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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Aug 19. 2024

이상형에 대한 소회

@Markus Spiske by Pexels


이상형은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으로부터 생겨나는 것 같다. 어릴 연예인들 팬이 되는 활동은 어디까지나 잘 모르는 사람들의 외적 요소들을 통 호감에 대한 틀을 만들어냈. 가 좋아했던 유명인들에게는 서로 비슷한 점 공통점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고, 성격적인 측면에서는 진중하거나 다소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금까지도 팬인  배우는 연예계에서 보기 드문 공대 출신으로 와 관련된 일화를 가지고 있고 성격에서부터 특유의 이성(理性)적인 매력 여실히 드러나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는 이성 교제에 관심을 가질 일이 별로 없었고 어떤 사람이 좋은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같은 것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연예 관심을 가지면서 차무의식 속에 이상적인 남성상 어렴풋이 혀갔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해 그 에너지가 바깥으로 표출되는 사람을 좋아했다. 시 멋진 캐릭터들이 나오는 만화를 즐겨보기도 했지만 진지한 마음이라기보다는 설렘을 즐기는 가벼운 마음에 가까웠다. 것은 달리 말하자면 나에게는 이상만이 비대하고 현실에서 사랑을 다루는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릴 적 엄마는 나에게 '남자는 기계를 좀 만질 줄 알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비데를 설치하거나 형광등을 가는 등 기기를 다루는 능력을 요하는 행동들은 늘 엄마의 몫이었고, 엄마는 아빠가 그런 방면에 무지한 것을 불만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상형이란 게 부모의 말 몇 마디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엄마의 의견에 따라 만날 사람을 정할 것도 아니었지만 조금쯤 영향은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엄마는 본인이 이과 공부를 했던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 길을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쪽 일을 무리없이 소화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어도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갔을 뿐 마음이 움직인 적은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나에게는 이과라고 하면 똑똑하고, 이성적이며,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할 것 같은 이미지가 생겨났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능히 잘 헤쳐갈 수 있으리라는, 엄마를 근거로 삼은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쩐지 이 믿음은 쉽게 변할 것 같지가 않다. 아, 결국 이상형이란 것도 부모의 영향 아래 정해져 유전자가 명령하는대로의 감각과 판단을 따라 결정되는 것일까. 아빠도 아니고 가장 친밀한 동성인 엄마가 이성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조금 흥미롭지 않은가? 아마도 같은 여성이기에 형성할 수 있는 공감대의 지점이 따로 있는 것 같다.


훗날 소개를 받아 처음으로 만나본 남자는 공교롭게공대 출신이었다. 나와 다른 점이 많아서 마음이 끌렸만, 다른 점들 충돌과 다툼의 계기로 작용했고 지 않아 헤어지고 말았다. 이후 다른 모임에서 잠시나마 호기심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 중에도 이과 출신이 있, 가장 예민했던 고등학 3학년 때 부담없이 편안하게 만날 수 있었던 동친구도 이과 중의 이과였다. 사람을 만남에 있어 이러한 모종의 통일성을 발견하 선호하는 인간상에 어떤 일관된 특징이나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어쩌면 이상이 강해 현실에서 인간관계를 잘 해나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성을 만남에 있어 특정한 틀을 정해놓고 만나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인가 하는 고민 생겼다. 상형이란 각종 경험과 직간접적 체험, 그리고 크고 작은 지식들을 통해 머리 속에서 형성된 일종의 신념이나 사고 체계같은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이상형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제아무리 첫눈에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사람일지라도 만남을 거듭하며 얼마든지 기대와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특성과 자질을 지니고 있으며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다른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요컨대 개인의 매력이란 단순히 몇 가지 조건만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만남은 한 쪽의 의지만으로 성사되는 문제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머리보다 가슴의 영역에 더 좌우되는 행위일지도 른다. 첫인상 5초만에 결정되듯이 사랑은 노력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상형은 어디까지나 어떤 숱한 이론적 가정과 추론을 거쳐 탄생한 머리 속의 도면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변수와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의해 만남의 형태가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위험과 리스크가 도사리는 한편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도 한다. 이상형에 국한되어 사는 삶은 그 넓이와 폭이 한정될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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