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있다. 도무지 생각대로만 움직여지지 않고, 계획을 순순히 따라 굴러가주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굴려가는 계획은 늘 간결하고 군더더기없고 잘 정리되어있으며 완벽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주의의 결과물일 뿐이었고, 현실은 볼품없었다. 책상은 온갖 물건으로 손쉽게 어질러지고,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떨어지기 일쑤였으며, 저녁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 변변치 않은 음식으로 떼우는 날들이 반복됐다. 이상주의는 진짜 일상, 진짜 현실을 꾸려나가는 감각과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나에게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가끔 게임을 하던 것이 일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길었다. 평온함의 이면에는 무능하고 무력한 시간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게세상에 어떤 유익함이나 생산성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 비합리라는 이상의 그림자였다.인생에서 그리는 완벽해보이는 이상이란 사실 비합리성과 맞닿아있다.이상은 때때로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밑바닥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우주의 점만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결점과 흠과 부족한 것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쪽이 사실은 참된 이상은 아닐까. 삶은 합리적이지만은 않기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