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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by 서정


100m 앞에 보이는 가느다란 하얀 천

대여섯 명이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꼴깍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때쯤

옆자리에 선 아이 하나가 운동화 끈을 만지작거린다


탕- 하고 총성이 울려퍼지면

너나할 것 없이 앞만 보고 뛰어가

코 앞에서 넘어지는 아이, 눈을 질끈 감고 내달리는 아이,

흰 선만 바라보느라 웅웅거리며 모든 것이 블랙홀처럼 잦아드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순간


배꼽에 결승선이 닿아 툭, 하고 끊어진다

찰나에 흐르는 느릿한 침묵

곧바로 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와, 하는 함성 소리에 그제서야 침 한 번 삼키고


턱까지 차오른 숨을 거세게 내쉬면

쿵, 쿵, 쿵-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한 심장의 커다란 박동 속에 잠겨

호흡을 일정하게 가다듬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때만큼은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있다는 감각만 한가득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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