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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Oct 14. 2024

평범함의 역설

그 작지만 아름다운 반짝임에 대하여

@Sharon Snider by pexels

많은 아이들은 부모님에 의해 자신만의 강점과 개성을 키우고 자기만의 특별함을 발견해나가며 성장한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은 그것과는 다르다. 공교육의 목적은 국민 한 명 한 명을 일정한 모양과 규격의 톱니바퀴로 제련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좁디좁은 사회에서 대학 진학, 취업, 결혼과 같은 일관된 인생 과제를 부여받는다. 일과 사랑은 인간의 생애에 있어 장 보편적인 일과들이지만, 남들 보기에 구색에 맞는 평범함이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내가 갖은 힘을 다해 겨우 성취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손 대지 않고 코를 풀듯 손쉽게 손 안에 들어간다.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혹은 단지 운이 좋아서 어떤 때에는 아주 쉽게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는 잡힐 듯, 가질 수 있을 듯한, 저마다 다른 원하는 것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쳐야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돈이고, 어떤 이에게는 친구이며, 혹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퍼즐 한 조각을 가질 수 없어 공허하고 고통스럽다. 누구에게나 절대 채워지지 않는 빈 틈 혹은 결핍이 존재하고, 이것이 삶의 기본 형태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경쟁은 계속된다. 이기기만 하는 삶도 없고, 지기만 하는 삶도 없다. 인생이란 허망한 환상을 좇으며 조용히 여물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채워보려 애써봐도 한계선 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삶에는 평온함이 깃들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족함과 모자람으로 인해 충만해지는 것이다.


20대 초반까지의 나는 나만의 특별함을 찾아가는 여정에 몰두해있었다. 혼자서 알음알음 찾아 들었던 음악, 동생과 했던 게임, 친구들과 함께 봤던 영화 등 나만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취향과 심미안에 대해 스스로 어떤 자부심이나 뿌듯함을 가지고 있었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질문에 다들 조용히 눈치만 보던 광경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고, 자기 주장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사람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뿌리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는지,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제는 튀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한국인 특유의 인식이 생겨났다. 생각해보면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의 질문에 다들 조용히 눈치보기 바빴던 광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손을 들고 당당하게 내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게 남들과 다른 것이고, 그게 암묵적으로 이상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 주장과 의견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 역시 그 분위기를 쉽사리 깨기가 어려워 조용히 주변만 살피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특별함을 강조받았던 어릴 때와 달리 사회인의 자격을 요구받으면서 암묵적으로 개성을 죽일 것을 요구받는다. 개성적이라는 것은 튄다는 뜻이다. 사회에서 튄다는 것은 자기 주장이 강하거나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것과 비슷한 말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개성이 강한 사람은 특이한 것이며 이는 남들과 다름을 넘어 틀리다고 지적받고 손가락질을 받기 쉬운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다수는 집단의 기조를 흐리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쉬쉬하는 한편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이 곧 사회성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된다. 거기에 목소리를 내고 한 마디 얹는 사람은 참 쉽게 욕받이로 전락한다. 한국은 일본 못지않게 특출나게 능력이 있거나 개성적인 사람은 지탄받기도 책잡히기도 쉬운 사회다. 다만 개중에는 타인과, 혹은 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결여된 비대한 자의식 혹은 미성숙함인 개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평범함도 매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다. 평범함은 곧 타인을 배려하는 세심함, 무던하게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력,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겸손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인간성이라는 속성과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색채가 강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고 지나치기 쉽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유한 무늬가 있는 나이테나 무심한 듯 은은하게 풍기는 꽃 향기와도 같다. 그래서 성인이라면, 세상의 흐름에 마냥 몸을 맡기지 않을 사람이라면 평범하고 무던한 사람의 작은 반짝임을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평범함은 매력의 가장 튼튼한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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