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델 Feb 09. 2024

"예쁘야, 뭐하니"

어머니에 대한 추억 1~10


1. 어머니는 내게 애칭을 지어주셨는데, 그것은 아직도 내 인터넷 아이디이기도 하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이런 식이다. "이쁜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2bbune라고 적는다던가.

어머니가 나를 부르던 별명은 내 이름, 내 이름을 강조하여 부르던 것(나의 이름이 소영이라면 또영아, 등).

그 외에 "예삐", "(강)아지야".


2.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나를 임신하셨을 때 의사로부터 "아이를 지우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도 신혼에 엄마를 잃기보다는 얼굴도 못 본 아이를 지우는 게 낫겠다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본인의 목숨이 위험해질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다.


3.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가 직장을 나가시고 집에 어머니만 있었던 낮 시간 대에, 소위 "연극놀이"라는 것을 하겠다며 안방을 통째로 차지하여 혼자 논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군말 없이 언제나 내 놀이를 존중해주셨다.


4. 중학생이 되고 만화를 좋아하게 된 나를 보며,

"요즘 아이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나 보다. 나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나도 좋아할 수 있게끔 노력해봐야지..." 라고 메모를 적으신 적이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용하셨던 가계부를 정리하다 발견한 내용이다.


5. 나는 스무 살이 되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쭉 서울에 살았는데,

나를 대학의 기숙사에 데려다주시고 나서 어머니가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었었다.


6.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부모님은 작은 밭과 마당,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사셨는데,

마당의 정원에 간이 의자와 같은 것을 펴놓고 내게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격려해주신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취미 삼아 쓰던 소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항상 내가 소설을 쓴다는 것을 좋아하셨고 자랑스러워 하셨으며, 오죽하면 사이가 데면데면한 이모한테까지 자랑할 정도였다.


그 집은 2층 집이었고 어쩌다 그 집에 방문할 때면 부모님의 로망에 따라 2층, 작은 거실과 발코니가 딸려있고 작은 방이 딸려있는 공간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 방 바로 밑에 자갈이 깔린 밑 공간이 있었다.

어머니는 몸이 안좋으실 때도 집 한 바퀴를 도시면서, 항상 내 방 창문 밑에 멈춰 (내 이름이 소영이라면) "또영아, 뭐하니" 하고 불러주셨다.

그 때의 자갈이 사륵거리는 소리, 내 이름을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유일하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이다.


7.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와 나는 잦은 충돌이 있었는데,

그 때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는 "그래도 너랑 아빠가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어..."라고 하셨다.

마음 따뜻하신 분이었다.

그 말 때문에라도 지금의 나는 아빠와 크게 싸우지 않는다.


8. 어머니는 그 시절 7급 공무원에 합격할 정도로 능력 있고 야망 있는 분이셨는데,

나를 낳고 급격히 몸이 좋지 않아지면서 일을 그만두셔야 했다.

살림도 썩 잘하시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시골에서는 인심이 좋기로 유명했다.

시골이라 부모님 없이 홀로 지내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내가 소꿉친구들에게 전해들은 어머니의 추억은 모두 따뜻한 것들 뿐이었다.

친구들이 놀러와도 절대 내쫓지 않고, 항상 간식을 내어주셨던 것.

그런데 항상 집에 엄마랑 어린 나밖에 없어서, 심지어 엄마는 많이 먹지도 않으셨으니까. 적당한 간식의 양을 알지 못해 친구들에게도 항상 나나 엄마가 먹는 양 정도만 내놓았던 것. 그런 서투른 따뜻함.

그래도 절대 배고프게 돌려보내지는 않았던 것.

어머니가 그 시절 식빵 만드는 기계를 사서 대량의 식빵을 만들었던 것.


그 때나, 더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는 산에 오르는 걸 좋아하셨다.

그 시절에는 고사리 꺾는 것을 좋아하셔서, 집에는 고사리육개장이 자주 올라오고는 했다.

어머니는 창작에도 소질이 있으셔서, 나를 따라 참여한 센터의 무슨 프로그램에서 쓰신 시가 금상을 받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엄마의 시 덕분에 "타래" 라던가, "한 올"과 같은 단어를 외웠던 기억이 있다.

내용은 실 한 올을 들어올리면 타래처럼 그리움이 쏟아져 내려온다...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9. 내가 어렸을 때, "물고기를 그려보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에 내가 밥상에 올라온 뼈만 남은 물고기를 그린 적이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때 내가 천재인 줄 아셨다고 한다.(왤까 ㅎㅎ)


10.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안방에서 항상 어머니 품에 안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이전글 지나치게 가엾지도 않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