Soldier)는 알링턴 국립묘지 제일 높은 곳에 있다.

약 100년 전 신원 불명의 1차 대전 전사자를 수습하여 안치한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베트남전 이후로는 DNA 감식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이 묘비에 추가되는 전사자는 없다고 한다.

무명용사 묘지가 지어진 초창기에는 경치 좋은 이곳으로 피크닉(?)을 오거나 훼손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이 경비를 섰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육군에서 경비업무를 이어받아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무덤 보초병은 엄격히 선발된 사람만 할 수 있는데 합격률이 20%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사진) 국립묘지 꼭대기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 전경. 보초병(사진 오른쪽 중앙)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왼쪽) 한국전 전사자 구역인 Section 48 부근. (오른쪽) 미군 최고훈장, "Medal of Honor"를 받은 윌리엄 윈드릭의 묘. 한국전 장진호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언덕 꼭대기에서 트롤리를 내리면, 대형 야외 원형 극장을 지나 그 뒤편엔 워싱턴 DC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경이 나온다. 경치 좋은 한가운데에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정면에 약간 높이 있게 올린 대리석 건축물은 1차 대전 전사자의 묘이고 그 앞쪽 바닥에 놓인 세 개의 대리석 묘비석은 각각 한국전, 베트남전 그리고 세계 2차 대전 전사자의 묘이다.

1차 대전 묘비의 정면엔 "누구인지는 오로지 신 만이 알고 있는, 미국의 군인 명예롭게 여기에 잠들다."라고 적혀있다.

각 전쟁의 전사자들 중에 한 구씩만 대표로 이곳에 안치되어 있고 전체 무명용사 전사자는 "Unknown"으로 표시된 별도의 묘지 구역에 안치되어 있다. (이곳에 안치되었던 베트남전 전사자는 훗날 신원이 파악되어 이장되었고 지금은 비어있는 묘이다.)


관람객들은 원형극장에서 이어진 넓은 계단 앞에 놓인 허리춤 높이의 울타리까지만 갈 수 있고 묘비까지는 갈 수 없게 되어 있다. 묘비의 바로 앞에 병사 한 명이 근무를 서고 있기 때문이다.

울타리 바로 앞에 "추모의 공간이니 존중을 보여주세요"라고 적힌 팻말 너머로 묘비 경비병은 조용히 하지만 절도 있는 일정한 움직임으로 묘를 좌우로 반복해서 걸으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한쪽 방향으로 21초간 21걸음 걷고 21초간 전방 응시, 21초간 반대편 진행로를 응시하고 다시 걷기를 계속 반복한다. 21이라는 숫자는 예포 의례에서 21발을 쏘는 것이 가장 높은 예우여서 거기서 기인했다고 한다.

보초병은 흐트러짐 없는 정확한 동작을 교대하기 전까지 계속 반복하게 된다. 교대시간은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다른데 겨울 낮엔 한 시간마다 하는 교대식이 있다.


잠시 둘러보고 있으니 교대식 시간이 되었다. 교대식은 사령병이 후임병을 데려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교대식을 시작하기 전, 사령병이 중앙으로 와서 관람객은 교대식 동안 존중을 보이기 위해 일어서 있어야 하고 절대 정숙해야 함을 통보한다.

교대식 5분여 동안은 아주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인데, 병사들은 아주 절도 있고 합이 잘 맞는 동작으로 복장과 총기 검열을 하고, 근무 지침을 큰 소리로 확인한 뒤 다 같이 묘를 바라보고 경례를 한다.

이후 사령병이 전임병을 데리고 사라지면 교대식이 끝나게 되는데, 그제야 숨을 멈춘 듯 지켜보던 관람객들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우리도 세은이와 같이 사진 찍고 이동하려고 할 때, 앞서 나가려는 몇몇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조금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근무하던 경비병이 갑자기 몸을 홱 돌리더니 앞으로 다가오면서 큰 소리로 "항시 정숙과 존중의 모습을 보이라"라고 경고를 주었다.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놀랐는데, 병사 한 명의 기운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올드 가드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명용사의 묘 경비 수준은 후대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라는 생각되었다.

생각해 보면, 미국의 국립묘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최고 수준의 경호를 받으며 항시 정숙해야 하는 장소는 대통령 같은 사람의 묘가 아니고 이름을 찾지 못한 일반 전사자의 묘지였다.

미국인들이 나라를 위해 봉사한 사람들을 어떤 모습으로 대우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나라를 위한 개인의 희생에 대해서 국가 차원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것. 이것은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후손들에게 확실하게 주는 것이다.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명용사의 묘와 올드 가드는, 모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의 공적을 기리고,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자 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무명용사의 묘를 나와서 5분 정도 걸어서 한국전 참전 용사의 묘역인 섹션 48을 둘러보았다. 작은 묘비가 언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시 트롤리를 타고 국립묘지 전체를 한 바퀴 돌면서 곳곳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알링턴 국립묘지 일정을 마쳤다.

미국의 가장 좋은 부분을 한국의 일상적인 것과 비교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지만, 한국 군대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에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아니다. 이젠 나하곤 상관없지 뭐.'


(여행에서 돌아와 올드 가드 관련 유튜브 영상을 몇 개 찾아보았는데, 올드 가드의 임무 종료되는 순간인 "Sentinel's Last Walk"를 담은 영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마지막 근무가 끝나고 교대하는 순간이 되면 사령병에게 총기를 반납하고 근무를 서던 그 무덤에 헌화를 한다. 그런 뒤 관람객 석에서 기다리던 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 퇴장하는 것이 보초병 근무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한다. 단 1분의 빈틈도 없이,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폭풍이 오나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관람객들의 시선 속에 혹독한 근무를 책임감으로 이겨낸 뒤 가족에게 돌아가는 모습은 참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발과정, 근무이야기 등을 보면서 얼마나 이 일에 헌신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고, 전투병이 아닌 그들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있는 충분히 이해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7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길이었지만, 한국에서 추석 때 운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할만한 정도였다. 이제 운전은 상당히 적응이 된 것 같다.

한참을 달려와 늦은 저녁에 뉴욕으로 들어서니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아무 사고도 없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루를 온전히 운전만 해도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세은이도 3시간짜리 뉴욕시티도 힘겨워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잘 견디는 것 같다. 

이제 시간만 충분하면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씩 운전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내와 나는 성공적인 여행을 자축하며 짐을 정리하고 나서 와인을 한잔씩 마셨다.


뉴욕 Upstate는 이제 겨울이다. 늦기 전에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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