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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지용 Sep 19. 2023

난세에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기

왕보(王博)의 <장자철학>을 읽고


인간세상에서 위협과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신념에 따라 세상을 바꾸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또는 위협을 피해 숨어버리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면, 모든 것이 운명으로 느껴진다면, 심지어 위협을 피해 숨어버릴 곳조차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내가 이해한 장자의 해답은 다음과 같다. 세상을 바꿀 수도 피할 수도 없다면,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켜라. 나의 딱딱한 마음을 물렁물렁한 무형질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마치 물과 같이 형태와 내용이 없다면 , 날카로운 칼에 찔려도 뜨거운 불에 화상을 입어도 전혀 아프지 않을 것이다. 이런 투명한 마음을 장자는 허심(虛心)이라고 불렀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선 모든 것들을 잊어야 한다. 공동체의 이데올로기, 세속적인 성공욕구, 지위욕구, 사랑욕구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려라(喪我)! 이 수양과정이 바로 장자가 말한 심재(心齋)이자 좌망(坐忘)이다.  우리는 세상을 뜻대로 주무르는 제왕이 되진 못하지만, 내 마음의 주인은 될 수 있다(應帝王).


이렇게 텅 빈 마음을 가진 사람을 장자는 지인(至人)이라고 한다. 사실상 지인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투명인간에 가깝다. 형태와 내용이 없으니 어디에 가든, 장애물을 만나든, 주위가 급박하게 변화하든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아마 지인이라면 '삶에 의미 따윈 없다'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이런 경지에 이르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가능한 것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장자철학>, 왕보 著


통상적으로 장자를 해설할 때, 저자들은 커다란 붕새가 구만리 창공을 나는 <소요유>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확실히 <소요유>부터 해설해 나간다면, 답답한 현실에 찌든 독자에게 쉽게 청량감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왕보는 특이하게도 <인간세>를 중심으로 하여 장자를 해설하고 있다. 광막한 들판의 쓸모없는 나무 밑에서 하릴없이 누워 잠을 자고, 아내와 사별할 때 그릇을 두드리며 즐겁게 노래까지 하는 '상쾌한' 장자의 모습 이면에는, 인간세상에서 받은 비극적인 상처와 피눈물이 켜켜이 묻어있는 것이다. 만약 장자가 인간세상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장자>라는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한계가 된다.

...

이 때문에 이 세계의 진정한 제왕이 되기 위해서, 사물에 지지 않고 사물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철저하게 비워야 한다.

8. 응제왕 中
「노자」를 읽으면 냉정해질 수 있다. 우리는 마음을 놓고 머리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그러나 「장자」는 항상 "가슴 두근거리는" 느낌을 일으킨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자기를 그 안으로 들여놓는다. 이런 태도는 학술 연구에 있어 매우 질책을 받기 쉽다. 그것은 객관성의 원칙을 위배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에 대해 객관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저자 후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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