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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Nov 08. 2023

무기력함이 밀려올 때

단지 살아있음 자체로 버거웠던 날들

ⓒ Pixabay


나는 이상주의자다. 치열하게 유행하던 MBTI 검사를 수백번 해봐도 늘 N(직관형)이 나왔다. 그런 나에게 일상은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 것 없게만 보이고, 나 역시 개미나 벌 한 마리와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깨달을 때마다 몸서리처지는 좌절감과 어떤 모멸감 같은 것을 느꼈. 끝도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에 휩쓸려가듯 살아가다보면 손님이 찾아다. 회의감 혹은 무기력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이다. 그들은 예고도 기척도 없이 불쑥 다가온 뒤, 영영 눌러앉기라도 할 것처럼 쉽게 떠나지 않는다. 방문에는 딱히 이유가 없고 문제랄 것도 없다. 그래서 쥐덫에 놓인 치즈마냥 불쾌해지고 찝찝한 기분이 된다. 정말 이유가 없는 걸까 생각해보다가, '휩쓸려간다'는 부분이 문제라는 추측을 내려본다. 그것은 주체적으로 결정과 결단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며, 광대하고 느릿한 강물 속에서 그 어떤 발버둥도 자맥질도 하지 않고 그저 유속에 몸을 내맡겨버리고야 마는 행위와도 같다. 환경이나 외적 요인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게 느껴지고, 나의 문제로 규정하자니 나 자신이 너무나 형편없게 느껴져서 인정하기 싫어졌다. 마음이라는 강에는 여러가지 물줄기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열등감이나 자기혐오라고 부르는 녀석들이 그간 꽤나 몸집을 불려온 듯했다. 어쨌든 이런 마이너스적 감정들이 터를 잡으면 일종의 패배의식으로 변모되어 나를 집어삼키고 주변을 난도질하기에 이른다. 상황에 나를 모두 내맡겨버린다는 것은 자유의지를 상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모든 것이 가혹하게만 느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감각으로 자신을 억눌러 지배하는데, 누가 대신 손봐줄 수가 없다. 지독한 무기력감은 그렇게 사람을 인형처럼 만들어버린다. 삶의 기쁨과 생기와 모든 종류의 감흥을 앗아간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했던가. 문제가 없는 게 문제가 되는 날, 인간은 천국이 지루한 나머지 제발로 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한다. 사실, 인생은 문제 생성과 해결의 연속이. 문제가 없는 상황이 문제로 받아들여진다는 진실은 믿기도 받아들이기힘들. 아무 일 없음, 평온한 일상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몰랐다가 그것이 사라진 뒤에야 깨닫게 된다니. 나라는 사람의 간사함과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확인하는 것은 꽤나 뼈아픈 일이었다. 이미 떨어져 시든 시간들은 되살릴 수가 없다. 구겨진 부분을 피고 코팅해서 책갈피처럼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것 최선이 되어버린 순간 그 시간들은 아쉬운 추억이 된다. 추억을 단지 추억으로 남길지, 아니면 새로운 억을 위한 디딤돌로 삼을 것인지는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 쉼표, 마침표, 도돌이표 등 마음대로 자유롭게 골라서 이름표를 붙여보자.




한편 잊고 싶어도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차마 추억이라 하기에 어려운 기억도 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라는 마음의 병이 무의식 깊은 곳에 생채기와 흉터를 새긴 탓이다. 그것은 그 어떤 스트레스보다 더 무겁고 쓰라린 아픔이다. 사실 이것은 정말로 타인이 내게 주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무기력은 열등감과 연합하여 마음의 상을 왜곡하고, 타인의 말과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에 류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탄생한 피해의식은 다시 마음에 자해의 흔적을 남긴.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없고 중심이 확고하다면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쉽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다시말해 마음의 문제는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잘 풀어나갈 수 있고, 의지가 없으면 그 어떤 것으로도 결할 수 없. 술, 담배, 도박, 게임 등의 수단은 일시적인 마취에 불과할 뿐 마음을 온전히 낫게해주지는 못한다. 렇게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선택한 또다른 고통은 영혼의 죽음을 가속화시킨다. 이래도 고통, 저래도 고통인 것을 보면 정말 인생은 그저 고통의 굴레에 불과한 것일까. 


고통이라는 이름의 베를 짠다고 생각해보자. 바탕색은 칠흑처럼 어둡고 검은 가운데 희미하게 서늘한 푸른빛이 돈다. 순간순간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 오색영론한 빛깔로 불규칙적으로 편재해 들어간. 언뜻보면 판판한 표면은 자세히보니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조금 실밥도 튀어나와있다. 더럽고 이상해보이는데, 가만 보면 깔과 무늬가 썩 예쁜 것 같기도 하다. 만들어낸 수고가 있어서일까? 어쩐지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같아 한켠에 고이 접어둔다. 라면받침으로라도, 하다못해 걸레로라도 쓸 날이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고통은 수많은 친구와 자식을 가지고 있다. 그 중 권태는 조용하고 덩치가 큰 조폭과도 같이 특유의 버거운 무게감으로 삶의 숨통을 길고 지루하게 조인다. '사람은 왜 태어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사람은 단지 돈을 벌고 일을 하기 위해, 또 크고 대단한 업적을 성취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두가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반출생주의를 부르짖고 싶지는 않지만, 인간이 태어난 데에는 꼭 이유가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살아가는 도중에 그것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인간은 단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가? 고통받으려고 태어난 인간은 없겠지만 행복이 유일하고 공통된 목표인 것인가?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행불행에 관한 논의를 떠나 좀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저마다 하나씩 갖고 태어날 삶의 의미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기독교에서는 소명이라고 표현하는 그것 말이다. 질문을 던질 곳도, 대답을 들을 곳도 마땅치 않은 이야기인 것 같다. 하늘 이외에는.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행복을 가지고도 성에 안 차나보다. 왠지 그것으로는 사람이 완성되지 않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기력해지고 고통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더 충만하게 채워줄 뭔가를 상상하고 찾기위해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가고 헤맨다. 그곳이 어딘지, 언제쯤 도착할지는 미지수지만. 어쩌면 목적지라는 것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무작정 걷다보면, 발이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가다보면 의외로 그냥 그 과정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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