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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Nov 10. 2023

삶의 부피와 밀도를 줄이자

작게, 가볍게, 부담없게


21세기의 한국인들은 빽빽한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직장에 다니며 꼬박꼬박 적금을 부어도 내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명절이면 평소 안부메시지조차 주고받은 적 없는 친척들과 강제로 대면한 뒤 대학, 직장, 결혼 문제로 토론의 장을 연다. 개인이 나아가야할 방향도, 도전하고 성취해야할 목표도 불명확하고 불확실한 시대다. 그런 영향인지 유튜브에는 경제적 자유와 부의 성취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하는 온갖 영상이 즐비하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부자가 된다'는 사뭇 진지한 자기세뇌적 댓글도 줄줄이 달린다. 평범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일까. 대체 평범이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힘겹게 살아야만 하는가. 새로운 돈벌이 방법을 찾아 헤매이고, 그 새로운 방법에 너도나도 뛰어들어 그것이 다시 평범해지고, 결국 '아무거나 일단 좀 해봐라',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일련의 은근한 강권 혹은 유혹들만 도처에 널린다. 경제활동의 악순환이자 우스꽝스럽고 안타까운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사실 정말로 돈이 없다기보다 욕심이 더 많아서 탈이 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참고로 필자는 둘다 해당된다. 하하.


뭔가를 하는 것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일, 언제나 뭔가를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기계도 쓰다보면 오작동을 일으키고 고장이 난다. 기계는 부품을 바꾸고 수리하면 되지만, 사람의 몸은 교환이나 교체가 안 된다. 원상복구가 안 될 때도 허다하다. 그러니 각자에게 맞는 활동 방식을 찾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잘하는 일로부터 주어지는 보상에 만족할 줄 알고, 뭔가를 기대하기보다 좋아하는 일 자체를 즐길 각오가 있으면 된다. 이도저도 모르겠다면 일단 여건과 상황에 맞는 일을 골라서 하면 된다. 나답게,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내고 발아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내가 작고 평범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머리로 인지하고 피부로 느껴 받아들이는 것은 진짜배기 여유를 가져다준다. 어떤 재화나 물건의 소유와도 비교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그 충만함은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주며 자존감으로 자라난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 속에 우리는 그 누구도 쉽게 흔들 수 없고 어떤 것에도 쉽게 파손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 저녁 식사로 모처럼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것, 주말에 낮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것 등.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삶 그 자체로 인정되고 존중받아 마땅한 행위다. 그러나 치열한 성과주의와 능력중심사회에서 평범함과 소소함 그리고 여가활동은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일과 돈은 추앙받지만 생각과 쉼은 등한시된다. 침묵은 존중되지 않고 겸손의 미덕은 유행이 지난 옷처럼 퇴색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크고 확실한 성과를 향한 욕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욕구 아래 '열정'으로 포장된다. 흔히 청소년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쓰는 '치기', '혈기왕성' 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혈기'란 힘을 쓰고 격동하며 활동한다는 뜻인데, 재미있게도 어떤 이들에게서는 머리가 희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데도 혈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대개 자신의 일에 열정, 자부심, 애착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혼이 살아움직이고, 그런 움직임이 고스란히 얼굴에 녹아있기 때문에 젊어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영혼은 다시 자신에게 성취와 보상을 가져다주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진정한 자기 존재에 대한 파괴와 같이 어떤 보이지 않는 위기나 위험도 도사리게 된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재화는 어느 순간 족쇄가 되어 존재를 옭아매고 진정한 자유를 앗아가기도 한다. 욕망과 만족 사이의 시소타기에서 평형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욕망하기에 도전하지만, 성공만 할 수는 없다. 실패할 수 있지만, 좌절만 할 수도 없다. 욕망으로 기울면 고갈되고, 만족으로 기울면 썩는다. 아무튼 이 시소는 작은 흔들림에도 손쉽게 틀어지기에 무게중심을 잡도록 도와줄 쐐기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적혀있을 것이다. 사회는 결코 인생의 답안을 제시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다만 개개인의 다양한 삶의 형태가 모여 모자이크화처럼 형형색색의 화폭을 이룰 뿐이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으면서 만들어가고, 또 만들면서 찾아나가자. 거기에 자부심을 갖자. 불확실성은 도전이라는 동전의 뒷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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